네덜란드말로 글쓰기

 


  대학교를 가고 싶지 않았고, 대학교에 앞서 고등학교부터 가고 싶지 않았으며, 고등학교에 앞서 중학교부터 그만두고 싶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1988년에 들어간 중학교에서 본 모습이란 끔찍한 싸움터였다. 동무들도 선배들도 교사들도 모두 악에 받쳐 이맛살 찡그리면서 온갖 거칠고 모진 말을 늘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뿐 아니라 주먹다짐과 발길질과 싸대기질과 몽둥이질이 그치지 않는 어지러운 싸움터가 내 중학교 세 해였다. 어쩜 그렇게 날마다 모든 교실에서 싸움 몇 차례씩 일어나야 했을까. 어쩜 그렇게 날마다 모든 수업에서 교사들은 학생을 몽둥이찜질이나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해야 했을까. ‘기술’이란 과목 가르치던 교사는 아예 권투선수라도 되는 듯이 아이를 교단에서 두들겨패며 몰아붙여 코피가 터지고 눈두덩이 부어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기 일쑤였다.


  중학교를 그만두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안 들어가지 못했다. 한숨과 짜증이 섞인 여섯 해를 겨우 견디며 내 몸 숨길 곳은 대학교밖에 없다고 느껴 대학교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 곳이나 가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숨을 만한, 그러면서 제대로 살아갈 빛을 볼 만한 길로 가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이웃 아주머니들이 나더러 “추위를 참 안 타네. 종규는 시베리아에 가도 잘 살겠다.” 하는 말씀을 으레 했다. 이런 말을 여러 해, 아니 열 해 넘게 들으며, ‘그러면 나는 소련(아직 러시아가 아니던 때이니)으로 가서 살까?’ 하고 생각했고, 서울에 있는 ㄱ대학교 노문학과에 가서 통번역 공부를 헤아려 보았다. 이러던 어느 날, 우리 형 동무 한 사람이 외국어대학교라는 데에 들어가서 유고말을 배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고슬라비아말이라고? 그런데 아니다. 유고말과 슬라비아말이 따로 있고, 학과는 유고어과라 했다.


  뭔가 생각이 뒤엉킨다. 그래,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에서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국말 쓰는 줄 제대로 모르잖아. 그러니, 아시아 조그마한 이 나라에서 유고가 어떻게 생겼고, 유고와 슬라비아가 어떻게 다른가 또한 모를 수 있지.


  형한테 여쭈어 외국어대학교 자료를 받는다. 어떤 학과들이 있는지 살핀다. 다른 대학교에 흔히 있는 학과 말고, 포르투갈말, 이탈리아말, 스웨덴말, 네덜란드말, 이란말, 인도말, 터키말 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아닌 용인 한국외대에는 체코말도 있다. 체코말에 눈길이 많이 갔지만, 나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었기에 서울 학교에 있는 여러 말 가운데 네덜란드말을 골랐다. 서울이 내키지는 않았으나, 인천에서 중·고등학교 여섯 해 다니며 겪은 바보스러운 어른(교사)들이 으레 ‘서울에 못 가고 인천에 남은 찌질이들아!’ 하는 말로 우리를 깎아내리는 말이 몹시 듣기 싫었다. 내 어버이가 인천에서 사는 일하고 ‘서울에 안 가거나 못 간 삶’하고 뭐가 이어졌다고 그 따위 말을 교사들이 함부로 할까. 그네들 스스로 서울에서 교사가 되고팠으나 그렇게 못 했기에 학생들을 갈구고 괴롭혔을까.


  왜 네덜란드말을 골랐을까. 나도 모른다. 그러나 네덜란드말로 갔다. 왜 이탈리아말이나 스웨덴말로는 안 갔을까. 나도 모른다. 이란말이나 터키말로는 왜 안 갔을까. 글쎄, 나로서도 잘 모른다.


  내가 잘 모르는, 또는 내가 제대로 못 떠올리는 어떤 끈이 있기에 네덜란드말로 갔으리라 느낀다. 이리하여, 아직 어설프게 네덜란드말을 처음 배울 적에, 네덜란드사람을 한 번 만났고,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으로 딸아이와 마실을 다녀온 인천 화평동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을 만났으며, 노래꾼 권진원 님과 소설쟁이 김남일 님이 이 학과를 나온 줄 깨닫는다.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나서 그만두고, 고졸 학력으로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다가, 이오덕 님 유고 갈무리하는 일을 맡던 어느 날에는, 이 학과를 다니고 출판사를 연 양철북 출판사 사장님을 만난다. 이 끈이 이어져 양철북 출판사에서 2010년에 내 책을 하나 펴낼 수 있었다. 이 끈은 아직도 이어져 2013년에 이오덕 님 일기를 다섯 권짜리 책으로 양철북 출판사에서 내놓았다.


  네덜란드말 학과에 들어가 처음 들은 수업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 ‘반 고흐’는 엉터리로 가리키는 이름이고, 네덜란드말로는 ‘환 호흐’이다. 네덜란드말에서 ‘v’는 한글로 적으면 ‘ㅎ’이고 소리값으로는 ‘ㅎ + ㅍ’이다. 네덜란드말에서 ‘g’와 ‘gh’는 독일말 거센소리 ‘gh’와 똑같고, 한글로 적으면 ‘ㅎ’가 된다. 한국 근대역사에 나오는 ‘헤이그’는 영어로 가리키는 이름이고, 네덜란드에서는 ‘den Haag’이다. 이곳 이름은 ‘덴 하:흐’이다.


  폴란드사람은 폴란드말 쓴다. 핀란드사람은 핀란드말 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덴마크도 저마다 다른 말을 쓴다. 루마니아도, 체코도, 슬로바키아도, 헝가리도, 저마다 다른 겨레요 다른 말을 쓴다. 그러니, 이런 나라 이런 겨레를 가리키는 이름과 소리값은 모두 다르다.


  그나저나 나는 왜 네덜란드말 배우는 곳에 들어갔을까. 어느덧 스무 해 훌쩍 지난 오늘에 이르러 돌아본다. 아무래도 나는 그 학과에 들어가 나라와 겨레마다 다 다른 말을 쓰는 줄 제대로 깨닫고 배웠기에, 오늘과 같이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생각하고 살피는 일을 하는 밑바탕을 다졌구나 싶다. 작은 나라마다 말이 다를 뿐 아니라, 작은 나라에서도 고장마다 말씨가 다 달라, 네덜란드도 마땅히 네덜란드 사투리가 있고, 덴마크도 덴마크 사투리가 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도 고장에 따라, 고을에 따라, 마을에 따라, 저마다 사투리가 다르다.


  영어로 생각하면 지구별 다 다른 나라와 겨레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쉬 잊거나 놓친다. 스페인사람은 ‘스페인’을 몹시 싫어한다. 한국외대에 다닐 적에 서반어과 동무들은 ‘에스파냐’라고만 했지 ‘스페인’이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에스파냐는 ‘에스파뇰’이니까. 핀란드도 핀란드 아닌 ‘수오미’이다. 헝가리도 ‘헝가리’가 아니다. 그러면 헝가리는 무얼까? ‘마자르’이다. 우리 나라는 ‘코리아’ 아닌 ‘한국’이고, 네덜란드는 ‘네이델란드’이다. ‘더치’라는 영어(영어라기보다 미국말)는 미국사람이 네덜란드사람 얕보며 쓰는 이름이다. 네덜란드사람 앞에서 ‘더치’라는 말 함부로 쓰다가 뺨을 맞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이웃나라를 이웃사람이 쓰는 이웃말로 생각하지 않고 영어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버릇에 길들었다. 이런 버릇이 되기에, 한국에서도 이웃을 마주할 적에 이웃이 지내는 이웃마을 삶자락을 넓게 헤아리면서 마주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이웃을 꾸밈없이 바라보자면, 이웃 삶자락을 내 삶자락과 같은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들어간 대학교에서 학과 공부를 제대로 안 시키고 베껴쓰기 숙제와 줄세우기 시험만 보여주었기에, 나는 네덜란드말 학자도 통역가도 번역가도 못 되었다. 그렇지만, 어설픈 대학교 학사과정은 나를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었다. 삶이란 참 재미있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