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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에 쓰는 "숲사람 이야기" 여섯째 글입니다. 지난 2월에 신문이 나오고 올 11월에 새 신문이 나오니, 자그마치 아홉 달만이로군요. 아홉 달만에 이 글을 드디어 올릴 수 있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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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해를 아우른다고 하는 한겨레 발자국에서 ‘인천’이 드러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곁에 있는 ‘서울’이 언제나 앞에 나타나는 한편,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처럼,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나 시골은 서울을 떠받치는 모습이 됩니다. 오백 해에 걸친 ‘씨붙이 임금님’들이 물러난 자리에 제국주의 권력자가 총칼을 앞세워 들어올 무렵, 인천은 뜻밖에 근·현대 역사 한켠에 살짝 얼굴을 비춥니다. 기차, 전기, 전화, 온갖 운동경기, 종교, 상수도 같은 것들을 서울에 들이기 앞서 인천에서 실험하곤 했어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는 몰려드는 사람 많아 끝없이 옛집 허물고 논밭 밀면서 새 집과 건물을 짓습니다. 이와 달리, 서울 곁 인천은 서울로 일하러 오가는 사람들 잠자리 노릇을 하며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재개발은 그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종섬과 용유섬을 메워 소금밭과 갯벌 없애 공항을 짓기도 하고, 연수동과 송도에 있던 논밭이랑 숲을 깎아 아파트를 때려짓기도 하지만, 인천에서 오래된 도심인 중구와 동구와 남구는 재개발 바람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이었어요. 서울로 물건 올려보내는 공장 많고, 서울로 바로 잇는 고속도로와 기찻길 있으며, ‘지옥철’이라는 전철 이름은 인천서 서울로 돈벌러 오가는 사람들한테 붙습니다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와 젊은이 모두 나가 덩그러니 고요한 인천 옛도심은, 개발업자가 바라보기에 애써 허물고 뚝딱거려 보아야 돈푼 안 나올 곳처럼 보였겠다 싶어요. 그런데, 이런 빛깔 때문에 인천 옛도심은 개화기 무렵, 해방과 한국전쟁 언저리, 1950∼60년대 모습에다가 1970∼80년대 모습까지 골고루 보여주는 ‘근·현대 생활문화 박물관’이 됐어요. 할매와 할배 고향은 다른 데라지만, 인천에서 3대 4대를 살며 새 토박이가 됩니다.
숲사람 이야기 6 - 작은 사람들 작은 사랑
― 배다리와 골목과 헌책방거리
골목사람
인천 옛도심 골목동네는 아주 넓습니다. 높직한 건물 따로 없이 고만고만한 집들 촘촘히 이어집니다. 언덕받이라 할 만한 데에는 으레 예배당 뾰족탑 높습니다. 답동 천주교성당이든 내리 감리교회이든 내동 성공회성당이든, 이런 갈래 저런 쪽 서양종교 예배당이 곳곳에 있어요. 개화기 무렵 서양사람들은 꼭대기에서 ‘한겨레 서민’을 내려다보는 곳에 큰집 지으며 콧대를 높였어요. 아마, 이런 큰집을 놓고 권력이라 일컫겠지요. ‘서민’이라 하는 사람들은 큰집 안 짓거든요. 수수한 사람들은 수수한 집을 지어 수수한 살림 꾸립니다. 골목길이 좁다 하지만, 자동차 지나가기에 좁을 뿐, 사람과 자전거 지나가기에는 알맞습니다. 골목길 거닐다 보면, 햇살이 아침 낮 저녁에 따라 집집마다 골고루 내리쬐는 결을 느낄 수 있어요. 참 촘촘히 붙어 지은 골목집이지만, 서로서로 햇살조각 조금씩 나누어 해바라기 누릴 수 있도록 했어요. 골목집을 가만히 살피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집이 없어요. 아무리 작은 골목집이라 하더라도 하루에 한나절 햇볕 골고루 들어옵니다. 이와 달리, 골목집 허물고 빌라나 연립주택 새로 지으면 으레 땅밑집을 만들어 햇살조각 못 들어오는 데가 생겨요. 빌라와 빌라가 서로 햇볕을 막아, 한낮에도 전깃불 켜야 하는 데까지 있어요.
골목동네에서 살아가기에 골목사람입니다. 이제 인천에도 아파트 무척 많으니, 골목사람보다 아파트사람 더 많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옛도심을 찬찬히 살피면, 옛도심에는 아파트보다 골목집이 훨씬 많고, 아파트사람보다 골목사람이 더 많아요.
골목사람은 골목길을 거닐며 오갑니다. 골목사람은 골목길 한쪽에 꽃그릇을 두어 골목꽃을 돌봅니다. 어린이와 젊은이 모두 나간 이른아침부터 골목길을 쓸며 치우는 골목할매와 골목할배는, 오래되어 쓰러진 옛 골목집 돌을 고르고 흙을 보듬어 골목밭 일굽니다. 온통 시멘트로 바르거나 아스팔트를 깐 골목길이지만, 골목할매와 골목할배는 조그마한 흙땅 마련해 나무 한 그루 심습니다. 어느 골목동네를 다니더라도, 감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탱자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수수꽃다리 포도나무 들이 씩씩하게 자라요.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튼튼하게 자라는 골목나무는, 골목동네에 푸른 숨결 나누어 줍니다. 골목밭에서 자라는 골목푸성귀랑 앙증맞은 꽃그릇에서 크는 골목꽃은, 골목동네에 푸른 내음 베풀어 주어요.
큰길에서는 골목을 느끼지 못합니다. 골안, 그러니까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골목을 느낍니다. 큰길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꼭 다섯 발걸음만 들어서 보셔요. 자동차 소리 잠듭니다. 매서운 겨울바람마저 가라앉습니다. 햇살조각 나누어 누리는 골목집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막고,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습니다.
건축학자가 설계한 집이 아닌 골목집입니다. 관청 토목부서에서 개발한 동네가 아닌 골목동네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스스로 수수하면서 투박한 손길 모두어 살가우며 따스한 빛으로 일군 곳이 골목동네입니다. 이 골목동네가 쉰 해 일흔 해 백 해 조용히 살아내며, 스스로 ‘근·현대 생활문화 박물관’이 되어요. 수십 억 들여 이런저런 기념관이나 박물관 짓지 않더라도, 골목동네 골목집이 고스란히 박물관이요 기념관 구실을 합니다.
헌책방거리
인천 배다리에는 헌책방거리가 있습니다. 헌책방거리는 창영동과 금곡동이 한길 따라 맞붙은 곳에 나란히 있었는데, 이제 창영동 쪽(철길 지나가는 쪽)에는 헌책방이 모두 문을 닫았고, 금곡동 쪽(철길 지나가는 건너편)에만 헌책방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동 축현초등학교 담벼락 따라 길장사를 했다 하고, 차츰 배다리 쪽으로 옮겨 창영교회 둘레까지 가게를 꾸리다가, 1970∼80년대를 거치며 오늘날 자리에 헌책방거리를 이루었다고 해요. 〈삼성서림〉 〈한미서점〉 〈대창서림〉 〈집현전〉은 예순 해 안팎에 이르는 기나긴 해에 걸쳐 사람들한테 책 하나 나누는 길을 걸었습니다. 〈아벨서점〉은 다른 헌책방 일꾼들한테는 처음에 ‘아가씨 일꾼’이었다 하는데, 어느덧 〈아벨서점〉도 헌책방거리를 마흔 해 남짓 지키는 ‘할머니 일꾼’이 되었습니다.
헌책방이 거리를 이루어 잇닿기에 헌책방거리입니다. 퍽 아스라한 지난날을 떠올리면, 헌책방 갯수가 많이 줄었다 할 테지만, 헌책방은 꼭 한 군데만 있어도 그곳이 헌책방골목이 되고 헌책방거리가 됩니다. 전라북도 전주시를 보면 〈홍지서림〉과 〈민중서관〉(이곳은 문을 닫았어요)이 있는 데를 ‘홍지서림 골목’이나 ‘민중서관 골목’이라고 가리켜요. 지역사람한테 슬기로운 지역문화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구실 맡는 책방 한 곳이 있어 지역사람은 그 책방 이름 하나 떠올리며 이름을 붙입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다섯 군데 있는 헌책방 가운데 한 곳 두 곳 할매와 할배가 몸이 힘들어 가게를 쉬려 한다 하더라도, 꼭 한 군데 헌책방이 튼튼하게 책살림 꾸린다면, 이곳은 언제까지나 헌책방거리입니다. 전라북도 남원시를 보면, 용성초등학교 옆에 있는 헌책방 〈용성서점〉은 헌책방 아닌 문방구와 구멍가게로 거의 바뀌었습니다. 책은 구석으로 밀려났고, 그나마 먼지만 두껍게 먹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문방구와 구멍가게 구실로 바뀐 이곳에 헌책 하나 놓이면, 이곳은 앞으로도 헌책방이에요. 왜냐하면, 책 하나가 책방이요, 책방 하나가 마을이거든요. 책 하나에 서린 넋을 읽어 온누리를 헤아리고, 책방 하나에 깃든 책을 마주하며 못목숨 숨결을 짚어요.
작은 출판사에서 작은 책 하나 내놓습니다. 수십만 수백만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천 사람 이천 사람 삼천 사람 즐거이 읽을 작은 책 하나 내놓습니다. 때로는 백 사람 이백 사람 삼백 사람 기쁘게 읽을 더 조그마한 책 하나 내놓습니다.
백만 사람이 읽어 주어야 ‘책’이 되지 않습니다. 십만 단골 드나들어야 ‘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밭 되어 스스로 아름다운 책씨앗 심을 줄 아는 책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책밭 일구어요. 책밭 일구는 책손이랑, 책밭 보살피는 책방지기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책마을 빚습니다. 으리으리한 건물 우줄우줄 올려야 책도시나 문화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골목집 한쪽에 마련하는 책방이 하나둘 모여 책도시 되고 책골목 되며 책문화 이루어져요.
배다리 헌책방거리 어귀를 보면 〈나비날다〉라 하는 책집 하나 있습니다. 외국말로 ‘북카페’라 할 수도 있는 책쉼터인데, 〈나비날다〉 1층은 책집이요, 2층은 뜨개집이기도 하고, 찻집이기도 하며, 유기농 물건 다루는 나눔집이기도 합니다. 〈나비날다〉 1층 안쪽은 길손집이기도 합니다. 길손집이란 요즘 떠도는 말로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복판에는 〈시 다락방(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이 있습니다. 2007년 11월부터 다달이 ‘시 낭송회’를 여는 아기자기한 전시관이자 만남터인 다락방이지요. 시청이나 구청에서는 이처럼 고즈넉하고 어여쁜 문화쉼터를 아직 마련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돈이 없다고만 말합니다. 그런데, 그야말로 ‘돈이 없다’ 할 헌책방 일꾼 한 사람이 가게를 장만하고 나무일을 하면서 책꽂이와 나무계단과 전시대 모두 짜고 맞추어 〈시 다락방〉을 열었어요. 참말, 책마을이란 돈으로 짓지 못합니다. 책마을도 책집도 책숲도, 따스한 손길과 넉넉한 마음길과 살가운 사랑길 어우러지면서 천천히 일굽니다.
〈시 다락방〉 곁에는 〈배다리 사진관〉이 자리합니다. 혜광학교 교사이면서 사진작가인 이상봉 님이 사진잔치와 사진강의를 꾸준히 열어요.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창영초등학교 쪽으로 가면 〈스페이스 빔〉이 미술문화 북돋우는 잔치판을 꾀하고, 조금 더 걸어가면 〈개코막걸리〉 지나 〈마을사진관 다행〉이 있어, 마을사람 사진관이자 이야기쉼터 노릇을 합니다. 〈마을사진관 다행〉 바로 옆에는 〈한점 갤러리〉가 있어요. 이름 그대로 ‘한 점’, 한 뼘, 한 칸짜리 앙증맞은 전시관입니다. 이 모두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조곤조곤 빛냅니다. 작은 사람들 작은 손길 모여 배다리 책밭·사랑밭·삶밭 보듬습니다.
배다리와 산업도로
인천 배다리라는 곳에는 여느 사람들 골목집과 헌책방거리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이곳에 지역 문화일꾼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인천시에서 배다리 골목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놓고 커다란 고가도로까지 놓으려 하는 막개발을 동네사람 모르게 밀어붙이려 하던 2006년 끝무렵과 2007년 첫무렵부터 비로소 지역 문화일꾼이 차츰 모였어요. 인천시와 주택공사는 송림1동과 송현1동이 맞붙는 수도국산 달동네 골목집을 와르르 밀어 아파트숲을 짓고는 동네사람 모르게 땅굴을 팠지요. 높은 쇠울타리로 가렸으니 드러나지 않았는데, 지자체와 중앙정부와 개발업자는 골목동네 밀어 없애면서 ‘달동네 박물관’이라는 시설을 하나 지었고, 이 밑에 배다리 삶터를 삽차로 깡그리 밀어붙여 쇼핑센터와 새 아파트숲을 올리려 했어요. 관청에서는 지도만 들여다보고 사람은 만나지 않았어요. 그러나,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 해요. 땅을 딛고 하늘을 마시며 이웃과 이웃이 어깨동무하면서 마을을 가꾸어야 비로소 보금자리가 태어납니다.
인천 배다리는 창영동, 금곡동, 송림1동, 경동, 유동, 송현1동이 크고작게 맞닿으며 이루어진 골목동네를 가리킵니다. 송림1동은 조금씩 뻗으며 송현2동화 화평동과 화수1동으로 이어지고, 창영동과 금곡동도 조금씩 뻗으며 숭의3동과 도원동과 율목동으로 이어지면서, 송림2동이랑 송림3동과 닿습니다. 배다리 한쪽 경동과 유동은 율목동 넘어 신흥동2가하고 신흥동1가로 이어지고, 송현1동은 동인천 쪽으로 뻗으면서 인현동1가와 내동과 신포동까지 닿습니다.
배다리라고 할 때에는 어느 작은 점 하나가 아닙니다. 지도로 보면 작은 동그라미 하나로 그릴 만하더라도, 작은 동그라미로 그려진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꾸려요. 작은 골목집이 서로 어깨를 기대요. 작은 골목사람이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골목아이가 골목놀이를 하고, 골목어른이 골목걸상이나 골목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 잔에 이야기잔치 이룹니다.
사람들은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아야 문화를 누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마을 이웃하고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 한 자락으로 문화를 누립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어진 옛이야기란 모두 ‘입 문학’, 곧 구비문학이에요. 땅을 밟고 흙을 만지던 사람들이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으로 아끼면서 빚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입 문학’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골목동네 골목사람이 알콩달콩 복닥이며 빚는 이야기는 ‘오늘이야기’입니다. ‘오늘이야기’는 새 아이들 태어나 새 보금자리 일구며 자라는 동안 시나브로 ‘옛이야기’가 되고, 이 옛이야기는 다시 새 아이들 태어나 입과 입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으면서 ‘삶이야기’로 거듭납니다.
책이란, 오늘이야기가 옛이야기 되고 다시 삶이야기로 거듭나는 길타래를 살며시 담는 이야기그릇입니다. 삶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꿈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노래이기도 하며 춤이기도 합니다. 웃음이기도 하고 눈물이기도 하지요.
책은, 작은 사람들 삶과 사랑과 꿈과 노래와 춤과 웃음과 눈물을 담아요. 책방은, 작은 사람들 이야기꾸러미 건사한 아름다운 책을 정갈히 모시는 쉼터입니다. 책방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꽃으로 즐거운 이야기잔치 누리는 만남터입니다. 그래서, 인천시와 주택공사와 개발업자가 한통속 되어 인천 배다리에 산업도로 밀어붙이려 할 적에, 골목사람과 책방사람과 지역 문화일꾼 모두 똘똘 뭉쳐 맞서 싸워 끝내 예쁜 삶자락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숲과 사람숲과 책숲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시 다락방〉을 마련하며 빙그레 웃는 〈아벨서점〉 책방지기 곽현숙 님은 “도시에서는 책방이 숲이에요.” 하고 말합니다. “책이란, 책마다 사람이 자연인 것을 알아 가는 하나의 길이란 말이야, 길.” 하고도 말합니다. 헌책 하나 만져 사람들한테 책내음 짙게 드리운 책방지기 말마디에는 사랑 한 자락 묻어납니다. 책방지기 사랑 한 자락은,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던 나무들이 종이가 되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 책방으로 들어오기까지 어떤 길에 섰느냐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시골에서는 무엇이 숲일까요. 한국에서는 어디가 숲일까요. 지구별에서는 어느 곳이 숲일까요. 우리 마음에는 어떤 숲이 있을까요. 우리들은 책 한 권 만나며 마음밭에 어떤 나무씨앗이나 풀씨나 꽃씨 한 톨 심는가요.
책내음은 곧 나무내음이면서 숲내음입니다. 숲내음은 푸른내음이요 사랑내음입니다. 이 나라 골골샅샅 아파트숲만 솟지 말고, 고즈넉한 책숲과 사람숲 짙푸르게 빛나기를 빕니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숲사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