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16 - 완결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68

 


전쟁을 만든 사람
― 불새 16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2.9.25./4500원

 


  새벽별을 바라봅니다. 십일월로 접어든 다섯 시 반에 새벽별 초롱초롱 환합니다. 한 달 앞서만 하더라도 다섯 시 반은 날이 훤하게 샜고, 두 달 앞서만 하더라도 네 시 반 즈음이면 날이 훤하게 샜어요. 이제는 다섯 시 반에도 하늘빛 깜깜합니다. 앞으로 한 달 더 흐르면 여섯 시가 되어도 하늘빛이 깜깜하겠구나 싶습니다.


  새벽별 곁에 새벽달이 있습니다. 십일월 첫날 새벽달은 초승달입니다. 실웃음을 짓는 입술과도 같은 새벽달은 새벽별한테 둘러싸여 노랗게 빛납니다. 이 새벽이 저물고 먼동 천천히 트면서 날이 훤하면, 둥그렇고 하얗게 빛나는 해가 저 멧자락 위로 봉긋 솟겠지요.


  시골마을에는 해와 달과 별을 가리는 전깃줄이 없습니다. 마을 고샅 밝히는 등불 몇 있으나,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이 없습니다. 해를 보고 싶으면 해를 봅니다. 달을 보고 싶으면 달을 봅니다. 하늘을 보고 싶으면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싶으면 별을 보아요.


  들을 살살 어루만지는 바람을 살갗으로 누립니다. 숲을 감돌며 부는 바람이 멧새 깃털을 간질이면서 숲노래 나누어 줍니다. 새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서 이웃으로 지냅니다. 물질문명과 도시와 농약이 멧짐승 거의 모두 죽여 없앴지만, 깊은 시골마을 숲에는 크고작은 숲짐승 조금 남아 숲살이를 가늘게 잇습니다.


- “이봐, 왜 그래?” “이 염불 같은 교주의 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 “곧 익숙해질 거야. 익숙해지면 신경 쓰지 않게 돼. 오히려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걸.” (6쪽)
- “자, 자, 뭣들 하는 거냐? 애들 싸움도 아니고. 한쪽은 특수훈련을 받은 여전사. 다른 한쪽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킬러잖아. 좀더 터프하게 해 보라구. 갈갈이 찢어 버려!” (12쪽)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역사 과목이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로 역사를 배웁니다. 교과서로 아이들이 받아드는 역사책을 펼치면,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온통 전쟁 이야기입니다. 누가 임금이 되어 땅을 얼마만큼 넓혔고, 어느 한 나라 곁에 또 누가 임금이 되어 땅을 얼마쯤 넓히려고 어떤 무기를 갖추어 치고받아 죽이고 죽는 싸움을 언제까지 벌였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는 모두 궁중 문화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문화는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가만히 살피면, 1500년대이든 1000년대이든 500년대이든, 임금 둘레에 있는 신하나 심부름꾼 숫자는 시골 흙지기 숫자하고 댈 수 없을 만큼 적어요. 이무렵 시골 흙지기는 99%쯤 되었을 테지요. 어쩌면 99.9%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1%니 0.1%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벌인 싸움 이야기만 가득해요. 1%나 0.1%밖에 안 되는 사람이 권력을 거머쥐어 흥청망청 누리던 문화 이야기만 빼곡해요.


  역사는 전쟁일까요? 역사는 전쟁인가요? 역사는 권력다툼과 땅따먹기일까요? 역사는 전쟁무기요, 임금과 신하와 양반 꽁무니 쫓는 이야기인가요?


- “그때, 지상 프론트에서 당신 손에 죽었어도 난 상관 없었어. 나도 그냥 킬러일 뿐이야. 임무를 위해 사람을 벌레 죽이듯 몇 십 명이나 죽인 인간이야.” “그럼, 왜 날 도와주는 거지? 어서 죽이지 않고?” “그럴 수가 없어! 이번만큼은 널 찌르는 것도 망설였어. 이유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16쪽)
- “아뿔싸! 리카온이야.” “리카온이 뭔데?” “본부 직속 킬러야. 해저 수용소의 보고를 받고 잠복하고 있었을 거야. 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31쪽)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말을 모릅니다. 이런 말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시골사람도 ‘싸움’이라는 낱말을 쓰기는 하지만,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 같은 권력자 때문에 쓸 뿐입니다. 싸움터에 끌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 흙지기는 애먼 권력자 때문에 시골을 떠나 병졸이 됩니다. 이웃나라에서도 시골 흙지기가 애먼 권력자 때문에 시골을 떠나 병졸이 돼요. 싸움터에서 부딪히는 사람은 모두 시골 흙지기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거나 죽여야 할 까닭이 없지만, 등 뒤에서 권력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부라리며 닦달하니까, 애먼 이웃 흙지기를 칼로든 창으로든 베어 죽여야 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내가 죽으면 내 시골마을 보금자리 아이들이 슬퍼서 웁니다. 그런데, 내가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를 죽이면, 이웃나라 시골마을 아이들이 슬퍼서 울어요.


  권력자가 일으키는 전쟁은 애먼 시골 흙지기가 애꿎게 서로를 미워하도록 부추깁니다. 아무런 미움도 다툼도 슬픔도 눈물도 없던 시골 흙지기끼리 뜻없이 서로 손가락질하도록 닦달합니다.


  시골 흙지기는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 땅뙈기를 빼앗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마을 내 땅뙈기 잘 돌보면 넉넉할 뿐입니다.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도 우리 시골 땅뙈기를 가로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땅을 넓혀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일굴 수 있을 만한 넓이를 일구면 될 뿐입니다.

  이와 달리 권력자는 흙을 안 일굽니다. 흙을 안 일구면서 책상머리에서 책만 펼치니,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을 드날리려는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으려고 전쟁을 북돋웁니다. 다시 말하자면,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만듭니다. 흙을 모르고 흙밥 안 먹으며 흙삶 안 짓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만들 뿐 아니라, 전쟁 이야기를 역사로 남기고, 이 역사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교과서로 가르쳐서 머릿속에 지식으로 쑤셔넣으려 합니다.


- “으음, 자네가 부럽군. 영계가 보이다니. 난 강제로 출가해 불법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네. 신앙이란 그런 건지도 몰라. 믿음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신을 느끼는 것인가.” (47쪽)
-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이대로 계속 전진하십시오. 영계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건 왕자님의 강한 의지밖에 없습니다.” (72쪽)
- “천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그분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 이누 족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인간이 될까. 그리고, 어떻게 이누 족으로 돌아올까.” (219쪽)

 

 


  전쟁 이야기만 넘치는 역사란, 권력자와 지식인 놀음놀이입니다. 권력자와 지식인 놀음놀이밖에 안 되는 하잘것없는 전쟁 발자국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배워야 할 뜻도 값도 없습니다.


  우리가 배울 참다운 역사라면, 흙빛과 흙내음과 흙노래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흙을 어떻게 아끼고 살찌우면서 사랑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역사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풀이름과 나무이름과 벌레이름과 새이름과 짐승이름 들을 어떻게 지어서 붙였고, 이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짐승이 시골사람과 어떤 이웃이 되어 어깨동무를 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바로 역사 배우기입니다.


  풀을 배워야 역사를 배웁니다. 나무를 가르쳐야 역사를 가르칩니다. 흙을 배울 때에 역사를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풀줄기에서 실을 얻어 천을 짜고 옷을 짓는 삶을 가르칠 때에 역사를 제대로 가르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와 흙과 돌과 짚으로 집을 짓는 슬기로운 넋을 고이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있을 때에 ‘교육’이 참답게 이루어집니다.


- “정말 내 피가 필요없나요?” “거 정말 끈질기군. 필요없다니까.” “욕심이 없는 사람이군요.” (91쪽)
- “이곳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천 년 남짓 후의 세상이에요. 이 세상에서도 빛의 일족과 그림자 일족이라는 두 개의 신앙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죠. 하지만 난 인간들이 자연스레 문제를 해결하길 지켜보고 있을 뿐이에요.” “이렇게 끔찍한 전쟁인데도?” “그래요. 정말 처참한 일이죠. 종교 전쟁이란 언제나 그런 법이에요. 인간이란 존재는 몇 백 년 몇 천 년이 지나도 어딘가에서 늘 종교 문제로 끔찍한 전쟁을 벌이죠. 도무지 끝이 없어요. 나도 말릴 도리가 없고요.” “끝이 없다고? 왜 그렇지?” “종교니 신앙이니 하는 거 전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두 다 옳죠. 그래서 옳은 것끼리의 싸움은 막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96∼97쪽)
- “침략자인 불교가 옳단 말인가? 난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쁜 건 종교가 권력과 맺어졌을 때뿐이에요. 권력에 이용당한 종교는 정말 잔인하죠.” “하긴, 네 말이 옳긴 해. 권력이라.” “인간의 권력은, 인간 자신의 손으로 없애는 법. 그래서 난 지켜보고만 있는 거예요.” (98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불새》 열여섯째 권에서는 ‘전쟁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을 짓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을 만드는 사람이 지구별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랑을 짓는 사람이 지구별을 얼마나 포근하게 돌보고 아름답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너도 날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 “아버님에게 신이라면 제게도 신입니다.” (114쪽)
- “종교 따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상에 차별만 만들었을 뿐이잖아요! 이젠 지겨워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닥쳐!” (146쪽)
- “너의 의문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들어 봐라. 나는 빛 대신 새로운 종교를 만들 것이다. 그 종교는 내가 만든 것이다. 전 인류가 날 따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행복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로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 그걸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종교지. 이것을 난 불멸교라 이름 지었다.” (194쪽)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싸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싸우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삶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는 삶을 누립니다. 남을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은 참말 남을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서 스스로 1등이니 2등이니 하고 숫자를 외칩니다.


  어른인 나 스스로 어떻게 살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인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떠한 삶을 물려줄 적에 기쁘게 웃을 만한가요. 어른인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마을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일구어야 즐거울까요. 어른인 우리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두레를 하면서 손을 맞잡아야 웃음꽃 기쁘게 피울 수 있는가요.

 


- “아주 긴 시간이었어. 우리가 헤어진 지 천 년이나 됐어.” “그래요. 당신도 나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죠. 천 년 동안. 아버지는 당신이 반드시 영계로 돌아오리라 믿으셨어요.” “그래, 지금의 난 인간이 아니야. 육체는 이미 죽었어. 여기가 어디지?” “아마 이누 족의 마을일 거예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232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는 열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열여섯째 권으로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고 열일곱째 권에서는 ‘뒷이야기(외전)’를 들려줍니다.


  《불새》 열여섯째 권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야기 한 자락은 ‘몸은 죽되 마음은 죽지 않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몸은 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마음은 죽지 않아요. 몸은 사라져서 흙으로 돌아가지요. 아니, 몸은 흙이 되지요. 그렇지만 마음은 흙으로 가지 않아요. 하늘로 가서 맑은 빛이 돼요. 맑은 빛이 되는 마음은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따사롭고 환하게 밝히는 사랑으로 이어져요.


  삶이란 마음이고 마음이란 사랑이 되어 사랑은 다시 푸른 숨결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전쟁이란 전쟁입니다. 전쟁은 전쟁을 낳습니다. 전쟁은 다시 전쟁을 부릅니다. 전쟁은 언제나 전쟁입니다. 사랑은 사랑이지요. 사랑은 사랑을 낳아요. 사랑은 다시 사랑을 부릅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요? 싸우면서 싸움에 휘둘린 채 살아가고 싶나요? 사랑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노래하며 살아가고 싶나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사람답게 아름다운 빛을 흩뿌리며 즐겁게 웃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바보스럽게 뒹구는 길도 하나이지요. 바보스럽게 뒹굴며 스스로 갉아먹는 길 또한 하나예요. 십일월 가을빛 환한 아침에 멧새들 우리 집 둘레에서 시원스럽게 노래하며 고운 빛을 깨웁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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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사랑을 낳고 전쟁은 전쟁을 낳는다.
- 아주 간단한 내용 같지만 깊게 생각해 볼 만한 말입니다.
좋은 포토 리뷰입니다. ^^

숲노래 2013-11-01 13:37   좋아요 0 | URL
가장 아름다운 길은
가장 쉬운 길이고,
가장 즐거운 길은
가장 사랑스러운 길이니,
이러한 길을
사람들이 스스로 알뜰살뜰 느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