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손가락

 


  헌책방 책지기는 책을 캐내려고 온몸을 쓴다. 책을 깨끗하게 보고 나서 헌책방으로 곱게 들고 와서 내놓는 분도 있으나, 책을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는 사람과 기관이 더 많아서, 헌책방 책지기들은 버려진 책을 되살리려고 여러모로 품을 들이고 겨를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책방에 책이 쌓이는 흐름에 맞추어 책꽂이를 새로 짜야 한다. 이러는 동안 손이 곧잘 다치고, 손가락이나 손바닥에 반창고를 붙이는 일이 잦다. 장갑을 끼고 일해도 손가락이나 손이 다치곤 한다.


  헌책방 책지기한테 “일하는 예쁜 손”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떻겠느냐 하고 으레 말씀을 여쭙는데, 모두들 “이 못생긴 손이 뭐가 예쁘냐?” 하시면서 손사래를 친다. 하는 수 없이 헌책방 책지기 손을 사진으로 못 담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책값을 셈하고 나서 간이영수증 한 장 손글씨로 적어 주십사 하고 말씀을 여쭈는데, 간이영수증에 날짜와 책값을 찬찬히 적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렇구나, 따로 손을 찍자고 하면 모두들 남우세스러워 하시니, 이렇게 영수증 적으실 적에 살짝 사진으로 담으면 되겠네.’하고 느낀다.


  폐지처리장과 고물상을 뒤져 책을 캐내고, 캐낸 책을 닦고 손질하면서 다치거나 굵어지거나 투박해지는 손가락이 바로 책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온 손가락이라고 느낀다. 책 하나 아름답게 읽히기를 바라며 품을 들인 손가락이다. 책 하나 사랑스레 다시 빛날 수 있기를 꿈꾸며 긴 나날 바친 손가락이다. 4346.10.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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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29 11:27   좋아요 0 | URL
반창고 붙이신 손가락 사진,이 그렇듯
깊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숲노래 2013-10-29 14:33   좋아요 0 | URL
헌책방 일꾼들 손가락은 늘 이렇게 생채기투성이라 반창고를 붙이셔요.
고물상에서 책들을 건져낼 적에, 또 책을 실어 나를 때에,
실어 나른 책을 손질할 적에
그야말로 품이 많이 들어요.

가상 2013-10-29 11:56   좋아요 0 | URL
쉽게 쓴 책은 없을텐데 너무 쉽게 가지고, 또 버립니다. 어떤 손이든 '살리는 손'은 예쁩니다.

숲노래 2013-10-29 14:33   좋아요 0 | URL
그래도 헌책방이 있어
쉽게 버려지는 책들이
다시 빛을 볼 수 있고,
알뜰히 쓴 책 또한
두고두고 되읽히며 사랑받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