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려 고마운 도서관
책을 버려 고마운 도서관입니다. 새로 나오는 책을 갖추느라 몇 해쯤 지난 책 거리끼지 않고 버리는 고마운 도서관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갖추느라 사람들 손길 거의 못 탄 아름답고 훌륭한 책들 버리는 고마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버려 주기에 이 책들 폐지처리장으로 가지만, 폐지처리장에서 온갖 먼지와 냄새 뒤집어쓰며 책을 캐내고 살려서 헌책방 책시렁으로 옮겨 주는 책지기들 있습니다. 이 나라에 헌책방 없었으면, 아주 뜻있고 알찬 책들 거의 다 자취를 감추고는 제대로 빛을 못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서관이 곳곳에 새로 늘기는 하지만, 책 둘 자리는 늘리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도서관은 책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동네마다 많던 작은 책방들 문을 닫으며 이 책들 몽땅 버려지는데, 헌책방이 있어 이 책들 건사해 줍니다. 그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헌책방 아니라면 책을 찾을 수도, 책을 말할 수도, 책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헌책방에서는 1970년대나 1980년대에 나온 책이 ‘고서’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는 1990년대에 나온 책조차, 또는 2000년대에 나온 책마저 ‘빌려주기 어려운 책’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2000년대에 나온 책이라 하더라도 출판사가 문을 닫은 데가 많으며, 다시 못 찍은 책이 많아요. 그러니 도서관에서 1990∼2000년대 책을 섣불리 못 빌려줄 만합니다. 빌려가고는 ‘잃어버렸다’ 하고 안 돌려주면 큰일이 나거든요. 돈으로는 다시 살 수 없는 책이 많아, 도서관에서는 ‘다시 사서 갖출 수 있을 만한 책’만 빌려주리라 느껴요.
도서관에서는 책을 버립니다. 책을 둘 자리가 더 없기 때문입니다. 공공도서관도 대학도서관도 모두 똑같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수가 정년퇴임을 할 즈음 이녁이 건사한 자료와 책을 으레 대학도서관에 맡기고 싶어 합니다. 대학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책 둘 자리가 좁은데, 교수님께서 몇 만 권에 이르는 책을 대학도서관에 맡기겠다고 하니, 모두들 고개를 젓고 손사래를 칩니다. 억지로 책을 맡거나 받으면,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모두 폐지처리장으로 버립니다. 헌책방 책지기가 하루라도 폐지처리장으로 나가지 않다가는 그만 하루아침에 몇 만 권에 이르는 알뜰한 자료와 책이 송두리째 갈갈이 찢깁니다.
책을 버려 고마운 도서관인데, 어차피 책을 버려야 한다면 폐지처리장 아닌 헌책방에서 맡아 가져가도록 하면 아주 고마우리라 생각합니다. 책이 덜 다치게 하는 길을 찾으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이 책들 도서관에 둘 자리 없거나 빌려갈 사람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 기쁘게 맞아들여 건사하고픈 사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부디 헌책방에 책을 내놓아 주셔요. 누군가 대학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책을 맡기고 싶다는 사람 나오면, 이분들한테 가까운 헌책방 전화번호를 건네면서 ‘헌책방에 책을 맡기면 책이 살아납니다’ 하고 따사로운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셔요. 참말, 묵은 책은 헌책방에 가야 살아납니다. 참말, 사랑받으며 읽힌 책은 헌책방에 가야 빛납니다. 참말, 알뜰히 건사한 아름다운 자료와 책 꾸러미는 헌책방에 가야 새 임자를 만납니다. 4346.10.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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