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난자몬자 1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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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75

 


노래가 흐르는 삶
― 수수께끼 난자몬자 1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1.4.14.

 


  저녁에 저녁새 노래를 듣습니다. 새벽에 새벽새 노래를 듣습니다. 가을이 한껏 깊은 시월 끝무렵에는 풀벌레 노랫소리가 가물가물 옅습니다. 시골마을 고즈넉하게 감돌던 풀벌레 노랫소리는 차츰 이울며 머잖아 똑 끊어지겠지요. 저마다 마지막 풀노래 들려주고는 흙 품에 안길 테지요.


  개구리도 풀벌레도 노래를 그치고 흙 품에 안길 무렵이면, 멧새와 들새 지저귀는 소리가 깊습니다. 퍽 먼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마을로 퍼집니다. 한밤에 아이들 이불 여미면서 가슴을 토닥토닥 다독이다가 살며시 스며드는 노래를 듣습니다. 이 밤에 저 새들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동이 트면 우리 집 마당과 뒤꼍으로 멧새들 포르르 날아들어 먹이를 찾습니다. 열매도 따고 몽우리도 쫍니다. 무언가 배를 채울 만한 것 있는가 하고 이 집 저 집 부산스레 돌아다닙니다.


  시골사람이 기계를 안 쓰던 지난날에는 들판에 남은 이삭을 쪼려고 새들이 이곳저곳 누볐습니다. 시골사람이 농약을 안 쓰던 지난날에는 풀숲과 흙땅이 많아 새들은 이곳저곳에 깃들면서 먹이를 찾았습니다.


  사람도 살고 새도 살며 벌레도 살고 들짐승과 숲짐승이 나란히 살던 지난날입니다. 사람도 살고 냇물고기도 살며 바닷물고기도 함께 살던 지난날입니다. 숲이 우거지니 여우도 늑대도 곰도 범도 같이 살았지요. 나무가 우람하니 책걸상이나 옷장을 짤 나무를 애써 다른 어느 나라에서 사들일 까닭 없이 숲에서 나무를 베어 손수 짰지요. 아니, 지난날 사람들한테는 책걸상이 따로 없어요. 옷장도 따로 없어요. 자그마한 집에 시렁을 대어 옷을 얹습니다. 집에 종이책 건사하던 사람 거의 없습니다. 한자도 한글(훈민정음)도 모른다 하더라도 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말로 삶을 물려주었습니다. 흙을 일구는 길, 풀을 뜯는 길, 풀에서 실을 뽑아 천을 엮고 옷을 짓는 길, 돌과 흙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는 길, 고기를 낚고 손질하는 길, 날씨를 읽고 바람을 살피는 길, 별자리를 헤아리고 버섯이랑 꽃을 가늠하는 길, 나무마다 다른 쓰임새를 돌아보고 짚을 꼬아 신이며 바구니며 짜는 길, 지게를 만들어 등짐을 지는 길 들을 모두 책 아닌 말로 조곤조곤 물려주었습니다.


  조그맣게 마을 이루고 조그맣게 보금자리 이룹니다. 조그맣게 흙 일구고 조그맣게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 얻어 조그마한 한솥밥 즐거이 나눕니다. 입에서 입으로 일노래 삶노래 자장노래 들노래 사랑노래 불러 잇습니다. 손에서 손으로 일머리 일거리 일감 어깨동무 두레 품앗이 나누며 잇습니다.


- “그러니까 난, 타로 너랑 같은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그건 힘들어. 돈이 없는걸. 이 가게는 재고정리를 해서, 앞으로 한 달 뒤에 문을 닫을 거야. 할아버지 연금도 이젠 안 나오니까. 중학교 졸업하면 바로 일해야지.” (14∼15쪽)

 

 


  우리 겨레 옛삶은 노래가 흐르는 삶입니다. 무슨 일을 하건 언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들일을 하건 집을 짓건, 모내기를 하건 피를 뽑건, 풀을 뜯건 나물을 캐건, 밥을 짓건 방아를 찧건, 절구질을 하건 아기 젖을 물리건, 빨래를 비비건 새끼를 꼬건, 늘 노래입니다. 어른들만 노래가 아닙니다. 아이들도 이런 놀이 하며 이런 노래 부르고, 저런 놀이 하며 저런 노래 부릅니다. 언제나 노래가 흐르며 일을 했습니다. 늘 노래가 감도는 곳에서 깔깔 웃으며 놀이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에는 노래가 좀처럼 흐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 유행노래가 퍼지기는 하지만, 정작 사람들 스스로 노래를 짓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이녁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노래를 스스로 짓지 못합니다. 텔레비전 유행노래만 따라 부르지요. 텔레비전 유행노래를 군민잔치나 면민잔치나 돌잔치나 일흔잔치 같은 데에서도 앵무새처럼 따라 부릅니다.


  노래가 없는 삶이란 사랑이 없는 삶입니다. 노래를 짓지 못하는 삶이란 꿈을 짓지 못하는 삶입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삶이란 웃음이 없는 삶입니다. 노래를 아이들한테 입으로 물려주지 못하는 삶이란 가르침과 배움이 사라진 메마른 삶입니다.


- “거짓말이라니 무슨 소리야?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닫는다고 사라질 줄 알았어? 뭐라고 말 좀 해 봐! 난 여기 분명히 있다고! 똑똑히 보이잖아!” (54∼55쪽)
- “괜찮아. 아무리 오래 산 사람이라도 이런 일을 당하면 눈물이 날 거야.” (75쪽)


  이토 시즈카 님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1)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는 ‘수수께끼와 같은 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주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는데, 이 커다란 나무를 타고 오르다가 그만 미끄러져 떨어지는 사람은 ‘땅에 안 떨어’집니다. 높다란 나무에서 떨어지지만 ‘죽지 않’습니다. 높다란 나무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면 ‘엄지공주마냥 작은 사람으로 바뀝’니다.


  왜 안 죽을까요? 왜 작은 사람으로 바뀔까요?


  아무도 모르지요. 이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요? 이 나무는 이 시골마을에서 얼마나 오래도록 마을사람과 삶을 함께 이었을까요?

 


- “너, 굉장히 바르게 자랐구나?” “상당히 막 자랐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 속에서 자란 거 같다고.” (83∼84쪽)
-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늘 이런 생각이 들어. 이 마을에서 함께 자라고, 친구들이랑 같이 나이를 먹는 거, 그건 어쩌면 굉장히 행복한 일 아닐까?” (119∼120쪽)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가슴에 큰뜻을 품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가슴에 품은 큰뜻이란 무엇일까요. 돈을 많이 벌겠다는 뜻? 이름을 날리겠다는 뜻? 국회의원이나 판사나 검사쯤 되겠다는 뜻? 의사가 되겠다는 뜻? 이름난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되겠다는 뜻?


  시골에 남아 흙을 만지거나 물을 만지는 사람한테는 큰뜻이 없을까요? 시골 흙지기로 살거나, 시골 바다지기로 살아가는 일은 아무런 큰뜻이 없거나 아무런 보람이 없다 할 만할까요?


  도시로 가서 돈·이름·힘을 얻는대서 큰뜻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에 뿌리를 내려 사랑을 속삭이며 삶노래 부르는 하루는 큰뜻이 아니라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삶은 스스로 짓습니다. 노래는 스스로 짓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짓습니다. 남이 지어 주는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남이 지어 준 노래는 내가 지은 노래만큼 재미있지 않습니다. 남이 베푸는 사랑이 내가 짓는 사랑처럼 곱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즐거움은 웃음입니다. 웃음은 노래입니다. 노래는 일이요 놀이입니다. 일과 놀이는 삶입니다. 삶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즐거움입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를 합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과 놀이가 될 때에 아름다운 삶이 되고,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4346.10.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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