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581) 종전의 1 : 종전의 편견

 

한반도 전체 인구보다도 훨씬 많은 1억 2천만의 일본인들을 종전의 편견과 고정관념 일색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수근-캄보디아에서 한일을 보다》(월간 말,2003) 6쪽

 

  “한반도 전체(全體) 인구보다”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 모두보다”나 “한반도 사람 모두보다”나 “한반도 사람 숫자보다”로 다듬습니다. “1억 2천만의 일본인들”은 “1억 2천만이나 되는 일본사람들”로 손질합니다. ‘일색(一色)’은 앞말이나 뒷말과 이어서 ‘-뿐이다’로 고치고, ‘과연(果然)’은 ‘참으로’나 ‘참말로’로 고쳐 봅니다. ‘시각(視角)’은 바라보는 매무새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바라보는 시각”처럼 적으면 겹말이에요. “바라보는 눈”이나 “바라보는 눈길”로 바로잡습니다.


  한자말 ‘종전(從前)’은 “지금보다 이전”을 가리킵니다. “종전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다”나 “대접이 종전에 비해 소홀하다”처럼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只今)보다 이전(以前)”이란 “오늘보다 앞서”를 뜻하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예전’입니다.

 

 종전의 편견과 고정관념 일색으로
→ 예전처럼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만
→ 예전과 같이 치우치고 틀에 박힌 생각으로만
→ 지난날처럼 치우치거나 틀에 박힌 생각으로만
 …

 

 ‘편견’이라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생각입니다. ‘고정관념’이라면 한쪽으로만 붙박힌 채 바라보는 생각입니다. 한 사람이 이 두 가지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치우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또는 “비틀리거나 뻔한 생각”으로 바라보는 셈입니다. ‘딱딱한’ 생각이거나 ‘굳은’ 생각이에요. ‘낡은’ 생각이거나 ‘케케묵은’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종전의 방식”이라면 “예전 방식”이나 “낡은 방식”이나 “케케묵은 방식”으로 손볼 수 있고, “종전에 비해”는 “예전에 견주어”나 “지난날을 생각하면”으로 손볼 만합니다.


  오랜 옛날부터 오늘을 거쳐 앞으로도 즐겁게 쓸 아름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먼먼 예전부터 오늘날과 앞날까지 두루 사랑스레 쓸 고운 말을 헤아립니다. 4339.4.19.물/4346.10.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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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사람보다도 훨씬 많은 1억 2천만이나 되는 일본사람을 예전처럼 치우치거나 딱딱한 생각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참말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49) 종전의 2 : 종전의 관행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우리는 여전히 종전의 관행에 따라 자동차 천국과 아스팔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매진하고 있다
《박용남-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시울,2006) 44쪽

 

  ‘무시(無視)하고’는 ‘아랑곳하지 않고’나 ‘거들떠보지 않고’로 다듬고, ‘여전(如前)히’는 ‘예전처럼’이나 ‘늘’로 다듬습니다. ‘관행(慣行)’은 ‘버릇’으로 손보고, “자동차 천국(天國)”은 “자동차 나라”로 손봅니다. “만들기 위(爲)해”는 “만들려고”나 “만든다며”나 “만들겠다며”로 손질하고, ‘지금(只今)도’는 ‘오늘도’나 ‘아직도’로 손질하며, “매진(邁進)하고 있다”는 “힘쓴다”나 “애쓴다”나 “땀을 흘린다”로 손질합니다.

 

 여전히 종전의 관행에 따라
→ 예전처럼
→ 예전 버릇 그대로
→ 그동안 이어 온 버릇처럼
→ 예전부터 해 오던 대로
→ 지난날 버릇대로
→ 낡은 버릇을 못 버리고
 …

 

  한자말 ‘여전(如前)히’는 “전과 같이”를 뜻합니다. ‘전(前)’은 ‘앞서’를 뜻합니다. 곧 ‘예전’입니다. 한자말로 적으면 ‘여전’이요, 한국말로 적으면 ‘예전’입니다. 그러니까, 보기글 “여전히 종전의 관행에 따라”는 겹말이에요. 한국말을 알맞고 아름답게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은 탓에 이와 같은 글이 나타납니다. 4339.6.29.나무/4346.10.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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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예전처럼 자동차 나라와 아스팔트 도시를 만든다며 오늘도 땀을 흘린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98) 종전의 3 : 종전의 동요적 작품

 

이런 이름만의 시 아닌 시 가운데는 지나치게 어른스런 손재주를 부려서 만든 작품이 가끔 나오는데, 이것이 종전의 동요적 작품과는 좀 다른 느낌을 주게 되어
《이오덕-아동시론》(굴렁쇠,2006) 72쪽

 

  “이름만의 시”는 “이름만인 시”나 “이름만 있는 시”나 “이름뿐인 시”로 손보고, “동요적(-的) 작품”은 “동요 같은 작품”이나 “동요 티 나는 작품”이나 “동요 닮은 작품”이나 “동요스러운 작품”으로 손봅니다. “좀 다른 느낌을 주게 되어”는 “좀 다른 느낌이어서”나 “좀 다르게 느낄 만해서”나 “좀 달리 느낄 수 있어서”로 손질해 봅니다.

 

 종전의 동요적 작품과는
→ 예전에 나온 동요스러운 작품과는
→ 지난날 동요를 닮은 작품과는
 …

 

  꼭 안 써도 되는 한자말을 쓰면서 토씨 ‘-의’가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보면, 한자말 ‘종전’ 아닌 한국말 ‘예전’을 넣었어도 그만 “예전의 ……” 꼴이 될 수 있었으리라 느껴요. 낱말은 낱말대로 알맞게 골라야 하면서, 말투 또한 말투대로 슬기롭게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동요스러운 작품은 누군가 ‘씁’니다. 예전에 누군가 쓴 동요스러운 작품이란 “예전에 나온 작품”입니다. 또는 “그동안 나온 작품”입니다. 글흐름을 함께 살피면서 글월을 올바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10.1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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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름만인 시 아닌 시 가운데는 지나치게 어른스런 손재주를 부려서 만든 작품이 가끔 나오는데, 이것이 예전에 나온 동요스러운 작품과는 좀 다른 느낌이어서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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