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15분 책읽기

 


  어제 여수 문화방송국에서 서재도서관 취재를 나왔다. 이분들이 나한테 맨 처음으로 물은 말은 “지금 시간이 열한 시 십오 분인데, 이렇게 아이들하고 함께 놀아도 됩니까?”였다. 열한 시 십오 분이 어떠하기에? 이분들이 이렇게 물은 뜻은 ‘왜 아버지가 집밖에서 돈을 벌러 다니지 않고, 집안에서 아이들하고 어울리느냐?’이리라. 흔히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고 말하지만, 게다가 성평등이니 여남·남녀평등이니 하고 읊지만, 이처럼 생각은 딱딱하게 굳은 채 안 달라진다. 어머니가 열한 시 십오 분에 아이하고 있으면 ‘마땅하고 자연스러’우며, 아버지가 열한 시 십오 분에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면서 아침을 차리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놀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집안 쓸고닦으며 일하면, ‘못마땅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노릇이 될까.


  이 나라에서는 언제까지 아버지들 누구나 집밖을 맴돌며 ‘아이들 자라나는 싱그러운 모습’하고는 동떨어진 채 돈만 벌어야 할까. 이 나라에서는 언제까지 어머니들 누구나 집안에 갇힌 채 ‘밥어미·애보개·심부름꾼’ 노릇이어야 할까.


  방송피디는 어떤 삶을 읽고 어떤 책을 읽는가. 신문기자는 어떤 삶을 보고 어떤 책을 보는가. 인문학자와 교사는 어떤 삶을 느끼며 어떤 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 나는 오늘도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언저리에 아침밥 아이들한테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밑 씻기고 놀면서 하루를 누린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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