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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 날 ㅣ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
김동수 글 그림 / 보림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3
아이들은 아픈 날이 없다
― 감기 걸린 날
김동수 글·그림
보림 펴냄, 2002.11.30.
아무리 힘들거나 고된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라 하더라도, 자는 동안 틈틈이 손을 뻗어 아이들이 옆에서 이불을 잘 덮는가 살핍니다. 잠결에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저기 멀리 뒹구는 이불을 잡아당깁니다. 손이 안 닿으면 발로 잡아끕니다. 눈을 뜨지 않은 채 손발을 써서 아이들이 이불을 꼭꼭 덮도록 여밉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훨씬 많이 어릴 적에는 밤새 잠을 거의 못 이루었습니다. 아이들이 밤에 오줌을 누느라 축축한 기저귀와 바지를 갈아입히고, 사타구니를 닦으며, 잠자리 이불을 걷거나 걸레질을 하느라 긴 밤을 보냅니다.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와 살아가는 요즈음은 밤에 아이들 오줌 누이느라 잠을 깨야 하고,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이 자꾸자꾸 이불을 차거나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거리기에 반듯하게 누워 자도록 다스리니, 잠을 설쳐야 합니다.
새벽에는 일찌감치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헤아립니다. 쌀은 엊저녁부터 미리 불리고, 국거리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일손이 달라집니다. 미역국을 끓이자면 물에 불려야 할 뿐 아니라, 국을 끓이기 앞서까지 새 물로 갈아 줍니다. 다시마가 국물에 배도록 하자면 한참 불려 놓아야 합니다.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옵니다. 잠꼬대하는 아이들 가슴을 톡톡 토닥입니다. 새벽바람 차가우니 이불을 다시 여미고, 작은 이불을 위에 포개어 덮습니다.
.. 엄마가 나에게 따뜻한 옷을 사다 주셨다 .. (5쪽)
아이들은 아픈 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고된 먼 마실을 다녀온다든지, 자동차를 너무 오래 태운다든지, 바다나 골짜기에서 몸이 얼얼하도록 논다든지, 이렇다면 아이들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픈 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끝없이 뛰고 구릅니다. 아이들은 멈추지 않고 달리며 노래합니다. 몸을 움직이며 후끈후끈 땀을 흘리는 아이들입니다. 자라고 새로 자라며 또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어버이가 엉뚱한 것을 먹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요. 어버이가 옷을 잘못 입히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요. 어버이가 집안을 제대로 쓸고닦지 않는 일 없으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요.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아이들은 늘 어버이와 같은 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으며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모두들 집이 작았어요. 집은 작더라도 헛간이 있고 마당이 넓었어요. 집은 작다지만 텃밭도 꽃밭도 있었지요.
예전에는 서로 옹기종기 달라붙어 키득키득 놀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집안 아닌 집밖에서 하루를 누렸습니다. 마당에서 달리고 고샅에서 뛰며 꽃밭과 텃밭 사이를 오갔어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셨지요. 흙을 밟고 풀과 나무를 만졌어요. 이렇게 들바람과 들넋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아플 턱이 없어요. 들바람과 들넋으로 숨쉬며 일하는 어른들도 아플 일이 없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너무 아픕니다. 널찍하게 짓는 아파트에 방이 따로따로 있습니다. 예전에는 방을 따로 두더라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밤새 자주 들락거리며 이불깃 여미어 주거나 이마를 쓸어넘겼는데, 요사이는 이런 어버이가 자꾸 줄어듭니다. 널찍하게 짓는 아파트이다 보니, 집밖으로 나가서 하루를 누리기보다 집안에서 온 하루를 보내기 일쑤입니다. 굳이 집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할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요새 도시에서는 애써 집밖으로 나가더라도 느긋하거나 즐겁게 놀 만하지 않아요. 놀이터 없는 데 많고, 자동차 시끄러우며 무섭습니다. 새도 벌레도 개구리도 없지요. 흙도 풀도 나무도 없어요. 눈을 맑게 다스릴 만한 하늘이나 숲이나 바다가 없는 도시예요. 마음을 넓게 북돋울 구름이나 햇살이나 빗방울 만나기 어려운 도시예요.
.. 엄마는 내가 이불을 잘 덮고 자지 않아서 감기에 걸렸다고 하셨다 .. (25쪽)
김동수 님 그림책 《감기 걸린 날》(보림,2002)을 읽습니다. 감기에 걸린 날 밤, 오리털 겉옷을 놓고 즐겁게 꿈을 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오리털 겉옷을 선물로 받았는데, 털 하나가 뾰롱 빠져나왔다 하고, 밤에 꿈을 꾸면서 겉옷에서 오리털을 하나씩 뽑아 ‘털 없는 오리들’한테 모두 나누어 주었다고 해요.
그렇군요. 털 없는 오리들한테 털을 나누어 주듯, 이불을 조금씩 밀어내며 그예 뻥 걷어찼겠군요. 그런데, 아이들은 밤새 이불 없이 지내기도 해요. 이불을 걷어찬 줄 모르는 채 지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다가 스스로 어 춥네 하고 느끼면 어떻게 해서든 이불을 찾아내어 잡아당깁니다. 이불 한 채로 두 아이를 왼쪽과 오른쪽에 눕혀 같이 덮고 자다 보면, 어느 때에는 왼쪽 큰아이가 몽땅 가져가고, 또 어느 때에는 오른쪽 작은아이가 몽땅 가져갑니다. 하도 두 아이가 서로 ‘이불 당기기’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아이마다 이불 한 채씩 따로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저희 이불을 잡아당기다 못해 바닥에 깐 채 잠들고는 아버지 이불까지 빼앗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이불을 잡아당겼으면 잘 덮어야 할 테지만, 잡아당기기만 할 뿐 가랑이 사이에 끼고 잔다든지 옆으로 차 놓는다든지 하는군요.
아이들은 꿈속에서 하늘 훨훨 날아다니는가 봐요. 아이들은 꿈속에서 바닷속 깊이 헤엄치는가 봐요. 옷도 이불도 없이 홀가분하게 달리고 날고 헤엄치고 뛰노는가 봐요.
재미있게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아이들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납니다. 오늘은 뭐 재미나고 새로운 놀이 없을까 눈을 반짝이며 일어납니다. 어제는 어제이고, 오늘은 오늘입니다. 다시금 개구지게 달립니다. 또다시 신나게 뛰고 구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몸이 아플 틈이 없습니다. 참으로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