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사람들
아침 열 시 반에 찾아온 ‘여수 문화방송’ 사람들하고 저녁 여섯 시까지 방송 하나를 찍는다. 나는 이분들이 어떤 풀그림에 나올 어떤 이야기를 찍는지 모른다.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찾아온 사람들한테 찍힐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사람을 믿으며 방송에 찍히기로 했다. 옆지기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그동안 들어온 방송취재를 손사래치며 네 해를 지내다가 퍽 오랜만에 찍은 방송이다.
방송을 찍는 동안 아이들이 잘 견디어 준다. 그래도 아이들은 방송 촬영기 때문에 제대로 못 뛰어놀다가 저녁나절부터 개구지게 뛰며 밤 열 시가 넘도록 잠들려 하지 않는다. 그래, 너희들이 가장 애썼지. 아버지는 그야말로 너희 곁에서 거들었을 뿐이야.
방송국 일꾼은 고작 15분짜리 방송을 찍는다며 몇 시간을 보냈을까. 촬영기를 넉 대 놓고서 쓴 테이프(또는 디브이디)는 몇 개일까. 나는 한 번 찍히고 그만이지만, 늘 이렇게 찍으러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며 읊고, 얼마나 많은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며 들을까.
집으로 돌아와 씻으면서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저녁빨래를 한다. 저녁밥 지을 기운이 없어 면소재지에서 사온 빵을 먹이며 끼니를 채워 준다. 방송국 일꾼은 이렇게 방송 하나 찍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며 어떤 밥을 먹을까. 기운이 남아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을까. 가게에서 사다 먹을까. 술과 술안주로 저녁을 때우려나.
나는 뒤꿈치와 어깨와 무릎이 쑤시다.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갑다. 코가 막히고 손목이 뻣뻣하다. 아이들한테 자장노래 한 가락조차 못 부른다. 코가 막히니 숨조차 못 쉬는 나머지, 졸립고 힘들지만 드러눕지 못한다. 다섯 살 적부터 내 몸에 들러붙었다는 코앓이가 서른다섯 해재 내 몸을 힘들게 한다. 등허리를 펴고 앉아 숨을 고른다. 숨을 느긋하게 쉴 수 있을 무렵 비로소 자리에 눕겠지. 오늘 쓰려 했으나 못 쓴 글은 이튿날 새벽에 쓸 수 있을까. 시큰거리는 무릎이 뜨겁다. 많이 아프다는 뜻이다. 내가 걸어온 지난날을 글로 쓰자면 한두 시간이면 넉넉했을 텐데, 입으로 말하자니 참 오래 걸린다. 나중에 나오는 방송은 이래저래 편집이 되기도 하겠지. 그래도 뭐, 서로서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음을 덥힐 수 있었기를 빈다. 서로서로 다 다른 삶자리에서 하루를 빛내며 고이 잠들기를 빈다. 4346.10.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