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겨레 전통 도감 5
조현 지음, 홍영우 그림 / 보리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2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
― 탈춤
 토박이 기획
 홍영우 그림
 조현 글
 보리 펴냄, 2010.4.8. 35000원

 


  우리 겨레한테 탈춤은 오랜 놀이요 잔치였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우리 겨레는 누구나 탈춤을 즐겼습니다. 재주꾼만 탈춤을 할 수 있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만 탈춤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만 탈춤을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손쉽게 탈을 만듭니다. 스스럼없이 춤을 춥니다. 탈을 만들어서 써도 춤을 추고, 탈이 없어도 춤을 춥니다.


  내 어릴 적 탈을 문득 떠올립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탈을 안 만들었고, 국민학생 적에만 학교 미술 수업에서 탈을 만들었습니다. 탈을 만든다며 집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를 하나씩 가져와서 구멍을 뚫었어요. 제가 도시내기 아닌 시골내기였으면 플라스틱 바가지 아닌, 하얗게 꽃을 피우며 큼지막하게 열매 맺는 박을 토막내어 만든 ‘싯누런 바가지’를 썼겠지요. 물을 푸고 쌀을 풀 적에 쓰는 바가지를 학교에서 탈 만든다며 가져가려 하면 어머니는 적잖이 못마땅해 하셨을 테지요. 원, 무슨 학교에서 바가지를 가져오라 하느냐면서. 그러나 그 바가지로 탈을 만든다고 하면 싫어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해요. 그렇구나, 바가지로 탈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하시면서.


  그러고 보면,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국민학생 적에 ‘플라스틱 바가지’로 탈을 만들면서, 바가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만 있는 줄 알았어요. ‘뿔바가지(플라스틱 바가지)’란 참말 박꽃 피는 그 풀씨가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박덩어리를 자르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 모양을 빗대어 공장에서 척척 찍은 것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제대로 모른 채 살았어요.


  예전에는 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예전에도 바가지로 탈을 만들었을까요. 바가지를 얻기까지 봄 여름 지나고 가을을 기다리면서 둥그렇고 소담스러운 박덩이 언제 맺히나 하고 한참 손꼽았을까요.


  맨 처음 탈을 생각해 내어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우리 겨레는 언제부터 탈을 만들었을까요. 탈은 우리 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에도 있어요. 우리 겨레와 이웃 겨레는 저마다 언제부터 탈을 생각해 내어 만들어 춤을 추면서 삶을 누렸을까요. 왜 굳이 탈을 쓰면서 잔치마당을 열고 노래와 춤을 즐겼을까요.


  어릴 적 학교에서 미술 수업으로 탈을 만들 적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시험문제에도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미술 교사도 이런 이야기는 모르리라 느껴요. 그저 점수를 매기려고 탈 만드는 실기수업을 했으리라 느껴요.


  탈을 만들었으면 탈춤을 출 노릇이요, 탈춤을 추려면 정규수업을 뒤로 젖혀야 합니다. 탈춤을 추면서 학생과 교사 사이 울타리를 걷을 노릇입니다. 몽둥이와 주먹다짐으로 윽박지르는 교사 앞에서 학생 누구나 스스럼없이 제발 학교에서 우리(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나무라는 말 섞으며 춤놀이 즐길 노릇입니다. 고운 이야기 길어올리며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춤사위 흐드러질 노릇입니다. 실기수업 점수 때문에 만드는 탈이 아니라, 어깨를 들썩이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춤 한 판 맛깔나게 누리고 싶어 만드는 탈입니다.


.. 우리 탈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익살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건 우리 탈이 오랜 세월 동안 서민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6쪽)

 

 

 


  홍영우 님 그림과 조현 님 글이 어우러진 도감 《탈춤》(보리,2010)을 읽습니다. 탈과 얽힌 여러 이야기를 엿볼 수 있고, 탈을 쓰고 즐기는 춤과 얽힌 숱한 이야기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는데 참 많이 늦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제대로 놀지 못하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이 책이 나왔으니 아주 늦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도 못할 뿐 아니라, 놀이노래조차 스스로 만들어 부르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수많은 골목놀이와 고샅놀이와 마당놀이를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이마에 구슬땀 흘리면서 몇 시간이고 집 바깥에서 뛰놀며 누리는 삶을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탈춤》과 같이 예쁜 책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즐겁게 놀고 싶어서 읽는 책이 아니에요. 즐겁게 탈을 만들어 개구지게 탈춤놀이와 탈춤마당 벌이자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박제가 되고 만 책입니다. 박제로 만들고 만 우리 겨레 놀이를 박물관 유물처럼 그러모은 책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고 보면, 지난날에는 굳이 이런 책 없어도 되었어요. 지난날에는 미술 교사가 이끌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탈을 만들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학교 수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탈을 만들어 놀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이런 도감이나 그림책이나 책이 없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옛날부터 물려받은 이야기에 따라 스스로 탈춤놀이 즐길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박제가 되고 만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지식으로 읽을밖에 없는 이야기’인 책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이런 책이라도 있어야 우리 겨레 옛놀이와 옛삶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책조차 없다면, 아이들은 우리 겨레 삶과 발자취와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고야 맙니다.


  삶이 제도권에 짓눌리면서 박물관이 생깁니다. 박물관에 들어가는 유물이란 모두 ‘여느 사람들이 살림 일구며 쓰던 것’들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살림살이가 박물관 유물이 됩니다. 박물관 유물 가운데에는 권력자들이 시골사람 등을 울궈내며 가로챈 금은붙이로 만든 씌우개나 노리개가 있고, 권력자들이 시골사람 등허리 졸라내며 빼앗은 도자기에 옷가지가 있습니다. 임금님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양반이나 권력자는 스스로 옷을 지을 줄 모르고 그릇을 구울 줄 모르며 밥을 할 줄 모릅니다. 모든 옷과 밥과 집이란, 또 임금님 머리에 씌우는 것이든 허리에 두르는 것이든 무엇이든, 게다가 한문만 가득 채운 책이든, 하나같이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피땀 흘려 만든 것이에요. 시골사람이 나무를 베어 삶고 끓이고 말리고 하면서 종이를 한 장 두 장 만들어 책이 태어나요. 시골사람이 풀줄기에서 실감을 뽑아 말리고 삶고 되풀이하며 실을 얻고는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밟으며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짓습니다. 바늘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꽃신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갓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바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흙에서 얻은 것들로 시골에서 만들어요.


  ‘임금님이 쓰던 것’이라서 대단한 유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임금님이 쓰던 모든 물건은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시골 숲과 들과 메에서 얻은 것을 시골에서 만들어 바친 것’입니다.


  도감 《탈춤》을 읽으며, 탈과 얽혀 우리 겨레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가 어떻게 흘렀는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도감 《탈춤》을 덮으며, 우리 겨레 구수하고 투박한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가 얼마나 짓밟히거나 짓눌리면서 모조리 아스라이 사라지고야 마는가를 헤아립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