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 이한우 편 재미마주 어린이 미술관 1
원동은 글, 이한우 그림 / 재미마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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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2

 


내가 사는 마을
― 나의 살던 고향은
 이한우 그림
 원동은 글
 재미마주 펴냄, 2011.11.5. 13000원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참새가 놀러옵니다. 대청마루에서 놀던 아이들이 “와, 저기 봐. 참새야.” 하고 말할 적에 설마 참새가 제비집으로 깃들며 놀까 싶었는데, 참말 참새였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제도, 참새 몇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을 들락거립니다.


  마을 참새들은 우리 집에서 여러 가지 먹이를 얻습니다. 먼저 나무열매를 얻습니다.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에 아직 열매가 남았는지 살핍니다. 몽글몽글 돋는 보드라운 잎사귀를 쪼아먹을는지도 몰라요. 다음으로 초피나무에 앉아 초피열매를 먹습니다. 이렇게 나무열매를 찾으면서 나무에 깃든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새들은 우리 집 풀벌레도 잡아서 먹으리라 생각해요. 마을에서 우리 집만 농약을 안 치니 우리 집 둘레는 풀밭을 이루고, 풀밭에서는 내도록 노래잔치 이루어집니다.


  부엌에서 밥을 지으며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드문드문 개구리 노랫소리 섞입니다. 참개구리는 참개구리대로 노래를 하고, 풀개구리는 풀개구리대로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글씨쓰기를 하거나 그림그리기를 하는 동안에도 노래를 듣습니다. 풀벌레와 새들도 노래를 하지만, 바람도 노래를 합니다. 바람은 풀잎과 나뭇잎을 살랑이며 노래를 부르는데, 조용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구름 흐르는 결에 따라 햇볕이 내리쬐는 결을 같이 느낍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다른 빛과 볕이 드리웁니다. 새벽과 저녁과 밤마다 다른 별빛이 감돕니다. 별똥이 떨어질 적에는 휙 하고 하얀 빛꼬리 나타나는데, 저 먼 데에서 울리는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곤 합니다.


  아침에 이슬이 맺히고, 저녁에 촉촉한 바람이 붑니다. 가을입니다. 아침노을이 여름과 달리 새삼스럽고, 저녁노을이 겨울을 앞두며 싱그럽습니다.


.. 나의 살던 고향은 집 앞에 작은 섬 하나 똑딱선 두 척 텃밭을 지나 집이 세 채, 그리고 사철 환한 햇볕이 드는 먼 남쪽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

 

 


  마을 빨래터에는 여름까지 푸른 물이끼 꼈습니다. 여름이 지나며 빨래터에 물이끼 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이나 물 긷는 사람이 없기에 흙과 먼지가 뽀얗게 쌓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보름이나 한 달에 한 차례쯤 빨래터를 치웁니다. 아이들은 물놀이 한다며 좋아하고, 나는 시원한 물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구니 재미있습니다.


  어느새 마을 빨래터 배롱나무는 꽃이 거의 다 집니다. 도시에서는 ‘백일홍’이나 ‘목 백일홍’이라 말하지만, 시골에서는 ‘배롱나무’라 하고, 때로는 ‘간지럼나무’라 합니다. 시골사람은 ‘배롱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 식물학을 하던 학자가 붙인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시골에서는 안 씁니다. 시골사람은 ‘코딱지나물’이라고 가리킵니다. 서울 표준말로 민들레·씀바귀·고들빼기·부추·쇠뜨기·미나리라 일컫지만, 시골마다 이들 풀을 가리키는 이름은 모두 달라요. 고장마다 말이 다르고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삶터가 다르고 삶이 다르니 말이 다릅니다.


  시골마을마다 말이 다를 뿐 아니라 물맛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들이 다르고 숲이 다르며 골짝이 달라요. 마을마다 나무가 다르고 풀이 다르며, 숲과 들에 깃드는 새와 벌레가 달라요. 이러한 결에 따라 바람맛도 다릅니다.


  이 마을은 이 마을대로 예쁩니다. 저 마을은 저 마을대로 곱습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 마을대로 사랑스럽고 이웃 여러 마을은 이웃한 마을대로 살갑습니다.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들어요. 우리 집에서는 우리 이야기가 소근소근 자랍니다. 이웃에서는 이웃 이야기가 조롱조롱 자랍니다. 서로서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거운 날에는 잔치를 엽니다. 함께 노래하고 같이 춤을 추어요. 맛난 밥을 함께 차려서 즐기고, 밭고랑에 나란히 쪼그려앉아 지난날 겪고 들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눕니다.


.. 어릴 적 때묻지 않은 우리들의 고향은 언제나 꿈과 마음 속에만 살아 있을 뿐,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는 고향은 두루미가 날고 꽃사슴이 뛰놀고, 머언 옛날에나 있었다는 ..

 

 


  이한우 님 그림에 원동은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의 살던 고향은》(재미마주,2011)을 봅니다. 유화를 그리는 이한우 님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신다고 해요. 그래, 이 그림책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구태여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원수 님 동요 〈고향의 봄〉 첫마디를 애써 따서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원수 님은 이녁 동요 〈고향의 봄〉 첫머리를 “나의 살던 고향은”이 아닌 “내가 살던 고향은”으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녁이 이렇게 고쳐써야 하는 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서, 사람들이 온통 ‘나의’로 익숙하니 참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이한우 님 그림은 아이들이 보도록 그린 그림은 아닙니다. 재미마주 출판사에서 원동은 님 글과 함께 엮으며 그림책을 빚기에,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새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일이에요. 어른들한테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말마디가 익숙할 테지만, 아이들은 아직 몰라요. 아이들은 이제 막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즐기려 합니다. 이 아이들 앞에 선물처럼 내놓으며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때에 곱게 빛날까요.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어떤 ‘말’과 ‘그림’을 물려받으면서 날마다 신나게 놀고 새롭게 놀며 씩씩하게 놀 적에 튼튼하게 자랄까요.


  한참 《나의 살던 고향은》을 들여다보다가, 그림에 나오는 논밭이 너무 ‘경지정리 잘 된 모습’이라서 살짝 아쉽습니다. 풀로 지붕을 잇던 지난날에는 논과 밭이 이렇게 반듯반듯하지 않았을 텐데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뚜렷한 우리 나라를 헤아린다면, 우리 시골마을 들빛과 숲빛과 마을빛이 알록달록 노르스름 불그스름한 빛깔뿐 아니라 짙푸른 빛깔, 새하얀 빛깔, 누르스름한 사이사이 푸르게 새잎 돋는 빛깔 골고루 있으면 더 나을 텐데요. 이 그림책에는 봄도 여름도 겨울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을만 있구나 싶어요.


  그러나, 가을만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마을을 노래할 수 있지요. 가을빛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냇물과 골짝과 바다와 들판을 춤출 수 있어요. 이야기가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진 채 구경하는 그림이 아닌, 아이들이 바로 오늘 기쁘게 뛰노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아무래도 그림책 《나의 살던 고향은》은 시골마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이든 어른들이 그리는 예전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 시골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밝게 노래하는 예쁜 삶터를 새롭게 그리면 됩니다. 오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오늘 도시에서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둥실둥실 춤추고 맑게 노래하는 고운 동네를 싱그럽게 그리면 됩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마을이 바로 고향입니다. 태어난 곳만 고향이 아니라, 사랑과 꿈을 심으며 살아가는 곳이 어디나 고향이 됩니다. 아이들이 눈망울을 빛내고 가벼운 몸짓으로 날갯짓을 하듯 춤추며 노는 곳이라면 어디나 고향입니다.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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