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jeonlado.com

 

전라도닷컴

 


  전라도에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가 있다. 책이름에 ‘닷컴’을 붙여 영 못마땅하지만, 이 잡지가 나올 무렵에는 이런 이름 붙이기가 바람처럼 불었다. 아마 요즈음 이러한 잡지가 나온다면 이런 이름을 붙이지는 않으리라.


  이름은 쓰면 쓸수록 자리잡고 굳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낯설게 여기더라도, 쓰면 쓸수록 어느새 스며들고 녹아든다. 새로 짓는 낱말도 사람들 입과 손을 거치면서 차츰 자리를 잡는다. 어느 낱말은 끝끝내 자리를 못 잡기도 하지만,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오랜 나날 수많은 사람들 입과 손을 거쳐 다듬고 깎고 고치고 손질한 낱말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잡지 《전라도닷컴》 2013년 9월치에 우리 집 ‘책순이’ 이야기가 실렸다. 9월이 저물고 10월로 접어들 무렵, 잡지 《전라도닷컴》 누리집(http://jeonlado.com)에 ‘책순이’ 이야기가 돋보이도록 다시 실린다. 우리 집 ‘책순이’ 삶을 늘 사진으로 찍어서 갈무리하는데, 우리 집 아이들 모습 가운데 “책 읽는 모습”을 맨 먼저 바깥으로 선보여서 ‘책순이’가 되었다. 앞으로 책순이뿐 아니라, 꽃순이·놀이순이·밥순이·시골순이·자전거순이·밭순이 같은 이야기도 하나둘 선보일 수 있겠지.


  그런데, 《전라도닷컴》을 보았다는 곳에서 곧잘 연락이 온다. 우리 집 책순이 이야기를 방송으로 찍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이렇게 손사래치고 저렇게 손사래치다가 곰곰이 생각한다. 전라도에서 나오는 신문과 잡지 가운데 이렇게 방송국 사람들 끌어모으는 매체가 있을까 하고. 서울에 있는 책방에서 《전라도닷컴》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은데, 참 용하게 이 잡지를 지켜보거나 살펴보는 사람이 있구나 싶기도 하다.


  경상도에서는 어떤 잡지가 있을까? 강원도나 충청도나 경기도에는 어떤 잡지가 있을까? 제주도에는 어떤 잡지가 있을까? 저마다 이녁 고장을 빛내거나 밝히는 잡지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 식구 전라도로 삶터를 옮기면서 《전라도닷컴》을 정기구독 했다. 전라도에서 나오는 신문 가운데 정기구독을 하는 신문은 없다. 전라도 고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처음에는, 가끔 면사무소에 들러 ‘전라도 일간신문’과 ‘농민신문’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여러 달 지나고 보니, 전라도 신문 가운데 읽을 만한 신문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두어 달은 한 주에 한 차례쯤 면사무소로 신문 읽으러 가다가, 차츰 뜸해졌고, 이제는 면사무소 마실을 안 한다. 면사무소 발길을 끊은 지 한 해가 넘는다(고흥으로 와서 산 지 두 해째이다).


  서울과 인천에서 살 적에도 중앙일간지나 지역일간지가 나라 이야기나 지역 이야기를 골고루 싣지도 못하고 살뜰히 담지도 못한다고 느꼈다. 전라도로 와서 사는 동안에도 지역신문이 막상 지역 이야기를 찬찬히 살피지 못한다고 느낀다. 신문들은 하나같이 돈을 벌려고 지역 정치꾼과 장사꾼한테 기댄다. 지역사람을 만나거나, 지역 이야기를 넓고 깊게 다루려는 움직임을 못 보여준다. 잡지 《전라도닷컴》은 이 몫을 톡톡히 한다. 모르는 노릇인데, 경상도나 경기도나 충청도나 제주도에서 이만큼 하는 매체는 없지 싶다. 서울이나 부산에서도 《전라도닷컴》만큼 깊고 넓게 두루 사람들을 만나 오순도순 도란도란 조그마한 이야기를 곱게 여미는 매체는 아직 없다고 느낀다.


  어제 낮, 방송국에서 또 전화가 온다. 〈인간극장〉을 찍는 곳이라고 한다. 〈인간극장〉을 찍는다는 곳에서 온 연락은 열흘쯤 앞서도 손사래를 쳤고, 두 해 앞서도 손사래를 쳤으며, 네 해 앞서도 손사래를 쳤다. 돌이켜보니 두 해에 한 번씩 연락이 오는 셈이네. 어제 낮에 전화를 건 분은 열흘쯤 앞서 전화를 건 분과 다르다. 알고 보니, 〈인간극장〉을 찍는 다큐팀이 두 곳이란다.


  서재도서관에서 ‘곰팡이 핀 책꽂이’에 한창 니스를 바를 때에 전화가 와서, 한손으로는 전화를 받고 한손으로는 니스를 발랐다. 47분 동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동안 아이들은 개구지게 뛰어놀며 전화 소리가 안 들리도록 노래한다. 전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운 뒤 나도 곯아떨어졌는데, 새벽에 부시시 일어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는 시골사람 삶과 꿈과 넋을 잘 살펴서 담으려고 애쓰는 매체이면서, 시골에서 시골빛 사랑하는 사람이 제대로 알려져서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징검다리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동이 튼다. 곧 아이들 깨어나 놀 때가 다가오는구나. 4346.10.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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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5 11:36   좋아요 0 | URL
<전라도닷컴> 누리집에 들어가 '책순이, 책읽는 시골아이'를 보니 한층 더
반갑고 즐겁고 예쁘네요~^^
책아이들이 재밌고 즐겁게 책보고 노는 모습들이 아주 예뻐요~
늘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보던 모습인데도 왠지 더 새로운 듯 싶습니다.^^
<전라도닷컴>을 보니 오순도순 도란도란 좋군요.
즐찾을 해놓고 종종 즐거운 이야기 들으러 가야겠습니다~

숲노래 2013-10-05 17:06   좋아요 0 | URL
전라도닷컴에 저희 식구 이야기가 연재로 나오지는 않고
한 번만 나와요 ^^;;;

아무튼, 잡지 구독 안 하시는 분들도
잡지에 실리는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퍽 많이
인터넷방, 그 누리집에서 보실 수 있어요.

더 재미난 이야기는 잡지에만 실리지만,
맛보기로 누리집에 올려 주는 이야기도
참 좋다고 느껴요.

저는, 이런 이야기가
전라도에서뿐 아니라,
서울과 부산과 전국 어디에서나
잡지와 매체에서나 방송에서나
오순도순 아름답게 나올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