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나무 짙붉은 열매
올 한 해 범나비 곱게 돌보아 준 초피나무에 짙붉은 열매 무르익는다. 범나비는 시월이 넘어서는 오늘까지 씩씩하게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먹는다. 날씨가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범나비도 모시나비도 멋쟁이나비도 제비나비도 모두 늦도록 날갯짓 누릴 테지. 날씨가 따스한 만큼 가을꽃도 늦게까지 흐드러지니까. 열매껍질만 쓴다는 초피나무인데, 우리 집에서는 쓸 때에는 쓰지만 나무에 달린 채 내도록 그냥 두곤 한다. 우리가 안 먹으면 멧새 찾아들어 초피알 맛나게 따먹기 때문이다. 겉껍질 톡 하고 터지는 요즈막, 까만 알 싱그러이 드러난다.
새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새들이 얼마나 반가이 여길까? 새들이 얼마나 맛나게 먹을까? 마을 이웃집에서는 모두 ‘열매 따서 껍질 빻아 먹으라’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우리 마을 뒷멧자락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이 열매 겨우내 맛나게 먹으며 기운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4346.10.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