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9.25.
 : 구월이 무르익는 자전거

 


- 어제 읍내까지 자전거마실을 다녀오면서 뒷거울 새로 달았다. 뒷거울을 잘 건사하면 여러 해 쓸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자전거 체인이나 바퀴가 차츰 닳으면서 낡아 나중에 갈아야 하듯, 뒷거울도 언제까지나 쓰지는 못하리라 느낀다. 집에서 쓰는 유리거울은 닦고 닦으면 오래오래 쓰지만, 자전거 뒷거울은 유리거울 아닌 플라스틱거울이다. 때를 쉽게 타고, 햇볕 내리쬐는 길을 오래 달리면 차츰 낡고 닳아 뒷모습이 잘 안 보이곤 한다. 새 뒷거울 달고 달리니 그야말로 뒷모습 잘 보인다.

 

- 대문 위로 올라타는 호박넝쿨을 바라본다. 대문을 드나들 적마다 호박덩이를 만진다. 언제쯤 따서 먹을까 생각하며 기다린다. 조금 더 크겠구나 싶어 아직 안 딴다.

 

- 작은아이는 자전거마실 나오기 앞서 잠든다. 작은아이는 잠자리에 고이 눕히고 큰아이하고 둘이서 나온다. 큰아이를 안 태우거나 작은아이를 안 태우고 자전거를 몰면, 자전거가 몹시 가볍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참 많이 컸지. 그래서, 이 아이들 안 태울 적에 발판 구르는 다리에 힘이 죽죽 들어간다.

 

-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손잡이를 안 잡는다. 뒷거울이 깨져 여러 달 뒷모습 못 보고 다닐 적에는 어렴풋하게 느꼈는데, 이제 뒷거울로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를 살피며 달리니, 이 아이가 뒤에서 무얼 하며 노는지 잘 알겠다. 그래, 너는 그렇게 노는구나. 두 손 다 놓고 척 하고 서서 바람을 쐬고 하늘바라기와 들바라기 하는 놀이를 즐기는구나. 멋지다.

 

- 우체국 마감 시간에 맞추어 택배를 부친다. 면내 가게에 들러 아이들 얼음과자를 산다. 집으로 돌아간다. 큰아이가 춥단다. 수레에 앉겠단다. 큰아이는 가을바람이 썰렁하니 샛자전거에 앉기 힘들기도 할 테지만, 오랜만에 수레에 앉고 싶어 하는 마음이로구나 싶다. 동생과 함께 안 나왔으니 수레에 앉을 수 있다. 이제 큰아이는 몸피가 크고 몸무게가 붙어 두 아이를 수레에 못 앉힌다. 수레가 주저앉아 바닥을 끈으로 단단히 동여맸지만, 두 아이를 태우고 달리면 수레 뼈대가 못 버틴다.

 

- 가을저녁 선선히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누르스름한 빛이 한껏 무르익는다. 조금 더 익어야지. 조금 더 누렇게, 노랗게 익어야지. 이웃마을 할배 한 분 자전거를 몰고 들일 나오셨다. 우리 마을에는 자전거 몰고 들일 나가는 할배나 할매는 없다. 이웃마을에 꼭 한 분 계시다. 시골 할배와 할매는 도시사람과 똑같이 오토바이나 짐차를 몬다. 네바퀴 오토바이를 모는 할배나 할매도 많다.

 

- 집에 닿는다. 대문을 열고 자전거를 들인다. 큰아이가 제 자전거를 타고 조금 논다. 바지런히 놀고 씩씩하게 자라서, 앞으로는 너도 샛자전거에서 발판 굴러 주렴.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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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27 10:22   좋아요 0 | URL
뒷거울에 비친 벼리 모습, 찍으신 사진도 신기하고 새롭네요~^^
자전거들이 있는 마당 모습, 파란 대문을 타고 오르는 호박넝굴, 딋거울에 비친 벼리 모습
점점 노랗게 물들어가는 논이 있는 시골길 모습~
오늘도 이렇게 좋은 사진들 올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숲노래 2013-09-28 06:30   좋아요 0 | URL
자전거를 달리며 뒷거울을 찍어요.
좀 힘든 사진찍기이지만 재미있어서
곧잘 이런 사진을 찍는답니다~

요새 자전거마실 자주 했는데
자전거쪽글은 좀처럼 갈무리할 겨를이 없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