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짓는 책터 (도서관일기 2013.9.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시에서 도서관을 꾸릴 적에는 곰팡이 걱정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는 풀도 나무도 숲도 없이 오직 건물과 아스팔트 찻길이 빼곡하니, 도서관 책꽂이에 곰팡이 피어날 걱정을 할 일이 없었구나 싶다.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고부터 비가 몰아치고 난 뒤 더위가 훅 찾아오면 곰팡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걱정을 한다. 둘레에 풀과 나무와 숲이 있어, ‘나무로 지은 것’은 곰팡이가 핀다. 이를테면, 살림집에서도 나무주걱이나 나무젓가락이나 나무로 된 살림살이에 곰팡이가 핀다. 안 입고 오래도록 두는 옷에도 곰팡이가 핀다.
옛날 옛적 사람들도 나무에 곰팡이 피는 모습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예전에는 옻을 발라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다스렸으리라 생각한다. 요즈음에는 옻을 바르는 곳은 드물다. 흔히 니스를 쓴다. 내 어릴 적에도 우리 집 마룻바닥에 니스를 바르던 일이 떠오른다. 밥상과 책상과 책꽂이에도 니스를 발랐다. 밥상과 책상과 책꽂이를 바깥으로 낑낑거리며 나른 뒤, 밖에서 니스를 바른다. 며칠쯤 바깥에 두어 냄새가 빠지도록 하고서 집으로 들인다. 이렇게 해도 냄새는 오래 남지만, 한 해에 한 차례씩 니스를 바르면 마룻바닥이나 책상이나 밥상에 곰팡이나 때가 잘 안 탔다.
원목 아닌 합판으로 된 책꽂이에 자꾸 곰팡이가 핀다. 니스를 바르면 손쉬운 일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여러 해째 망설인다. 니스를 바르면 화학약품 냄새가 책에도 고스란히 밸 테니까. 곰팡이가 피면 책꽂이에서 책을 모두 들어낸 다음, 책꽂이를 바지런히 닦아서 햇볕에 말린다. 이러기를 되풀이하니 힘에 겹다. 원목 책꽂이를 장만해서 새로 자리를 잡는다. 이것도 퍽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니스 바르기보다 훨씬 낫다고 느껴 차근차근 책꽂이갈이를 한다.
셋째 칸 교실 한복판에 세운 책꽂이 옆으로 빈 책꽂이를 앞뒤로 댄다. 책꽂이끼리 못을 박아 이으니, 새로 붙이는 책꽂이 받침나무가 붕 뜬다. 이러면 책을 놓을 수 없으니, 받침나무를 받칠 나무조각을 마련해서 하나씩 댄다. 못질과 톱질로 한나절 흐른다. 책꽂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버팀나무를 곳곳에 댄다. 새로 붙은 책꽂이 맨 아래에는 무거운 책을 놓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책을 옮겨 꽂는다. 합판 책꽂이에 피어난 곰팡이가 책에도 더러 옮았다. 책에 옮은 곰팡이는 잘 닦아 주면 사라질까. 나중에 다시 피어날까.
한창 땀을 빼며 일하는데 퍼석 소리가 난다. 무언가 밟았다. 뭔가 하고 발밑을 보니 벌집이다. 말벌이 살던 벌집인데 말벌은 없고 말벌이 깨어나며 남긴 허물만 남은 벌집이다. 이 녀석이 왜 여기에 있다가 밟히지? 말벌은 언제 도서관에 들어와서 집을 지었을까. 도서관에 있던 말벌은 창문을 열어 바람갈이 시킬 적에 들어온 말벌이 아니라, 이곳에 집을 지어 새로 깨어난 말벌이었나?
앞으로 이레나 보름쯤 책꽂이갈이를 하면 도서관 모양새가 또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튼튼한 원목 책꽂이를 한꺼번에 들여왔으면 일손이 덜 들었을는지 모르지만, 혼자서 책꽂이 나르며 자리를 잡고 잘라 붙이기를 해야 하는 만큼 틈틈이 원목 책꽂이를 장만해서 나무일을 할밖에 없다. 멀리 보고 차근차근 하자. 책 한 권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듯, 책터 또한 오랜 나날에 걸쳐 차근차근 이루어지도록 가다듬자.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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