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여수 문화방송에서 전화 한 통 온다. 인천 떠나 충청도 멧골집에서 지낼 적에 방송국에서 취재 연락 한 번 왔을 때에 손사래친 뒤 여러 해만에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여수쯤 되니 고흥으로 찾아와서 방송을 찍겠다고 할 만하겠다고 느낀다. 전라남도 쪽에 나가는 방송이라 하는데, 찍을까 말까 아직 망설인다. 찍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껏 겪은 대로 신문이든 잡지이든 방송이든, 방송작가와 피디가 내 책을 알뜰히 읽고 내 누리집 글 살뜰히 살피면서 내가 식구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서재도서관 꾸리는 빛을 헤아리려 하지 않으면, 늘 엉뚱한 소리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잘못 퍼뜨린 이야기 바로잡기란 얼마나 힘든데.
전화를 건 방송작가가 문득 ‘귀농’ 이야기를 묻는다. 우리더러 농사를 짓느냐고 묻는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귀농’이나 ‘농사’는 우리 식구하고 동떨어지니까. 논농사를 지어야 귀농일까? 논이 없으면 농사가 아닐까? 기계와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버무린 요즈음 관행농뿐 아니라, 비닐집 짓는 요즈음 유기농을 돌아볼 때에, 귀농도 농사도 무어라 말해야 할까?
내가 사람들한테 하는 말은 “우리 식구는 풀 뜯어 먹습니다.”이다. “풀 뜯어서 먹고요, 후박나무 마당에서 풀바람과 나무바람 마시고요, 비가 오면 빗물 먹어요.” 하고 덧붙인다. “우리 집 풀밭에서 싱그러이 살아가는 나비하고 풀벌레를 누리고, 하루 내내 풀벌레와 개구리 노래잔치를 즐겨요.” 하고 덧붙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네 식구는 ‘귀농’을 하지 않았다. ‘귀촌’도 아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살이’를 하려고 이곳에 와서 살림을 꾸린다. 시골사람 되려고 시골에 왔고, 시골살이 사랑하려고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가꾼다.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