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아이들과 시골살이 바쁘면서도 한갓지게 누리던 아침나절, 손전화 기계가 부릉부릉 울린다. 한창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하면서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가던 때인데, 쪽글이라도 왔다는 알림인가 하고 손전화 기계를 켜니, 낯선 글물결 좌르륵 흐른다. 이게 뭔가 하고 한참 들여다본다. 장만한 지 석 달쯤 된 전화기가 망가졌는가 하고 깜짝 놀란다. 집일을 살짝 잊고 멍하니 쳐다본다. 뭔데 이렇게 갑자기 떠서 줄줄줄 엄청나게 많은 쪽글이 흐르는가. 마음을 추스르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낯익은 이름들이 쪽글을 주고받는 모습이 ‘현장중계’ 된다. 벌써 스무 해째 술동무로 지내는 고향사람들 이름이다.


  대여섯인지 예닐곱인지 저마다 한 줄이나 두 줄짜리로 쪽글을 날리며 서로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보다. 손전화 기계에 뭔가 벌레가 기어들었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니고 ‘카카오톡 채팅방’이라는 잔글씨 하나 보인다. 그나저나 이런 게 갑자기 왜 뜨지? 손전화 기계 바꾼 뒤 고향 술동무 전화번호를 아직 하나도 못 옮겼는데, 어떻게 이 아이들 이름이 주르르 뜨면서 보일 수 있지?


  그야말로 초 단위로 쪽글이 뜨면서 이야기꽃이 물결을 친다. 오랜 술동무들이 서로서로 주고받은 ‘카카오톡 채팅방’은 이 술동무 가운데 한 아이가 나를 ‘초대’했기 때문에 떴다고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나는 어떻게 쪽글 보내는 줄도 모르니 멀거니 구경만 하다가, 이 이야기꽃은 바로 오늘 8월 24일 낮에 서울 코엑스 언저리 어느 예식장에서 후배가 혼인잔치를 하니까 올 사람은 오라는 줄거리이고, 8월 20일부터 이 이야기꽃이 이루어졌다.


  그나저나 8월 20일부터 이루어진 ‘카카오톡 채팅방’은 왜 오늘 아침에서야 내 손전화 기계에 뜰까. 어제나 그제에도 떴지만 내가 못 알아챘을 뿐일까. 누구 혼인잔치인지 알아보려고 한참 이야기꽃 줄거리를 살핀 끝에 ㅎ인 줄 알고는, ㅎ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쪽글을 보낸다. 오늘 장가 가는 줄 오늘에서야 알았기에 이제 고흥에서 시외버스 잡아타고 서울로 가도 아무 얼굴도 못 보고 식은 다 끝날 테니 못 간다고, 선물로 책 몇 권 부치겠다고 남긴다.


  돌이켜보면, 스무 해 알고 지낸 술동무들 가운데 내가 맨 마지막으로 삐삐를 장만했다. 난 퍽 오랫동안 집전화만 썼다. 손전화 기계도 내가 맨 마지막으로 장만했다. 내 손전화 기계는 내 어머니가 내 소식을 도무지 알 수 없다며 내 아버지가 쓰던 기계를 나한테 주면서 비로소 생겼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도 이와 같으리라. 다들 그동안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주고받은 듯하다. 그러니 나는 오랜 술동무들이 어찌 지내는가를 여태 하나도 몰랐고, 언제 어디에서 만나는지, 서로서로 어떤 일이 있는지 도무지 모른 채 지냈구나 싶다. 그러면, 나는 이제부터 ‘카카오톡 채팅방’에 함께 끼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글쎄, 가끔 들여다보며 소식 구경은 할는지 모르나, 시골에서 아이들과 복닥거리면서 손전화 기계 만지작거릴 틈이 있으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4346.8.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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