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사이를 걷다

 


  헌책방 사이를 걷는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헌책방이 있다. 조그마한 헌책방이 있고, 제법 넓다 할 만한 헌책방이 있다. 어느 헌책방에나 책이 있다. 어느 헌책방이든 사람들이 많이 자주 찾는 책을 더 도드라지게 꽂아서 보여준다. 사람들이 드물게 찾거나 뜸하게 찾는 책은 안쪽에 깃든다. 널리 이름난 사람들 책이라든지, 학습지와 자습서가 눈에 한결 잘 뜨이는 자리에 놓이곤 하며, 그닥 이름 안 난 사람들 책이라든지, 인문책과 학술책은 안쪽에 조용히 깃든다. 아무래도 손이 많이 탈 만한 자리에 놓인 책은 쉬 팔릴 만한 책이라 할 수 있고, 안쪽에 깃들어 손이 덜 탈 만한 자리에 놓인 책은 두고두고 팔릴 만한 책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책방 안쪽 책시렁에 놓인 책은 이 책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임자를 만난다. 두고두고 새 임자를 기다리던 책인 만큼, 한 번에 알아채는 누군가 있으면 책시렁이 살며시 빈다.


  헌책방 사이를 걷는다. 이 헌책방에 내가 바랄 만한 책이 있을는지, 저 헌책방에 내가 꿈꾸던 책이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헌책방으로 골목을 이룬 길을 걷는다. 오늘은 이곳에 들어가서 책을 누려 볼까. 모레는 저곳에 들어가서 책을 즐겨 볼까. 조그마한 헌책방에서건 널따란 헌책방에서건 한 시간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책방 크기에 따라 책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책 한 권이 내 눈길을 잡아끌면서 내 눈빛을 밝히기 때문이다.


  책을 만나고 싶기에 헌책방골목을 걷는다. 책을 만나려고 이곳에 들러 한동안 책에 파묻힌다. 책을 사귀려고 저곳에 깃들어 한참 책 사이에 섞인다. 시원한 우물물 같은 책을 이쪽 헌책방에서 만난다. 싱그러운 냇물 같은 책을 저쪽 헌책방에서 마주한다. 4346.8.1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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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16 17:21   좋아요 0 | URL
책방 안쪽 책시렁에 놓인 책은 이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임자를 만난다.-
글만 읽어도 참으로 좋습니다. ^^

숲노래 2013-08-18 08:35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그냥 스쳐서 걷기만 해서 알맹이를 못 받아먹어요.
책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아요. 그저 스쳐 훑기만 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