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먹는 거미

 


  예전 같으면 마을 어디에나 아이들을 풀어놓고는 도랑물에도 들어가도록 할 테고, 논에서 미꾸라지도 잡고 할 테지만, 이제 아이들을 마음놓고 풀어놓을 만한 데는 아주 드물다. 오늘날 논은 온통 농약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당은 마을에서 꼭 한 군데뿐인 ‘농약 없는 자리’이다. 우리 집 마당은 거미에 잠자리에 나비에 풀벌레에 멧새에 모두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쉬거나 놀 터가 된다. 마을고양이도 우리 집 마당과 뒷터를 저희 보금자리처럼 삼곤 한다.


  마당에서 놀다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본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어떡해? 잠자리!” 어떡하기는. 잠자리 건드려 보았니? 날갯짓을 푸드득하면 아직 기운이 있으니 거미줄 끊어 살려도 되는데, 잠자리 건드렸을 적에 날갯짓이 없으면 벌써 거미가 침을 놓아 숨이 끊어진 셈이니, 거미가 살도록 그대로 두어야 한단다.


  밀잠자리 두 마리가 우리 집 마당에서 놀다가 그만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렸다. 잠자리야, 미처 못 보았니? 너희들은 그야말로 드넓은 들과 숲을 한껏 날아다녀야 할 텐데, 어느 마을이고 들과 숲 어디에나 농약을 잔뜩 뿌리니 어디로도 홀가분하게 다니지 못하다가 그만 숨을 잃는구나.


  한 시간쯤 뒤, 큰아이가 다시 잠자리와 거미를 보러 마당으로 나온다. “어! 잠자리 없어졌어!” 작은아이는 큰아이 꽁무니만 좇으며 돌아다닌다. 아직 말이 또렷하지 않은 작은아이는 “업져졋어!” 하고 따라한다. 그래, 거미가 벌써 말끔하게 먹어치웠구나.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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