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amata (Hardcover, Deluxe)
W. Eugene Smith / Henry Holt & Co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7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삶을 사진으로
― Minamata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사진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Aileen Mioko Smith) 글
 Holt, Rinehart & Winston,1972

 


  유진 스미스 님 사진 한 장으로 ‘미나마타병’을 바라보는 언론 흐름과 사회 흐름과 정치 흐름이 아주 뒤바뀌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사진 한 장 때문에 뒤바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유진 스미스 님은 ‘사진 한 장’만 찍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야기 있는 삶을 살피면서 사진으로 사람들 웃음과 눈물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사진책 《Minamata》(Holt, Rinehart & Winston,1972)를 읽습니다.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님 옆지기인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Aileen Mioko Smith) 님이 글을 넣습니다. 그리고, 1975년판부터는 ‘하라다 마사즈미(原田正純)’ 님이 ‘미나마타병과 얽힌 자료’를 붙였다고 합니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합니다. 무척 낯익다 싶은 이름 ‘하라다 마사즈미’를 사진책 《Minamata》 간기에서 보다니?

 


  설마 싶어 알아봅니다. 아하, 그렇군요. 하라다 마사즈미 님 책 가운데 두 가지가 한국말로 나온 적 있어요. 하나는 어린이문학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우리교육,1995)이고, 하나는 학술책 《미나마타병》(한울,2006)입니다. 그렇군요. 조금 더 알아보니, 한국에서 처음으로 밝혀진 환경병이자 공해병인 ‘울산 온산병’을 이 나라에 알린 사람이 바로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라고 해요. 하라다 마사즈미 님은 2012년 6월 11일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제껏 겪거나 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죽음수렁에 빠진 채 두려움에 떨던 일본 어느 시골자락 바닷마을 사람들한테 ‘의사이자 박사인 동무’가 되어 주면서, 일본 환경병이자 공해병을 밝히고 알릴 뿐 아니라, 미나마타사람을 힘껏 도운 하라다 마사즈미 님이에요. 환경문제요 공해병을 지구별에 널리 알리면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나아가야 하는 대목을 생각하던 유진 스미스 님한테 하라다 마사즈미 님은 새삼스럽게 ‘일동무’가 되었겠지요.

 


  사진책 《Minamata》를 보면 껍데기가 시커멓습니다. 첫 쪽을 넘기면 고기잡이를 하는 뱃사람 모습이 나옵니다. 둘째 쪽에는 공해덩어리로 끔찍하게 죽어버린 바닷물 모습이 나옵니다. 이 다음에는 다시 고기잡이를 하는 뱃사람 모습이 나와요. 나무로 지은 배를 타고 그물로 고기를 낚는 여느 바닷마을 사람들 모습을 봅니다. 이 다음에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배가 낚아올린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떼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어요.

 


  무엇을 말하는 사진들일까요? 아니, 무엇을 말하는 사진들이라 생각하나요?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과 물고기가 있는데, 바닷물은 끔찍하게 지저분하다? 무슨 얼거리가 될까요? 이 다음에는 어느 어머니가 이녁 딸아이를 씻기는 사진입니다. 딸아이는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지만 몸집이 퍽 작고 삐쩍 말랐습니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어머니가 살포시 안아서 함께 알몸이 되어 몸을 씻습니다. 이 아이는 왜 이런 몸이 되어 이렇게 몸을 씻어야 할까요? 이 다음에는 구부러져서 안 펴지는 손가락이 뭉텅이처럼 된 손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진은 또 무엇을 말할까요? 왜 이런 손, 왜 이런 몸이 될까요?

 


  파리약을 뿌리면 파리가 죽습니다. 모기약을 뿌리면 모기가 죽습니다. 파리약을 뿌리면 잠자리도 죽고, 모기약을 뿌리면 나비도 죽습니다. 파리, 모기, 잠자리, 나비가 죽으면, 새들은 아무것도 못 먹습니다. 자동차가 끝없이 달리며 배기가스를 내뿜고 기름을 길바닥에 흘리면 흙이 더러워집니다.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던 미군부대는 이 나라 땅바닥에 썩은기름(폐유)을 어마어마하게 몰래 버렸다고 합니다. 아마, 미군부대 있던 땅에서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쉰 해 아닌 백 해는 더 있어야 할는지 몰라요. 죽어버린 땅은 언제나 되어야 다시 돌아올까요. 땅이 죽어버렸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얻으며 먹고살 만할까요. 그리고, 바다와 냇물을 잔뜩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면, 사람들은 무엇을 마시며 목숨을 건사할 만할까요. 나아가, 공장과 발전소와 고속도로와 자가용과 비행기가 끝없이 내달리며 굴러간다면, 우리들이 늘 마셔야 하는 바람을 어떻게 지킬 만할까요.

 


  그러면, 사진책 《Minamata》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 할까요? 사회고발일까요? 공해병에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면서 거짓말을 한다든지 핑계만 대는 일본 정치꾼과 기업인 잘잘못 밝히는 책이라 할까요?

 


  사진책을 찬찬히 넘깁니다. 슬픔 가득한 낯빛으로 어깨띠와 머리띠를 두르고 두 손에 팻말 든 할매 할배 모습이 나옵니다. 입을 굳게 다문 정치꾼인지 기업인 얼굴이 보입니다. 집회와 시위를 하다 지쳐서 곯아떨어진 시골사람들 푼더분한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이 죽고 쓰러지는 판이지만, 마을잔치를 벌이면서 웃고 노래하며 떠드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슬프면서 힘겹게 기나긴 나날 싸우면서 ‘우리가 왜 이렇게 아프고 우리 아이들이 왜 이렇게 온몸 뒤틀리면서 이른 나이에 죽어야 하는지를 밝혀 다오!’ 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한창 싸우다가도 쉬는 틈에는 서로 깔깔 하하 웃을 만한 놀이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혼자서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 덩치 큰 누나를 돕는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젓가락을 아슬아슬하게 쥐는 덩치 큰 누나는 고개를 반듯하게 세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수화기를 붙들고 누군가하고 전화를 하면서 환한 웃음꽃을 피웁니다. 온통 일그러진 얼굴로 찍힌 사진을 고작 열 몇 살쯤 되는 나이에 영정사진으로 쓰면서 이승을 떠난 아이들이 고스란히 사진틀에 갇힌 모습으로 꽃다발에 둘러싸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진일까요?

 


  삶에는 웃음이 있습니다. 삶에 웃음이 있는 만큼, 삶에 눈물이 있습니다. 삶에 노래가 있습니다. 삶에 노래가 있는 만큼 고요함이 있습니다. 삶에 낮이 있으며 밤이 있습니다. 삶에 아침과 저녁이 있습니다. 삶에 더위와 추위가 있고, 삶에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있어요. 삶에 가시내와 머스마가 있어요. 삶에 어른과 아이가 있어요. 그리고, 이 삶에 평화와 전쟁이 있을까요? 아니, 삶에는 평화만 있을 노릇인데, 누군가 억지로 전쟁을 만들어서 삶을 망가뜨리려 하지는 않나요? 이 삶에는 아름다움과 꿈이 있을 뿐이었는데, 어느 누군가 돈을 혼자 차지하면서 배를 떵떵거리고 싶은 나머지 차별과 불평등과 따돌림 따위를 만들지 않았나요?

 


  잘생긴 아이도 못생긴 아이도 없습니다. 어버이한테는 모든 아이가 ‘내 아이’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잘생긴 어버이도 못생긴 어버이도 없습니다. 가난한 어버이나 돈있는 어버이도 없어요. 아이들한테는 모든 어버이가 똑같이 ‘내 어버이’요 ‘사랑스러운 어버이’예요.

 


  보도를 한대서 보도사진일 테고, 다큐멘터리를 그린대서 다큐사진일 텐데, 유진 스미스 님 사진책 《Minamata》에는 어떤 이름을 붙이면 어울릴까요. 보도사진? 다큐사진? 고발사진?

 


  한참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뱃전에서 모래밭으로 껑충 뛰어내리는 바닷사람 모습 찍은 조그마한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혼자서 낑낑거리며 밥통에서 밥 한 그릇 푸는 아이 사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죽음을 앞둔 듯한 사람이 드러누운 자리 옆으로 기자들 빼곡하게 몰려든 사진을 쳐다보다가, 어머니 품에 안겨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아이 사진을 쳐다봅니다. 아마, 이렇게 활짝 웃던 아이가 바로 옆에서 어머니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채워야 하는 아이일 테지요. 미나마타 어머니들은 이녁 딸아들이 열 살이 넘고 스무 살이 되어도 기저귀를 채워서 똥오줌을 받아야 하고, 기저귀를 빨래해야 합니다. 고단할 테지요. 슬프기도 할 테지요. 그런데, 고단하기만 할까요. 슬프기만 할까요.

 


  한쪽에서는 공해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을 뿐 아니라 죽어나가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이 여름철 물놀이를 한껏 즐깁니다. 어느 아이는 아파서 괴롭다 외치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이답게 맑게 웃으며 서로 얼크러져 놉니다.

 


  삶은 무엇이고, 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손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삶은 어떻게 빛나며, 이 삶에 드리우는 빛을 짓밟거나 망가뜨리려는 손길은 어디에서 나타날까요.

 


  일본사람도 ‘미나마타병’ 이야기를 사진으로 아주 많이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그야말로 ‘사진나라’이니, 어느 나라 사진작가보다 훨씬 많은 사진작가들이 미나마타 조그마한 바닷마을로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수없이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나마타 조그마한 바닷마을 사람들은 누구한테 마음을 열었을까요. 미나마타 자그마한 시골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사랑을 속삭이는 하루를 내보여 ‘이녁 마을에 찾아온 손님’ 앞에서 보여주면서 ‘미나마타 이야기’를 어떻게 알리고 싶었을까요.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우리는 피해자예요!’ 하고 외쳤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미나마타 바닷마을 사람들은 ‘우리는 사람이에요!’ 하고 외쳤으리라 느낍니다.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 님은 미나마타 바닷마을로 찾아가서 마을사람들 목소리와 눈빛과 몸짓과 꿈과 사랑을 조곤조곤 나누면서 이야기 하나를 시나브로 길어올렸으리라 느껴요.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삶을 사진으로 그리면서 태어난 《Minamata》라고 느껴요. 삶은 웃음이면서 눈물이고, 삶은 꿈이면서 빛이며, 삶은 노래이면서 사랑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책 《Minamata》라고 느껴요.

 


  그렇지요. 고발하려고 사진을 찍는들 고발할 만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보도하려고 사진을 찍는들 보도할 만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을 생각해야 할 노릇입니다. 삶을 사랑할 노릇입니다. 꿈을 노래할 노릇입니다. 바닷마을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물고기를 먹던 사람들은 앞으로도 물고기를 낚으면서 물고기를 먹으며 살아갈밖에 없어요. 이 삶을 사진으로 보셔요. 4346.8.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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