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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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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61
이야기꽃 피우는 사진삶
― 도시락의 시간
아베 사토루 사진,아베 나오미 글,이은정 옮김
인디고 펴냄,2012.7.20./13800원
낮에 아이들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나갑니다. 샛자전거에 앉는 큰아이는 졸려도 잘 수 없습니다. 자전거수레에 앉는 작은아이는 몇 분 안 지나 잠들어요. 뻔히 알지만, 자전거에 아이들 태우고 마실을 나갑니다. 오늘은 우리 마을 뒷메인 천등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골짜기로 갑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땀 뽈뽈 쏟는 아이들 시원하게 놀기를 바라면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하루 지나 낮에 다시금 골짝기로 찾아갑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골짜기 물놀이입니다. 바닷가 물놀이를 하면 모래밭을 달리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즐기지만, 골짜기에서는 물살을 헤치며 놉니다. 졸졸 흐르는 물줄기에서 살아가는 아주 조그마한 어린고기가 발가락 콕콕 쪼는 느낌을 한껏 누리면서 놉니다.
우리 식구 지내는 전남 고흥이 널리 알려진 관광지라면, 이 여름에 골짜기로 놀러다니지 못합니다. 도시에서 찾아든 관광객으로 넘칠 테니까요. 오늘은 골짜기에서 관광객을 못 보았지만, 어제는 자가용 다섯 대나 골짜기에 있더군요. 이들은 골짜기에서 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푯말 버젓이 있어도 불을 피워서 무언가 끓이거나 구워서 먹습니다. 쓰레기를 잔뜩 내놓고 갑니다. 쓰레기 버리지 말고 제발 도로 가져가라는 푯말이 자동차 앞에 큼지막하게 있지만, 한글을 읽을 마음이 없구나 싶기까지 합니다.
아이들과 바닷가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바닷가에는 도시 관광객이 한여름에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 관광객이 아무렇게나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담배를 태웁니다. 온통 쓰레기요 아주 어지러우며 시끄럽습니다. 얼른 팔월까지 지나야 다시 바닷가로 나들이를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 나도 예쁘게 만든 삼각 주먹밥이 좋아. 하지만 남한테 보여줄 것도 아니고……. 나는 요 통통한 녀석이 마음에 들어. 애 엄마에게 부탁해도 되지만 내 일이 워낙 새벽에 시작하니까 미안해서 말 못해. 허허허, 3시에 일어나서 4시가 되면 집에서 나와야 하거든. 전에 실공장에서 일할 때는 말이오, 참한 도시락 통에 싼 먹음직스러운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지. (20쪽/집유원)
-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39쪽/간호사 겸 말 체중 측정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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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관광객은 정갈하며 조용한 시골 바닷가나 골짜기까지 찾아오더라도 고기를 구워먹거나 술을 마시는 재미밖에 모르는가 싶습니다. 아마, 도시에서 ‘어른들이 논다’고 할 적에는 술 마시는 자리 빼고는 거의 없어요. 노래방에 가서 꽥꽥 소리를 지르거나, 또 고기를 구워서 먹겠지요. 그러니, 막상 시골로 여름마실 간다 하더라도 시골을 한껏 누리거나 맞아들이는 즐거움을 헤아리지 않아요.
조용한 시골에서는 조용하게 한때를 보내면서 삶을 돌아보는 즐거움이 있어요. 깨끗한 시골에서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건사하면서 사랑을 되새기는 즐거움이 있어요. 아름다운 시골에서는 자가용 내려놓고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면서 마음 깊이 아름다운 빛깔과 소리와 무늬와 결을 아로새기는 즐거움이 있어요.
술집에서는 술집다운 즐거움 누리듯, 시골에서는 시골다운 즐거움 누릴 노릇이에요. 노래방에서는 노래방다운 놀이 즐기듯, 시골에서는 시골다운 놀이 즐길 노릇이에요.
들길을 걷고 들꽃을 보며 들풀을 따서 먹을 때에, 시골마실 즐거움이 됩니다. 숲에서 한잠 자고, 숲을 한창 쏘다니며, 숲바람과 숲노래 한가득 받아들일 때에, 시골마실 기쁨이 돼요.
- 내가 싫어해서 고양이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걔네들 눈앞에서 참치를 잘라 주는 게 마치 초밥집 카운터에 앉아서 먹는 거랑 비슷해서 고양이들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봐요. (43∼44쪽/디자인학과 교수)
- “물가의 전복은 하늘로 딴다.” 옛날에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야. 하늘이 맑으면 바닷속이 훤하게 보여서 전복을 많이 딸 수 있다는 말이야. (51쪽/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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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면, 도시사람뿐 아니라 시골사람조차 시골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제대로 못 누린다고 느낍니다. 요새는 웬만한 두멧시골까지 텔레비전이 들어오지만,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웬만한 시골이라면 텔레비전이 안 들어오고 손전화가 안 터졌어요. 요새는 시골에서도 손전화 안 터지는 데 찾기 매우 힘들어요.
시골사람부터 스스로 시골에서 시골사람답게 놀고 일하며 어울릴 때에, 시골로 찾아오는 도시사람이 아무렇게나 엉터리짓 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부터 스스로 늘 시골소리 듣고 시골내음 맡으며 시골빛 밝힐 때에, 어쩌다 한두 번 시골로 나들이를 오는 사람들이 함부로 쓰레기 휙휙 던지지 않아요.
잘 생각해 보셔요. 시골사람부터 스스로 쓰레기를 골짜기나 벼랑에 몰래 갖다 버려요. 시골사람부터 스스로 농약을 지나치게 뿌려대요. 시골사람부터 스스로 자가용이나 짐차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듯이 여겨, 하나같이 자동차만 몰 뿐,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안 타요. 게다가 시골사람은 술 자주 마시면서 술에 전 몸 그대로 자동차를 함부로 몰기 일쑤예요.
도시에서 쳇바퀴 돌듯이 돈벌기에만 얽매인 도시사람이 제대로 놀거나 일할 줄 모르기에, 모처럼 시골을 찾아갔어도 시골빛 못 느끼듯,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도 시골스러운 삶을 노래하지 못하다 보니, 서로 엉터리가 됩니다. 엉터리로 삶을 흘려보내는 도시사람은 시골로 와서 쓰레기 마구 버리고 바다에서건 골짜기에서건 마을에서건 숲에서건 빽빽 소리를 지르며 시끄럽습니다. 엉터리로 들과 숲을 망가뜨리는 농약을 줄기차게 뿌릴 뿐 아니라, 비닐과 농약병과 플라스틱과 호일까지 한꺼번에 쌓아 아무렇게나 태우는 시골사람 버릇이 시골을 자꾸 망가뜨리는 지름길 됩니다.
- 가끔 집사람이 출근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사실 너무 이른 시간이잖습니까? 그런 말은 회사로 도시락을 갖다 주는데, 아이들도 같이 와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갖다 준 도시락이 특히 더 맛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뭔가가 들어 있나 봐요. (57쪽/수타면 장인)
- 뭐가 좋았냐면요, 울외장아찌랑 달걀, 박고지를 밥에 올린 다음 발로 말아서 완성한 통통한 김밥을 썰 때의 그 소리! 코가 상큼해지는 초밥 냄새! 그런 게 참 좋았어요. 음, 이런 말을 해서 그런지 그게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애들은 맛보다도 소리와 냄새로 기억을 저장해 두나 봐요. (88∼89쪽/데와산잔 신사 음악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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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꽃 피우는 삶일 때에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가 태어납니다. 이야기꽃 피우는 삶이 아니라면 사랑을 속삭이지 못할 뿐더러, 꿈 또한 나누지 못합니다.
사랑을 속삭이지 못하는 사람은 글을 못 씁니다. 사랑을 속삭이지 못하니 사진을 찍을 줄 모릅니다. 꿈을 나누지 않으니 글 쓸 엄두를 내지 않아요. 꿈을 나누려는 마음을 안 키우면 사진빛을 밝혀 온누리 따사롭게 보듬는 길을 헤아리지 못해요.
자가용 모느라 바쁜 사람은 글을 거의 안 씁니다. 어쩌다 글을 쓰더라도 앞만 보고 싱싱 달리는 자가용질 같은 글이 나옵니다. 자가용 모느라 바쁜 사람이니 글도 못 쓰지만, 책도 못 읽어요. 바쁘고 힘들며 다른 할 일 많으니 책에 손을 못 대기 마련이에요. 무겁고 커다란 사진장비를 자동차 짐칸에 싣고 다니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글을 안 쓰고 책을 안 읽더라도, 사진기만큼은 꼬박꼬박 챙기는 사람이 꽤 많아요.
그러나, 자가용을 몰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가용을 몰 때에는 옆이나 뒤를 못 봐요. 자가용을 몰며 옆이나 뒤를 본대도 ‘다른 자동차’를 쳐다보지, 자가용으로 달리는 길 둘레를 찬찬히 살핀다든지, 이웃사람과 이웃마을 골고루 바라보거나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가용을 달리는 몸으로는 사진을 못 찍어요. 달리는 자가용을 세우면, 그때서야 사진기를 손에 쥐겠지요. 운전대를 손에 쥐는 사람 손에 연필도 책도 사진기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 손은 운전대를 쥐고 눈은 코앞만 바라보며 마음은 ‘사고 내지 않을 생각’으로 가득할 뿐입니다. 몸으로 삶을 안 느끼고, 손으로 이웃과 어깨동무하지 않으며, 눈으로 빛을 살피지 않는데, 어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겠어요.
- 도시락에 대해서는 감히 무슨 말을 하겠어. 아니다,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나름 맹세를 했지. 만일 부인님한테 싫은 소리 했다가 도시락 안 싸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만들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전해지기 때문에 늘 고맙게 생각해. (99쪽/보험회사 영업사원)
- 난 뭐든지 잘 먹는다오. 음식을 먹어서 내 몸의 일부분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식사를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밥 한 톨 남기지 않으려고 무척 신경을 쓰는 편이야. (138쪽/사찰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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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사토루 님과 아베 나오미 님이 함께 일군 사진책 《도시락의 시간》(인디고,2012)을 읽습니다. 도시락을 아주 즐겁게 싸서 아주 즐겁게 먹는 사람들을 찾아다닌 이야기가 담긴 《도시락의 시간》입니다.
《도시락의 시간》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봅니다. 스스로 누릴 삶을 생각합니다. 스스로 즐기는 삶을 살펴 도시락을 싸고 도시락을 먹으며 도시락에 담은 마음을 읽습니다.
글을 쓰듯이 도시락을 싸지요. 사진을 찍듯이 도시락을 먹지요. 노래를 하듯이 설거지를 하고, 꿈을 꾸듯이 도시락 품에 곱에 안아요.
아베 사토루 님과 아베 나오미 님이 한 일이란 딱히 없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이웃을 만날 뿐입니다. 즐겁게 노래하고 사랑하며 꿈꾸는 사람들을 동무로 사귀면서 함께 웃을 뿐입니다. 아베 사토루 님과 아베 나오미 님은 굳이 글을 쓰려 하지 않았고, 애써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어요. 살갑게 이웃이 되거나 동무로 사귀면서 저절로 글이 태어나고 시나브로 사진이 샘솟습니다. 이야기꽃이 피어나면서 글과 사진이 어우러집니다.
- 먹는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매일 축적되어 가는 일종의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철이 들면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엄마에게 감사해요. (163쪽/홈메이드 과일잼 전문점 직원)
- 하루 벌이로 먹고살던 때의 도시락에 얽힌 기억 같은 건 사실 없어. 그저 추운 겨울날 차가운 밥을 위장에 꾹꾹 집어넣었던 기억밖에는. (220쪽/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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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없습니다. 삶은 모두 예술입니다. 도시락 한 그릇이 예술입니다. 도시락을 마련하는 손길이 예술가 손길입니다. 그러니까, 도시락을 싸는 사람 누구나 예술가입니다.
‘사진은 예술인가 아닌가’ 하고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삶이요, 사진은 이야기꽃 피어나는 삶일 때에 태어나는 만큼, 삶은 늘 예술인 터라, 사진 또한 늘 예술이기 마련입니다. ‘사진은 예술인가 아닌가’ 하고 따지는 사람들만 예술가가 못 되고, 이런 생각을 따지는 일은 스스로 예술하고 동떨어져요.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삶은 예술인가 아닌가’ 하고 안 따진답니다. 삶은 아주 마땅히 예술인 터라, 어느 누구도 따질 생각을 안 해요. 예술을 하려 한대서 예술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삶을 즐기려고 하면 모두 예술이 돼요. 예술을 좇는대서 예술이 되지 않아요. 삶을 빛내고 밝히면서 나누면 언제나 예술이 돼요.
- 제가 살고 있는 섬에 펼쳐진 해변을 보면서 늘 생각해요. ‘참 아름답구나.’ (227쪽/고등학생)
- 어쨌든 지금은 겨울이라 손님이 적어서 당번 날에는 혼자서 먹어. 평상시에는 절임과 생선으로 충분하지. 맞다, 아베 씨네 가족 것도 싸왔어. 같이 먹으려고 말이야. 이리 와서 같이 먹자고! 얼른 와. (259쪽/옛날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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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즐겁게 먹는 섬마을 아이가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언제나 “참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한대요. 이 아이는 날마다 예술을 누리는 셈입니다. 아니, 이 아이는 삶이 온통 예술입니다.
늙은 할머니인 어느 옛날이야기꾼은 도시락을 부러 더 쌌다고 합니다. ‘취재’를 하러 온 젊은이들을 살가운 이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취재’가 무어 대수롭겠습니까. ‘취재’는 아무것 아니에요. 함께 나눌 삶이 대수롭고, 함께 꽃피우는 사랑이 대수롭습니다. 함께 먹는 도시락이 대수롭고, 함께 노래하는 이야기가 대수롭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취재를 하려고 하면 정작 취재조차 안 됩니다. 글을 쓰려고 하면 정작 글을 못 써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정작 사진을 못 찍습니다. 삶을 쓰려고 하면 저절로 글이 나옵니다. 삶을 찍으려고 하면 시나브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삶을 불러서 노래가 됩니다. 삶을 그려서 그림이 됩니다. 삶을 말하니 이야기가 되지요. 삶을 써서 차곡차곡 모으면? 네, 삶을 써서 차곡차곡 모은 알맹이는 바로 책입니다. 4346.7.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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