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스러운 눈물
나는 만화영화나 일반영화를 볼 때나 눈물을 참 잘 흘린다. 우리 옆지기는 무엇을 보든 눈물을 거의 안 흘린다.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이 아니라,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대목에서 한결 깊은 곳을 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풀이 씨앗을 떨구고 겨울에 시들어 죽을 적에 눈물을 흘리는가. 나무가 헌 잎을 떨구면서 눈물을 흘리는가.
그러나,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눈물을 흘릴는지 모른다. 풀도 나무도 언제나 눈물을 흘리며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모습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여섯 살이 된 큰아이가 만화영화 보고 싶다 해서 이런저런 만화영화를 틀어 줄 적에, 아버지는 으레 눈물을 흘리곤 한다. 슬프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볼 때에는, 이 작품을 백 번을 보았거나 천 번을 보았거나 늘 새롭게 눈물을 흘린다. 큰아이는 세 살 적까지는 눈물이 없이 그냥 웃으면서 보더니, 네 살 적부터는 아버지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만화영화를 본다.
옆지기는 함께 만화영화를 보다가 ‘얼씨구! 아버지와 딸이 똑같네!’ 하면서 빙긋이 웃는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눈물이 나는걸. 큰아이도 아버지 곁에서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만화영화를 본다. 바보스러운 눈물일까. 그래, 바보스러운 눈물일 테지. 나는 이제껏 늘 바보스러운 눈물을 흘렸고, 앞으로도 바보스러운 눈물을 흘리리라. 우리 큰아이가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또 우리 큰아이가 나중에 아이를 낳아 이 아이를 돌보며 지낼 적에도 나는 늘 바보스러운 눈물을 흘리겠지.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