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사랑하는 마음

 


  시골에서는 들판에 그늘 드리운다며 나무를 다 베어요. 그런데 시골길 어둡다면서 길가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 밤에도 들판이 못 쉬게 해요.


  도시에서는 전깃줄 건드린다며 나뭇가지를 뭉텅 자르거나 아예 나무를 베어요. 자동차 댈 자리가 모자란다든지 건물 새로 지을 적에는 나무를 아낌없이 베어요. 그러면서 공원을 만든다며 시골에서 나무를 비싸게 사들이고, 건물 다 지으면 건물 둘레에 또 나무를 비싸게 사서 심어요.


  나무도 사람하고 같아요. 나무도 풀도 꽃도 사람하고 같아요. 사람들 누구나 잠을 자고 몸을 쉬며 기운을 차리듯, 나무도 풀도 꽃도 잠을 자요. 나무도 몸을 쉬어야 하고, 풀과 꽃도 느긋하게 쉬면서 기운을 차려야 해요. 잠을 자는 사람 곁에 전기로 등불 밝히면 잠을 제대로 못 자듯, 나무 곁에 등불 환히 밝히면 나무는 몸살을 앓아요. 자동차 끝없이 달리는 찻길에 아이를 하루 내내 세워 보셔요. 아이는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우며 귀가 멍할 테지요. 찻길에 심은 나무들이 자동차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거나 들볶이는가를 헤아리셔요. 아이한테 못할 짓이라면 나무한테도 함부로 할 수 없어요.


  열매를 손쉽게 따자면서 가지를 휘어 놓으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굵다란 열매 맺도록 비료 듬뿍 주고 열매마다 농약을 뿌려 벌레가 못 먹도록 하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능금나무·배나무·포도나무가 열 해를 제대로 못 채우고 죽는다고 해요. 열매 얻으려는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괴롭히고 들볶으니, 열매나무는 고작 열 해 즈음 열매를 맺고는 말라죽는다고 해요. 우리들은 멋모른 채 알 굵고 달달한 열매를 사다 먹지만, 정작 이 열매는 열 해조차 제대로 못 살며 시달리던 나무가 내어준 살점일 수 있어요.


  능금나무도 배나무도 백 해 오백 해 천 해를 살아야지요. 열매를 딸 때에 사다리를 받쳐 천천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하늘 저 끝을 바라보기도 해야지요. 우듬지에 맺는 열매는 멧새 몫으로 두면 돼요. 또는 다람쥐가 먹으라 해도 돼요. 백 해 이백 해 삼백 해를 살아낸 능금나무라면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열매 또한 잔뜩 매달 테니, 사람한테뿐 아니라 들짐승과 멧새한테도 좋은 밥을 베풀 수 있어요.


  나무를 사랑한다면, 이들 나무가 사람한테만 선물을 주기를 바라지 말아요.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마시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에요. 나무는 종이가 되거나 옷장이 되려고 태어난 목숨이 아니에요. 나무는 구경거리가 아니고, 전시품이 아니에요. 나무는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고, 함부로 베어서 죽여도 되지 않아요.


  나무 한 그루 있어 흙이 살아나요. 흙이 살아나며 풀이 돋고 꽃이 피어요. 풀과 꽃이 자라면서 들을 이루고, 천천히 숲이 태어나요. 사람도 짐승도 벌레도 숲이 있을 때에 목숨을 이어요. 나무 한 그루에서 비롯하는 숲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보드라운 손길로 나뭇줄기 쓰다듬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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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4 09:34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톨게이트 옆에서 콩농사를 짓는 할머니가 불빛에 콩이 잠을 못 잔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가로등을 깨버리시는..김종옥 시인의 <잠에 대한 보고서>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렇지요..밤에는 들판도 나무도 다 잠을 자야지요. 어항의 불도 밤에는 꺼야 물고기들도 편히 잠을 자요..
정말 나무든 자연이듯 다 함께 아껴가며 사랑스러운 삶 일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아침입니다..

숲노래 2013-07-24 10:17   좋아요 0 | URL
사람들 스스로 밤에 조용하고 느긋하게 잘 때에
이웃을 살가이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