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방송 책읽기

 


  고흥읍에서 순천역으로 시외버스를 달리는 길에, 시외버스 일꾼이 교통방송 라디오를 듣는다. 저 라디오 좀 끄면 안 될까. 저 라디오 듣고 싶으면 혼자 귀에 소리통 꽂고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귀로는 소리에 마음을 쓰고, 눈과 몸과 손으로는 버스 운전대에 마음을 쓸 수 있는가. 자동차를 몰 적에 텔레비전 보지 말라 하고 손전화 켜지 말라 한다면, 자동차를 몰며 라디오도 들어서는 안 될 노릇 아닌가.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고 이래저래 놀리다가 문득문득 교통방송 소리를 듣는다. 곰곰이 생각한다. 교통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란 거의 모두 ‘길 막힌다’는 소리라고 느낀다. 이리 돌아가든 저리 거쳐 가든 언제나 ‘길 막힌다’는 소리로구나 싶다. 이 얘기 아니라면 ‘길 안 막힌다’는 소리일 테지. 그러니까, 길이 막히면 막힌다 하고, 안 막히면 안 막힌다는 소리이다. 그러니까, 자동차를 모는 사람으로서는 이리로 가든 저리로 가든 교통방송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막힐 길을 가야 하는 시외버스로서는 뚫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흥과 순천 사이에 교통사고가 났다면 어쩌겠는가. 교통사고 때문에 흩어진 조각 치울 때까지 길에서 멀뚱멀뚱 서야지, 돌아갈 길이 없다. 돌아가야 하는 길이라면 사고 현장 둘레에서 마련한다. 길이 안 막힌다 할 때에도 교통방송을 들을 일이 없다. 안 막히니까 시원스레 잘 달린다.


  굳이 라디오를 들어야 한다면, 버스 일꾼한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싶다. 이를테면, 봄에는 봄꽃과 봄바람과 봄내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름에는 여름꽃과 여름바람과 여름내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싶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들려주고 겨울에는 겨울빛을 알려주어야지 싶다.


  아름다운 이야기 담은 책을 읽어 준다든지,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들을 만한 아름다운 시를 읽어 준다든지, 어른과 아이 모두 즐겁게 누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준다든지 할 라디오라고 느낀다.


  숲에서 나무가 얼마나 자랐고, 나무마다 나뭇잎빛 얼마나 다르며 싱그러운가를 이야기한다면 즐거우리라. 꽃망울 터지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비가 날갯짓하며, 어느 시골 하늘에 구름빛 환하다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밝히면 더없이 즐거우리라. 4346.7.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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