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를 쏘다 - 안티기자 한상균의 사진놀이
한상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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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42

 


사진을 읽는 길
― 고릴라를 쏘다
 한상균 글·사진
 마로니에북스 펴냄,2012.10.15./15000원

 


  연합뉴스 사진기자 한상균 님이 쓴 《고릴라를 쏘다》(마로니에북스,2012)를 읽습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어 매체에 실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지난 2012년에 한상균 님이 내놓은 책은 ‘사진찍기’ 아닌 ‘사진읽기’를 이야기합니다. 누구보다 한상균 님 스스로 사진을 어떻게 읽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놀이라면 재밌어야 하지 않을까요(18쪽)?” 하는 말처럼, ‘사진놀이’일 적에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놀이’이니까요. 노래놀이가 되든 그림놀이가 되든 글놀이가 되든 춤놀이가 되든, 놀이일 적에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를 꽃피우고 재미를 나누는 놀이예요.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도 서로 재미있자고 합니다. 공놀이도 씨름놀이도 함께 재미있자고 해요. 죽자 사자 겨루면서 누가 이겨야 하는 놀이가 아니에요. 곧, 사진놀이일 적에는 서로 재미있는 길을 찾으면서, 사진이란 이렇게 재미나구나 하고 깨닫자는 뜻입니다. 1등이나 꼴등 따로 없이 어느 사진이든 재미있게 놀자는 뜻입니다.


  사진놀이 아닌 ‘사진’이라고만 할 적에는 사뭇 다릅니다. 사진놀이에는 놀이라는 이야기가 함께 따르지만, 사진이라고만 할 적에는 놀이가 따를 수 있기도 하지만 일이 따를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삶이 따릅니다.

 

 

 


  놀이와 일과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곧, 사진이라 할 때에는 즐거움입니다. 삶도 일도 놀이도 즐겁게 나누자는 뜻이요, 삶과 일과 놀이 되어 어우러지는 사진이란,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가진 카메라에는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과 일상이 주로 담기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러이러한 사진은 나쁜 사진이라는 틀을 가지고 시작하면 나중에도 그 습관을 벗어던질 수가 없습니다 … 매우 개인적인 것이 사진입니다. 그냥 자기 사진이 있을 뿐입니다(69쪽).” 하는 말을 생각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장만한 사진기로는 이녁 여느 삶을 담겠지요. 그런데, 더 생각해 봐요.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은 ‘여느 삶(일상)’이 아닐까요? 사진기자가 찾아다니는 취재 현장은 ‘여느 삶터’가 아닐까요? 바로 오늘 어떤 일이 터져 어떤 현장이 되었다지만, 바로 이곳은 조금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삶터였어요.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운동선수이건 처음부터 국회의원이었거나 대통령이었거나 운동선수가 아니었어요. 모두 여느 사람이었어요. 여느 아기로 태어나 여느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곰곰이 따지자면,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도 ‘여느 삶’을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기자가 찍는 ‘여느 삶’은 수십만 수백만 사람이 쳐다보는 매체에 실린다뿐입니다.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은 ‘매체 보도’가 되어 ‘보도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속살을 파헤치면 모두 똑같은 ‘여느 삶’을 보여주어요. ‘여느 삶’에서 ‘보도가 될 이야기’를 새로 얻는다고 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여느 사진기로 여느 삶을 찍는 여느 사람인 우리들은 ‘여느 이야기’를 일굽니다. 여느 이야기에서 여느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여느 사랑에서 여느 꿈과 여느 마음을 가꾸지요.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궁한 가능성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은 결코 ‘뭘 찍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찍지?’의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75쪽).” 하는 말마따나,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우리 여느 삶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즐겁게 찍는 사진은 즐겁게 읽을 수 있어요. 즐겁게 찍는 사진이기에 즐겁게 나눌 수 있습니다. 억지로 찍는 사진이라면 억지로 읽어야 해요. 억지로 꾸미거나 만든 사진일 때에는 억지로 읽어내거나 억지로 비평하거나 억지로 문화나 예술 이름표를 붙이고 말아요.


  무엇을 찍느냐? 바로 우리는 우리 삶을 찍습니다. 무엇을 찍느냐? 사진기자는 기자로서 매체에 담을 삶을 찍습니다. 이이가 찍거나 저이가 찍거나 모두 삶을 찍어요. 이 사람이 찍었기에 대단한 사진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찍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사진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찍을 때에 즐겁게 읽을 만한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찍지 않을 때에는 겉보기로 그럴듯한 모습만 나타납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렌즈 화각 등을 잘 이용해서 색감, 구도 등이 잘 나온 사진을 찍었다면 그게 적어도 나쁜 사진은 아니겠지만 잘 찍은 사진이 꼭 좋은 사진일까요(120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저는 좀 많이 다르게 생각합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렌즈 화각”을 잘 살펴 찍은 사진은 “조리개 잘 살핀 사진”이거나 “셔터스피드 잘 맞춘 사진”이거나 “감도 잘 맞춘 사진”이거나 “렌즈 화각 잘 살핀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나쁜 사진이고 좋은 사진이고가 아닌, 그저 그런 사진일 뿐입니다. “색감, 구도 들이 잘 나온 사진”이라면 “색감이 잘 나온 사진”이거나 “구도가 잘 나온 사진”이지요. 이런 사진을 놓고 좋은 사진이라거나 나쁜 사진이라 할 수 없어요. 그저 그런 사진일 뿐입니다.


  흉내낸 사진은 흉내낸 사진입니다. 스스로 찍은 사진은 스스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랑스레 찍은 사진은 사랑스러운 사진이에요.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은 활짝 웃는 이야기 담은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할 때에 좋아할 만한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낄 때에 아낄 만한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못하거나 아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남이 해 주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단추를 눌러요. 스스로 바라봅니다. 스스로 느껴요. 스스로 삶을 이룹니다.


  한상균 님이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는 “여행이 좋아 사진을 찍는다면 모를까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간다면 말에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그냥 출사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네요(194쪽).”와 같은 말마디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좋아할 때에 사진을 좋아할 수 있어요. 스스로 꿈을 꿀 때에 사진을 꿈꿀 수 있어요. 스스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진으로 이야기를 빛낼 수 있어요.


  그럴듯한 모습에 사로잡혀서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남이 찍은 모습을 흉내내서는 내 사진을 이루지 못해요. 다른 사람 삶을 뒤꽁무니 쫓는대서 내 삶이 나아지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울 수 없듯, 나는 늘 내 사진을 생각하고 찾으며 즐길 뿐입니다. 내 삶을 내가 빛내어 누리듯, 내 사진을 내가 빛내어 누립니다. 사진을 읽는 길이란, 삶을 읽는 길입니다. 삶을 스스로 씩씩하게 일구는 사람은, 사진을 스스로 웃음꽃으로 피웁니다.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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