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김초혜 시집
김초혜 지음 / 해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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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어머니
[시를 말하는 시 30] 김초혜, 《어머니》

 


- 책이름 : 어머니
- 글 : 김초혜
- 펴낸곳 : 해냄 (2013.3.25.)
- 책값 : 12000원

 


  여러 날만에 밤별을 올려다봅니다. 여름장마 찾아들면서 칠월 들어 열흘째 밤별을 못 보았는데, 칠월 열하루째 되는 깊은 밤에 큰아이 쉬를 누이려 잠을 깨고 나서 나도 쉬를 누려고 마당으로 내려왔다가 하늘 가득 빛나는 밤별을 만납니다.


  별빛은 이렇게 고왔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장마라 구름 가득 하늘 채웠다 하더라도 이 별들은 늘 빛났을 테지요. 하늘에서 빛나고 땅에서 빛나요. 낮에도 빛나고 밤에도 빛나요.


  마음으로 마주하는 별빛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마음이 있으면 낮이고 밤이고 별빛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열어 구름 위에 드리우는 별빛을 살피고, 마음을 담아 저 먼 별나라 사람들한테 지구별 푸른 빛을 살포시 보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가시울을 / 껴안듯 살아도 / 피었다 이우르는 / 꽃을 보아도 / 조용한 그 모습 ..  (어머니 10)


  풀은 푸르게 돋습니다. 내가 바라볼 적에도 푸르게 돋고, 내가 안 바라볼 적에도 푸르게 돋습니다. 우리 집 마당가 풀밭에서 날마다 부추와 돗나물과 고들빼기를 뜯어서 아침저녁으로 밥상에 올리는데, 이 자리 저 자리 돌아가며 날마다 두 차례 뜯어도 날마다 우리 식구 맛나게 먹을 만큼 쑥쑥 새잎을 냅니다.


  풀이 한가득 자라는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풀밥을 먹으며 풀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이처럼 씩씩하게 새로 돋고 다시 돋는 풀이기에 늘 푸른 숨결 베푸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렇게 튼튼하게 자라고 크면서 싱그러운 잎사귀 내놓는 풀이기에 노상 푸른 내음 나누어 주는구나 하고 느껴요.


  풀빛 가득한 곳이 즐거워요. 풀빛 넘치는 곳이 살갑지요. 풀빛 이루는 곳이 살아갈 만한 데로구나 싶어요. 풀빛이 물결치는 자리에서 보금자리를 일구는구나 하고 배웁니다. 풀빛을 마음속에 고운 빛으로 받아들이고, 풀빛을 몸속에 맛난 밥으로 맞아들입니다.


.. 어머니는 무덤에 계시면서도 / 농 속에도 계시고 / 부엌이나 장독대 / 시장 구석구석 / 어물전에도 계시어 / 손끝에 묻은 / 생활이 때를 / 빛내주신다 ..  (어머니 12)


  바람을 쐽니다. 자동차 붕붕 지나가는 찻길에서는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아스팔트바람을 쐽니다. 쉬잖고 물결이 치는 바닷가에서는 훅 끼치는 소금내 깃든 바닷바람을 쐽니다. 숲속에서는 숲바람을 쐬는데, 숲마다 달리 자라는 나무들이 다 다른 풀빛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어요.


  그러고 보면, 철마다 다른 바람이에요. 봄바람, 여름바람, 가을바람, 겨울바람입니다. 네 철 뚜렷한 이 나라에서 철바람을 석 달씩 새롭게 맞아들이는 삶이란 얼마나 재미있나요. 게다가 철바람은 다달이 달라요. 여름바람이라지만, 유월바람 칠월바람 팔월바람 다릅니다. 가을바람도, 구월바람 시월바람 십일월바람 달라요.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도 다른 바람입니다. 꽃밭에서는 꽃바람입니다. 풀밭에서는 풀바람입니다. 토끼풀 흐드러진 논둑에서는 토끼풀바람이에요. 쑥이 한창 돋던 봄철에는 쑥풀바람이라 할까요. 논에서는 논바람을 쐬고, 밭에서는 밭바람을 쐽니다. 감나무 그늘 밑에서 다리를 쉬면 감나무바람 쐬어요. 우람한 느티나무 밑에서는 느티나무바람, 곧 느티바람을 쐬니, 감나무 밑에서는 감바람이라 하면 될까요.


  바람이 불어 숨을 들이켭니다. 바람이 흘러 빙그레 웃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바람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바람입니다. 공장 가득한 데에서는 공장바람이겠지요. 아파트 줄지은 곳에서는 아파트바람 되겠지요. 저마다 어떤 바람을 마시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스스로 어떤 바람을 바라는가에 따라 사랑이 달라지리라 느껴요.


.. 어머니 있어 / 즐거운 집 ..  (어머니 28)


  김초혜 님 시집 《어머니》(해냄,2013)를 읽습니다. 1988년에 처음 나온 시집이 새옷을 입습니다. 나는 김초혜 님 시집 《어머니》를 중학생이던 때에 처음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스물다섯 해 지난 오늘,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 새삼스레 읽습니다.


  이제 김초혜 님은 할머니 나이입니다. 시집 《어머니》를 쓸 무렵에는 어머니 나이였다면, 이제는 김초혜 님 스스로 “할머니”라는 시를 새삼스레 쓸 만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녁 어머님을 그리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시로 잇달아 노래했다면, 이제 이녁 어머님이 “할머니” 자리에서는 어떠한 삶 일구며 흙으로 돌아가셨는가를 가만히 짚으면서 새로운 시를 노래할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 다른 이의 몸을 / 아끼면 / 좋은 / 빛 속에 살고 // 내 몸을 / 아끼면 / 어둠 속에서 산다던 / 어머니 ..  (어머니 33)


  내 옆지기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한다며 한 달 남짓 배움길을 떠났어요. 두 아이는 아버지한테 기대며 하루하루 누립니다. 아이들은 가끔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하고 말합니다. 내 옆지기가 집에 머물며 두 아이 돌보는 동안, 내가 가끔 바깥일 때문에 멀리 다녀올 적에 하루나 이틀 집을 비울라치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하고 말한다고 해요.


  나도 옆지기도 언제나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얘들아,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너희 눈앞에 있을까? 너희 눈앞에도 이렇게 있고, 너희 마음속에도 있어. 마음속으로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그려 봐. 살며시 눈을 감고 어머니를 떠올려. 그러면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즐겁게 놀 수 있어.”


  함께 있는 삶이고, 함께 어우러지는 사랑입니다. 손으로 만질 만한 데에 있어도 ‘있’고, 마음으로 그릴 만한 곳에 있어도 ‘있’어요. 내 어머니는 아이들한테는 할머니요, 나는 우리 어머니한테 아이인데, 우리 아이들한테 나는 아버지이자 어버이입니다. 서로 같은 삶자락을 일구면서 웃고, 서로 다른 삶자리에서 일하며 웃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며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모두 아이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며 어버이가 됩니다. 어버이는 모두 이녁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던 아이였습니다. 김초혜 님 어머님은 이녁 어머님한테서 어떤 사랑과 꿈을 물려받으면서 김초혜 님을 고운 딸아이로 보살피셨을까 하고 가만히 그려 봅니다. 4346.7.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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