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8) -의 : 열정의 뒤늦은 방문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열정의 뒤늦은 방문이 아니라, 열정의 탕진이며 열정의 상실이다
《강제윤-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호미,2013) 155쪽

 

  ‘진정(眞正)’은 ‘참으로’나 ‘참말’이나 ‘무엇보다’로 다듬고, ‘열정(熱情)’은 ‘뜨거움’으로 다듬어 줍니다. ‘방문(訪問)’은 ‘찾아오다’로 손보고, ‘탕진(蕩盡)’은 ‘마구 쓰다’나 ‘헤프게 쓰다’로 손보며, ‘상실(喪失)’은 ‘잃다’나 ‘사라지다’로 손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모두 ‘-의’를 넣어서 마치 일본 말투처럼 글을 씁니다. “열정의 탕진”이란 무슨 말이고, “열정의 상실”은 무슨 말일까요. 왜 한국사람이 일본사람 흉내를 내며 이런 말투를 써야 할까요. 한국 말투로 바로잡자면 “탕진하는 열정”이나 “상실하는 열정” 꼴이 되어야 할 텐데, 이렇게 적어도 말느낌은 아리송합니다. ‘탕진’이나 ‘상실’이나 ‘열정’ 같은 낱말이 한국말하고 살가이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구 써댄 뜨거움”이나 “사라진 뜨거움”으로 한 번 걸러 봅니다. 그런데, ‘열정’은 ‘뜨거움’으로 다듬을 만하지만, 이 글월에서는 다른 낱말로 다듬을 때에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불빛’이나 ‘불꽃’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열정의 뒤늦은 방문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열정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뜨거움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빛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불빛이 아니라
→ 뒤늦게 찾아온 불꽃이 아니라
 …

 

  이 글을 쓴 분만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글을 쓴다는 분들은 으레 이렇게 “무엇의 무엇”처럼 ‘-의’를 집어넣어 버릇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런 말투가 자주 나오고, 동시집이나 동화책이나 그림책에까지 이런 말투가 흔히 나와요. 이 보기글은 낱말이나 말투를 조금 손보더라도 여러모로 엉성하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뒤늦게 찾아온 불꽃이 아니라, 마구 써댄 불꽃이며 사라진 불빛이다.”처럼 보기글을 손보아도 크게 나쁘지 않으나, 글차례를 뒤집어서, “뒤늦게 찾아온 불꽃을 두려워 말고”를 글월 앞으로 빼고, “-을 두려워해야 한다”를 글월 뒤에 놓아야, 비로소 부드럽게 이어지는 한국말이 되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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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찾아온 불꽃을 두려워 말고, 헤프게 써댄 불꽃이며 사라진 불빛을 무엇보다 두려워해야 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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