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를 읽는 마음

 


  이오덕 님 일기를 다 읽은 사람은 이제 세 사람이 되리라 봅니다. 첫째, 이오덕 님 큰아들. 둘째, 나. 셋째, 《이오덕 일기》를 펴낸 출판사 편집자. 이오덕 님이 쓴 일기를 죽 살피면, 수많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크게 가르자면, ‘사람을 마주한 이야기’와 ‘숲을 마주한 이야기’로 살필 만한데, 사람을 마주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는 당신이 숨을 거두는 날까지 뒤바뀝니다. 처음에는 아름답구나 싶던 사람이라 여겼으나, 이윽고 꿍꿍셈을 느끼고, 비로소 속셈을 알아차립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사람이었으나, 나중에는 아름다운 빛을 알아봅니다. 겉으로 볼 때와 속으로 살필 때에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를 깨닫는 대목도 많아요. 2013년 6월에 다섯 권으로 간추려서 나온 《이오덕 일기》에는 이 같은 이야기까지 담기지 않습니다. 출판사 편집자가 몹시 마음을 기울여 이런 대목을 잘 덜어냈다고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오덕 님이 당신 일기에서 밝힌 ‘속이 검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큰자리 차지하며 일하기도 하고, 어떤 단체를 이끌기도 하며, 여러 아이 어버이로 살아가기도 해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하나둘 숨을 거두어 이오덕 님이 가신 하늘나라로 간다면, 그러니까 앞으로 쉰 해쯤 뒤인 2063년 즈음에는 “이오덕 일기 모두” 온누리에 선보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오덕 님 일기를 통째로 다 읽은 첫 사람입니다. 이번에 다섯 권으로 묶어서 나온 《이오덕 일기》를 새삼스레 읽으며, 처음 이오덕 님 일기를 이녁 서재 한쪽 종이상자에서 찾아내어 하나하나 손으로 쓰다듬으며 읽던 일을 떠올립니다. 2003년 9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이오덕 님 글과 책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오덕 님 묵은 글(원고)을 만질 적에는 늘 흰장갑을 꼈습니다. 내 손그림(지문)이 묻을까 싶어, 흰장갑 낀 채 살살 넘겼어요. 수십 해 쌓인 책먼지와 원고지먼지가 방에 그득하기에 한겨울에도 창문은 몽땅 열고 물안경을 꼈으며 입가리개를 했어요.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찬바람에 벌벌 떨고 손가락이 얼어붙었지만, 씩씩하게 글과 책을 살펴서 가리고 나누었습니다. 내 몸이야 이불을 덮으면 곧 녹지만, 묵은 원고종이와 책은 잘못 만지거나 다루면 돌이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묵은 먼지와 곰팡이는 털고 닦고 말려야 했어요. 볕이 드는 아침부터 해가 떨어지는 저녁까지 원고종이와 책을 밖에 내놓아 말려서 다시 안으로 들이는 일을 참 오래도록 되풀이했습니다.


  《이오덕 일기》에 나오는 이오덕 님 삶은 이녁 한 사람 삶이면서, 우리들 삶입니다. 이오덕 님 일기를 한 줄 두 줄 읽는 동안, 저절로 내 삶이 떠오릅니다. 이오덕 님이 만난 사람을 헤아리고, 이오덕 님이 한 일을 되짚으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하는 일을 곱씹습니다. 일기문학이란 이렇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오덕 님이 마흔두 해에 걸쳐 꾸준하게 쓴 일기는 이렇게 우리한테 고운 선물이 되는구나 하고 깨우칩니다.


  《이오덕 일기》가 나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라, 이오덕 님은 이녁 일기가 책으로 나오기를 바라셨습니다. 당신 큰아들한테도 이 말을 곧잘 했고, 이런 이야기를 당신 스스로 더러 써 놓기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어느 한두 사람을 해코지하거나 나무라려고 ‘일기 공개’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허물이야 이오덕 님 당신 스스로한테도 많다고 일기에 잇달아 적어요. 서로서로 삶을 보고 삶을 사랑하며 삶을 꿈꾸자는 뜻에서 당신 일기를 사람들한테 읽히며 나누기를 바랐어요. 어제 일은 어제대로 돌아보면서 오늘 일을 새롭게 일구고 모레와 글피에 찾아올 아름다운 꿈을 꾸자는 뜻을 늘 이야기했어요.


  어떤 이들은 이오덕 님이 ‘젊은 사람을 너무 비판한다’고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오덕 님은 젊은 사람이고 늙은 사람이고 ‘비판하지 않았’어요. 저마다 이녁 삶을 밝히는 길을 찾아서 함께하고 싶어 했어요. 잘하는 일은 잘하는 일이라 말하고, 잘못하는 일은 잘못하는 일이라 말할 뿐이었어요. 잘하는 일은 앞으로도 잘하면 되고, 잘못하는 일은 이제부터 바로잡으면 될 뿐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스스로 잘못하는 일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이들이 이오덕 님을 바라보며 ‘비판쟁이 할아범’이라고 뒤에서 쑥덕쑥덕 호박씨를 까요.


  나는 이오덕 님 일기를 조그마한 수첩으로 읽을 적이든, 예쁘장하게 나온 다섯 권짜리 책으로 읽을 적이든, 마음이 더없이 푸근하며 즐겁습니다. 좋은 말벗이나 삶벗으로 스며드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살가운 벗을 떠올려 보셔요. 살가운 벗은 밥자리이든 술자리이든, 여느 이야기자리이든, 그야말로 허물없이 말을 해요. “너 말이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 하고. 정희성 님이 새내기 시인이었을 적에 쓴 시에 이녁 동무한테 “개새끼”라고 했다는 말을 잇달아 적어요.


  푼더분하고 수수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새겨들으라 하는 꾸짖음이 아니라 알아들으라 하는 속삭임입니다.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은 분은 알아챌 텐데, 이오덕 님은 스스로 다짐한 일을 잘 못 지킵니다. 애써 다짐했지만 막상 몸으로 못 옮기기 일쑤입니다. 마음과 달리 몸으로 못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모두 스스럼없이 일기에 밝혀요.


  이 나라 사람들 모두,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서 사랑을 꿈꿀 수 있기를 빌어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돈을 많이 벌든 돈을 조금 벌든, 서로서로 아끼고 믿고 기대며 활짝 웃는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을 새삼스레 읽으면서 꼭 한 가지를 헤아립니다. 즐겁게 써서 남기는 일기문학이란, 바로 ‘삶노래’로구나 싶어요. 삶노래는 사랑노래 되고, 사랑노래는 꿈노래가 됩니다.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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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10 10:20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드디어 <이오덕 일기>세트 주문했습니다. ^^
저녁에는 이 고운 책을 펼쳐볼 수 있겠지요~
쌩스투~ㅎㅎ

숲노래 2013-07-10 11:44   좋아요 0 | URL
큰 책 장만하시는군요!
즐겁게 차근차근 아름다운 이야기 누리시기를 빌어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