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학교 가자
안 부앵 지음, 오렐리아 프롱티 그림, 선선 옮김, 상드린.알랭 모레노 사진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2

 


어린이한테 사진을 보여주는 마음
― 얘들아, 학교 가자
 안 부앵 글,상드린·알랭 모레노 사진,오렐리아 프롱티 그림,선선 옮김
 푸른숲 펴냄,2006.12.15./18800원

 


  모두 서른 나라에서 저마다 아이들이 어떤 학교를 어떻게 다니는가 하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책 《얘들아, 학교 가자》(푸른숲,2006)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은 ‘상드린·알랭 모레노’ 두 사람은 마흔여덟 나라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이 사진책에는 서른 나라 학교 모습을 담는데, 사진작가 두 사람이 다니지 않은 나라는 다른 여러 사진작가들 사진으로 넣어요. 이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는 강제훈 님 사진도 두 장 함께 들어갑니다. 한국(남녘) 학교를 다루는 자리에서는, 글을 쓴 ‘안 부앵’ 님이 “자연 속에서 흙을 만지고 물을 튕기며 놀던 아이들도 자라면서 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되겠지요. 하지만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오솔길에서 다람쥐를 쫓으며 뛰고 걸었던 학교 가는 길을 잊을 수는 없을 거예요.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시골 아이들의 고향이자, 이 시대 모든 어른이 그리워하는 마음속 고향이 사라지고 있어요(4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국 학교는 ‘시골에서 사라지는 작은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참말 시골학교는 작습니다. 시골에서도 읍내에 있는 가장 큰 초등학교는 도시 초등학교 못지않은데, 읍내를 벗어난 면소재지 초등학교 가운데에는 전교 학생이 열이나 아홉이나 열하나인 데가 많아요. 이런 학교는 머잖아 문을 닫아요. 그러고는 더 큰 면소재지에 있는 더 큰 학교로 노란버스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가만히 따지면, 한국땅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더 큰 도시’로 가도록 길들어요. 시골을 떠나는 삶에 길들고, 도시바라기를 하는 삶에 길듭니다. 시골학교에서는 시골살이를 안 가르칩니다. 시골에서 이웃들이 흙을 만지거나 바닷물을 만지는 삶을 안 가르쳐요. 그런데, 도시에서도 이와 똑같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사람들 시골살이를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칩니다.

  이 나라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이 나라 어른들은 학교를 어떻게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려 하나요.


  《얘들아, 학교 가자》에는 한국 이야기가 한 꼭지 깃들지만, 머잖아 이러한 사진책에 한국 이야기가 함께 담기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초등학교 적부터 학원 뺑뺑이를 하거나 인터넷게임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꼭지 깃들는지 모르지요. 제 빛을 잃는 한국이요, 제 빛을 찾지 않는 한국이며, 제 빛과 스스로 동떨어지려는 한국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학교다울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는, 중학교는, 고등학교는, 대학교는 저마다 어떤 곳일 때에 학교답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어떤 구실을 할 때에 아름다울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줄 때에 아름다운 어른이 될까 궁금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어떤 학교를 어떤 꿈과 사랑을 담아서 지을까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품거나 어떤 이야기를 누릴까요. 시골과 도시에서 살아갈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으로 자랄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얘들아, 학교 가자》 끝자락에는, 책에 사진을 담은 ‘어른(사진작가)’들 짧은 말이 있습니다. 어른들 말을 살피면서, 이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어떤 사진을 어떻게 보여주려 했는가 하는 마음을 돌아봅니다. 먼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학교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해 보려 애썼고요 … 우리는 이 글과 사진들이 그 아이들의 삶을 제대로 표현해 주었기를 바라요(상드린·알랭 모레노).”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한국에는 어떤 고유한 문화가 있고, 한국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한테 어떤 ‘고유한 한국 문화’를 보여주거나 가르친다고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온통 대학입시에만 파묻힌 한국 학교 아닌가 싶어요. 한국사람다움을 배우기 어려운 학교라 할 텐데, 집이나 마을에서도 한국사람다움을 느끼거나 마주하거나 배우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찍는 일은 다른 이들의 눈이 되기 위해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저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프랑세스코 아세르비스).”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내 눈’을 북돋우겠지요. 나 스스로를 바라보고 내 이웃을 살펴보는 눈을 살찌우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내 눈’으로 ‘내 삶’을 얼마나 바라볼 만할까요. 아이들이 바라볼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한국 사회인가요. 사랑스러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 문화인가요. 고속도로만 씽씽 달리려는 한국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바라볼까요. 아파트만 더 높이 새로 짓는 한국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살펴볼까요.


  “사진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저 너머의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거지요(필립 앙드리외).”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조차 제대로 살피기 힘든데, 오늘 이곳을 넘는 꿈나라나 사랑나라는 얼마나 헤아릴까 알쏭달쏭합니다. 꿈이 아닌 직업전선을 생각해야 하고, 사랑이 아닌 현실안주에 파묻혀야 하는 아이들 아닌가 싶어요.


  텔레비전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나요. 인터넷과 손전화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알려주나요. 교과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나요. 문학책과 인문책은 아이들한테 어떤 빛이 되나요. 사진은 또 아이들한테 어떤 삶벗이나 길벗이나 이야기벗이 될 수 있나요.

 

 


  사진을 찍은 어느 한 분은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사실 전 앞으로 제가 어떤 것을 발견할지, 어떤 것을 사진에 담게 될지 알지 못해요(마트 자코브).”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른이지만 어른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을는지 모른다’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모습이 펼쳐질는지, 어떤 이야기가 스며들는지, 두근두근 설레면서 맞이한다는 뜻이에요.


  삶은 기쁨이에요. 날마다 새로운 빛이 드리우는 기쁨이에요. 사진을 찍는 이들은 기쁨을 한 장 담습니다. 삶은 노래예요. 언제나 눈부시게 환한 노래예요. 사진을 찍는 이들은 노래를 두 장 싣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기쁘게 웃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환하게 노래합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내 둘레 사람들은 기쁜 웃음을 나누어 받습니다. 사진을 담는 사이 내 곁 삶벗과 길벗한테 환한 노래 눈부시게 퍼집니다.


  “사진은 달라요. 사진작가는 사람들과 최대한 가까이 있어야 해요 …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사진작가는 사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자신이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있어야 하는 유일한 직업이거든요(그레구아르 코르가노).”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모두 이야기예요. 모양은 다르지만 저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과 풀과 나무가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저마다 푸른 숨결 뿜으며 지구별을 포근히 감싸듯, 글과 그림과 사진은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뜰히 밝힌다고 느껴요.

 


  사진을 찍자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나 집이나 숲이나 목숨들 앞에서 사진작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합니다. 글을 쓸 적에도, 글로 쓰려는 이야기에 나올 사람이나 집이나 숲이나 목숨들 앞에 이녁 모습 그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찍지 못하는 사진이고, 구경꾼일 때에는 쓰지 못하는 글이며, 구경꾼이라면 그리지 못하는 그림입니다. 어깨너머로 구경할 바에야 사진기 들 까닭이 없어요. 귓동냥으로 들으려면 연필 쥘 까닭이 없어요. 호박씨 까듯 흐르는 뒷말이라면 붓을 잡을 까닭이 없어요. 사랑스러운 삶으로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아름다운 삶이라고 느껴 글로 엮습니다. 즐거운 삶으로 함께 누리면서 그림으로 옮깁니다.


  아이들한테 사진을 보여준다 할 적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모습을 찍어서 보여줍니다. 아이들한테 글을 읽힌다 할 적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사랑스레 살아갈’ 모습을 엮어서 읽힙니다. 아이들한테 그림을 내보일 적에는 ‘아이들이 앞으로 즐겁게 누릴’ 모습을 꿈꾸면서 내보입니다.


  “사진을 마구 찍어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카나카 민중학교가 바로 그러했어요. 제가 찍어야 할 사람들이 작가인 저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고, 나아가 제 작업이 진정한 참여의 중거로 남아야 했기 때문이지요(장 프랑수아 마랭).”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읽습니다. 사진은 한 장을 찍어도 되고, 백 장을 찍어도 되는데, 굳이 한 장조차 안 찍어도 됩니다. 사진은 열 장을 찍어도 모자랄 수 있고, 천 장이나 만 장을 찍었는데 모자랄 수 있어요. 적게 찍었기에 모자라지 않고, 많이 찍었기에 쓸 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찍는 사진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 만나느냐 하는 대목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내려다보는 사진이라면? 올려다보는 사진이라면? 스쳐 지나가는 사진이라면? 문득 들여다보는 사진이라면?

  사진을 찍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라도, 어린이와 어른은 누가 더 높거나 낮을 수 없습니다. 서로 같은 자리에 섭니다.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함께 웃고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을 어른이 찍는 사진에서도 서로 같은 자리에 설 때에 참 아름답구나 싶은 사진이 태어납니다. 어른이 어른을 찍는 사진에서도 나란히 어깨동무를 할 적에 비로소 사랑스러운 사진이 샘솟는구나 싶어요.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도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함께 웃고 같이 노래할 적에 환하게 빛나는 눈부신 사진 한 장 얻어요. 어린이한테 사진을 보여주려 하는 어른은, 내 이웃과 동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돌아보도록 돕고픈 따사로운 마음이라고 느낍니다.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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