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15] 고샅길에서
― 두 아이 함께 바라보는 마을

 


  마실을 나가려 할 적에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섭니다. 아이들은 저 앞에서 콩콩 달립니다. 우리 집 앞 고샅길에서 마을 어귀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지만, 아이들은 이 내리막이 익숙합니다. 마을 할매나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 넘어질라 걱정하지만, 아이들은 걱정없이 달립니다. 가끔 이 길에서 털썩 소리 내며 넘어지곤 하지만,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고샅길이 흙길이라면 넘어져도 무릎 까질 일 거의 없지만, 이제 흙길로 된 고샅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운기를 모는 마을 할배로서는 시멘트길이 낫다 여기고, 또 도시로 간 이녁 딸아들이 자가용을 몰고 오니 시멘트길로 닦여야 번듯하다고 여깁니다.


  고샅길이 흙길이었을 적에는 아이들 누구나 작은 돌멩이 주워 흙바닥에 금을 그으며 놀았습니다. 도시에서도 골목길이 아직 흙바닥이었을 적에는 누구라도 조그마한 돌멩이 주워 흙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네모를 그립니다. 작은 동그라미 그리면 구슬치기 놀이를 한다는 뜻이거나 땅따먹기를 한다는 뜻입니다. 큰 동그라미를 그리면 잡기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네모를 그리면 땅밟기놀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이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나 골목과 고샅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바꾸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골목과 고샅이 흙길이면서 자동차 거의 안 다닐 적에는 골목도 고샅도 온통 아이들 차지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놀이를 안 가르쳐 주어도 스스로 놉니다. 아이들은 책에서 배운 적 없고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어도 스스로 놉니다. 흙바닥이면 놀이바닥이고, 흙길은 놀이길입니다.


  시멘트 부은 논밭에서는 아무것도 거둘 수 없습니다. 흙으로 된 논밭일 뿐 아니라, 곱고 고소한 흙으로 이루어진 논밭일 때에 쌀이든 보리이든 감자이든 무이든 배추이든 싱그럽고 알뜰하게 거두어들입니다. 시골 논도랑을 시멘트로 바꾸고 시골 밭둑을 시멘트로 덮더라도, 논바닥과 밭바닥은 언제까지나 흙바닥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시멘트로 덮인 고샅길과 골목길도 흙길로 돌려놓아야겠지요. 앞으로는 이 나라 어른들이 바보스러움을 깨닫든, 이 나라 아이들이 자라 ‘어른들 바보스러움’을 무너뜨리거나 달래면서, 지구별에 아름다운 흙길, 흙터, 흙밭, 흙누리 이루는 사랑을 펼쳐야겠지요.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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