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승천기 책읽기

 


  적잖은 사람들이 ‘욱일승천기’를 보면 ‘욱’ 하고 따지곤 한다. 이런 ‘욱’이 잘못되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1960년대 멧골자락 아이들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낸 어느 미대 교수도 햇살 퍼지는 모습을 ‘욱일승천기’하고 똑같이 담은 적 있어 놀란 적 있는데, 욱 하는 사람도 많으나 욱 하기는커녕 아무것도 못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욱 하는 사람이라도 있기에 이럭저럭 바로잡으려고 힘쓰는 기운이 돌기도 한다.


  그런데, 욱일승천기 한 가지에 욱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욱일승천기를 놓고 왜 욱 하고 따지려 들까. 겉으로 버젓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욱일승천기는 여러모로 눈에 잘 뜨이리라. 그러면, 한국사람들 삶과 말과 넋으로 스며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찌꺼기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국사람 스스로 조금도 바로잡거나 고치거나 다스리려고 하지 못하는 ‘일본 말투’와 ‘일본 한자말’과 ‘일본 번역투’ 같은 바보스러운 말매무새는 어찌하면 좋지? 이런 바보스러운 말매무새를 따지거나 꼬집거나 알려줄 때에 고맙게 여기며 바로잡거나 고치거나 다스리는 작가나 지식인은 몇이나 될까.


  텔레비전 방송이나 이런저런 책에서 ‘그녀’와 ‘미소’ 같은 낱말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찌꺼기 가운데 대표라고 숱하게 나오지만, 막상 이 두 낱말을 안 쓰면서 글을 쓰는 작가나 지식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두가지 낱말만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찌꺼기가 아니다. 한국말 사이사이 스며들거나 파고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찌꺼기 말글이 매우 많다.


  어린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보는 ‘뽀로로 게임’을 살피면, “준비, 시작!”이라고 하는 말이 자주 나온다. “준비, 시작!”은 “요이, 땅!”을 한자말로 옮긴 일본 말투이다. ‘애국조회’와 ‘훈화’는 일본 천황 말씀을 섬기라는 뜻에서 일제강점기에 황민화교육으로 우리 겨레 억누르면서 억지로 시킨 군국주의 제도권교육 찌꺼기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학교에서는 애국조회를 하고 교장 훈화를 한다. “차려, 경례!” 또한 일본말인데,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서 쓰던 일본말이다. ‘국민의례’라 하는 것도 일본 천황 기리는 의례로 나온 것을 고스란히 따를 뿐이다. ‘국민학교’에서 ‘국민’은 일본 천황을 섬기는 백성이 되라는 뜻으로 일본사람이 지은 한자말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데에 무척 오랜 나날이 걸렸다. 그런데, 학교 이름에서는 이런 낱말 덜었으면서 막상 정치꾼들은 언제나 “국민 여러분” 하고 들먹인다. 신문사 이름 가운데에도 ‘국민’을 쓰는 데가 있지 않은가.


  욱일승천기에 욱 하는 일 나쁘지 않다. 욱 하려면 욱 하면 된다. 그리고, 욱 하는 몸짓 하나로 그치지 말고, 우리 둘레에 퍼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찌꺼기’가 무엇인지 하나씩 살필 수 있기를 빈다. 한국 사내들이 군대에 가서 하는 모든 것들이 모조리 일본 제국주의 군대 적부터 이어진 것들인 줄 깨닫기를 빈다. 이러면서 내 말과 넋과 삶에 나도 모르게 파고든 온갖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찌꺼기’를 읽어내어 차근차근 털면서 아름다운 말과 넋과 삶이 되도록 다스릴 수 있기를 빈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13-06-27 13:40   좋아요 0 | URL
마지막 문단에 특히 공감합니다.

숲노래 2013-06-27 18:28   좋아요 0 | URL
우리 삶에 스며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찌꺼기가 대단히 많은데... 다들 이런 데에는 그저 익숙하니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기 일쑤예요. 공사판에서 쓰는 말, 출판계에서 쓰는 말, 모두 일본말로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