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6
박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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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놀이
[시를 말하는 시 29] 박순원, 《그런데 그런데》

 


- 책이름 : 그런데 그런데
- 글 : 박순원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13.1.17.)
- 책값 : 8000원

 


  무엇을 하며 놀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닥 재미난 놀이는 떠오르지 않아요. 이것은 재미있고 저것은 재미없지 않아요. 무슨 놀이가 되든 스스로 즐겁게 하면 다 재미있어요.


  놀면서 이 놀이가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 하고 생각하면 재미가 피어나지 않아요. 마냥 놀면서 가붓한 마음일 때에 가만히 재미가 솔솔 피어납니다.


  손가락 하나를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놀리면서 놀아도 재미있습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방바닥에 드러누워 놀아도 재미있습니다. 살며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서 하늘 훨훨 나는 꿈을 꾸는 놀이도 재미있습니다. 바람에 맞서 달리면서 머리카락 훨훨 날리고 옷자락 펄럭펄럭 춤추도록 할 때에도 재미난 놀이가 됩니다.


.. 나는 왜 채송화가 되지 않고 / 굼벵이가 되지 않고 / 나무늘보가 되지 않고 / 이런 엄청난 결과가 되었나 ..  (나는 한때)


  연필을 쥡니다. 공책에 글씨를 씁니다. 글씨마다 살을 붙여 그림을 이룹니다. 나무를 그립니다. 나뭇가지를 그립니다. 나뭇잎을 그리고, 나뭇잎 사이사이 새 몇 마리 그리고는, 벌이랑 나비를 그립니다. 구름을 그리고 빗방울과 눈송이를 그리며 해를 그립니다. 달도 나란히 그리고 별이랑 무지개도 함께 그립니다. 하나하나 그리면서 어느덧 그림놀이가 됩니다.


  하얀 종이에 꽃을 그리고 풀잎을 그려도 그림놀이입니다. 서로서로 얼굴을 그려 주고, 발가락을 그리면서 그림놀이입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들을 왼팔과 오른팔에 누여 노래를 부릅니다. 하나 둘 셋 넷, 열 스무 노래 부릅니다. 그저 누워서 노래를 부를 뿐이라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부르는 노래는 노래놀이가 돼요. 노래를 부르다가 팔베개 한 팔을 와락 모아서 뒹구르르 구르며 김밥말이놀이를 합니다. 드러누운 채 무릎에 아이를 얹어 하늘로 휘휘 들어올립니다. 한 아이는 무릎에 얹고 한 아이는 팔로 가슴을 받쳐 휘휘 들어올리면 두 아이 모두 까르르 웃으며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엎드리라 해서 발을 잡고 번쩍 들어올리면 새삼스레 놀이가 됩니다. 몇 손자국 못 딛고 펄투덕 주저앉지만, 자꾸자꾸 발을 잡고 들어올려 달라 조릅니다. 그래, 이 아이들 허리를 한손으로 척척 들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아이들은 하늘을 날며 노는 셈입니다.


.. 내가 중학교 삼 학년 때 청주에서 소년체전이 열렸다 우리는 마스게임을 준비했다 연합고사고 나발이고 하루에 세 시간 네 시간 임박해서는 반나절씩 일주일 앞두고는 수업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연습했다 주제는 // 충효였다 맨 끝에 가운데 탑에서 연막탄이 터지면 양 옆에서 커다란 ‘충’, ‘효’ 펼침막이 갑자기 펼쳐지고 ..  (마스게임)


  세 살 작은아이는 국수를 먹을 적에 처음에는 젓가락질로 집으려 하지만 잘 안 됩니다. 젓가락으로 집어 숟가락에 얹어 먹으려고 용을 씁니다. 한참 이렇게 하다가는 숟가락 내려놓고 손바닥에 국수를 얹습니다. 손바닥에 얹은 국수를 덥석 입으로 넣습니다. 나중에는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국수를 집습니다. 밥을 먹는 어린이는 밥놀이를 합니다.


  여섯 살 누나가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왜 보라는 젓가락질을 못 해요?” 하고 묻습니다. “벼리야, 너도 동생처럼 어릴 적에는 젓가락질을 못 하고 저렇게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었어. 그래도 이제 동생이 처음에는 한참 젓가락질을 하잖아. 한참 젓가락질을 하다가 힘드니 손가락으로 먹지. 앞으로는 젓가락질 더 잘 하겠지.”


  가만히 보면, 작은아이 밥상 밑이 꽤 깨끗합니다. 한 달 앞서를 생각하고 한 해 앞서를 돌이켜보면, 작은아이 밥상 밑에 이것저것 떨어진 부스러기 많지만, 아주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큰아이 밥상 밑은 아무것도 안 떨어집니다. 작은아이도 한 살쯤 더 먹으면 밥상 밑에 거의 안 흘리고 말끔하게 밥을 먹겠지요.


.. 내가 군에 있을 때 방실이가 서울시스터즈였을 때 위문공연을 왔었다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을 싣고 쿵짝쿵짝 당신은 멀리멀리 몸도 싣고 꿈도 싣고 내 마음 모두 싣고 나는 그때 군화를 신고 춤을 추던 병사였다 ..  (아! 사루비아 꽃을 든 남자)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놀이로 받아들이면서 자랍니다. 길을 거닐 때에도 그냥 걷지 않고 놀면서 걷습니다. 곧게 걷는 법이란 없습니다. 춤을 추듯 이리저리 걷습니다. 앞으로 먼저 달려가다가 뒤로 돌아옵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새를 보고 나비를 보며 꽃을 봅니다. 꽃마다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맡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어른들은 놀면서 자라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거의 모든 어른들은 길을 거닐 때에 곧게 걷습니다. 이리저리 몸을 흔들거나 춤을 추며 걷지 않아요. 이를테면, 가게에 가는 마실길에 콧노래 부르면서 거니는 어른은 몇 사람쯤 될까요. 가게에 마실을 간다고 생각하며 자전거를 몰며 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하얗게 눈부신 구름을 듬뿍 마시려는 어른은 몇 사람쯤 있을까요.


  아이도 어른도 놀 때에 자랍니다. 아이도 어른도 싱그럽게 놀 때에 싱그럽게 자랍니다. 어른이기에 ‘자람이 멈추’지 않아요. ‘안 자라는 사람’은 없어요. 나이 예순이나 여든에도 자라요. 왜냐하면, 날마다 새로운 하루 맞이하면서 새로운 삶 배우거든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 마주하면서 새로운 사랑 느끼거든요.


  그런데, 누구나 스스로 자랍니다. 남이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놀이는 스스로 찾아내어 즐깁니다. 남들이 이끌어 놀게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놀이가 될 때에 푸르게 자라요.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마음밭에서 사랑씨앗 뿌리면서 곱게 돌보는 삶일 때에 기쁘게 놀면서 해맑게 자랍니다.


..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국민교육 / 헌장을 외우고 육영수 / 여사 추모 글짓기 대회를 하고 /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대책 없이 낳다 보면 / 거지꼴을 못 면한다 표어를 / 짓고 쥐 잡는 날 불조심 강조 / 기간 리본을 가슴에 달고 우리는 /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어른’ 박순원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그런데 그런데》(실천문학사,2013)를 읽습니다. ‘어른’인 박순원 님은 이녁 삶이 얼마나 놀이로 가득할까 궁금합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일이 ‘어른’한테 놀이가 될까요. 술과 노래방을 빼고는 어른들이 누릴 만한 놀이가 없을까요. 술과 노래방 아니고는 ‘어른’들이 무엇을 누린다거나 즐긴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시로 담기란 어려울까요.


  그런데, 그런데, 바로 이런 모습이 오늘날 ‘어른’들 모습일 테지요. 바로 이렇게 놀 줄 모르는 모습이 박순원 님 한 사람 모습이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도시내기 ‘어른’들 모습이겠지요.


.. 사장이 나에게 주사파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나쁘다고 하지 않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일본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해서도 이란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카니스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가끔 공자님이나 예수님 부처님을 직접 만나고 오신 듯, 공자님도 잘 모르셨던 공자님의 진면목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  (멧새 소리)


  오늘날 도시내기 어른들은 아이들과 제대로 놀지 못합니다. 놀이공원에 자가용 끌고 데려가 주어야 노는 줄 잘못 생각합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아이들과 어찌 놀아야 즐거운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놀이란 생각한대서 샘솟지 않으니, 생각한대서 찾아내지 못해요.


  그냥 놀아야지요. 뒹굴며 놀아야지요. 집에서 뒹굴고 마당에서 뒹굴며 밖에서 뒹굽니다. 주차장이면 어떻게 놀이터면 어때요. 옷이 더러워지건 말건, 신 한 짝 어디로 사라지건 말건, 뒹굴며 놀면 놀이예요.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뛰고 달리고 날고 기고 구를 때에 놀이입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도 이마에 땀이 송송 뱁니다. 그저 땅을 박차고 달리면서도 놀이가 됩니다.


  줄넘기 하나 있어도 백 가지 넘는 놀이를 해요. 줄을 붙잡고 기차놀이가 되고, 줄을 바닥에 놓고 뛰어넘으며 놀아요. 줄을 동그랗게 말아, 동그란 안쪽에서 씨름을 할 수 있고, 깨끔발로 줄을 오락가락 뛰어넘으며 놀지요. 줄을 한 사람이 휘휘 돌리면 다른 사람이 동그랗게 둘러서서 저마다 폴짝폴짝 넘으며 놀아요. 줄넘기를 돌돌 말아 수건돌리기처럼 놀 수 있어요. 놀고 싶다면 얼마든지 놀고, 함께 놀고 싶을 때에는 얼마든지 실컷 함께 놀아요.


.. 내가 본 소는 풀만 뜯어 먹는 참 순한 동물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소가 사람 말 알아듣는다고 여간 조심하지 않으셨다 소 듣는 데서 소 팔아먹는다는 소리 하지 마라 소는 고집도 세고 힘도 세다 소가 한번 심술부리면 아무도 못 당한다 ..  (소)


  그러면, 도시에서는 왜 놀이가 사라질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왜 놀이를 잊어버리고, 도시에서 지내는 아이들한테서까지 놀이를 빼앗을까요. 도시는 어떤 곳이기에 어른이고 아이이고 놀이하고 동떨어지도록 내몰까요.


  숲이 없기 때문일까요. 들이 없기 때문일까요. 멧골과 냇물과 도랑이 없기 때문일까요. 타고 오를 나무가 없고, 꺾으며 놀 풀이 없는데다가, 향긋하게 맡을 꽃이 없기 때문일까요. 구름을 볼 수 없도록 높은 건물이 가로막고, 무지개를 찾을 수 없게끔 자동차가 물결치고, 하늘빛 누리지 못하게 온통 지하철에 지하상가에 가로막히기 때문일까요. 아마 이 모두 없기 때문인지 몰라요. 아마 이 모두 도시에 깃들기 너무 어렵기 때문인지 몰라요. 게다가 도시에서 살아가며 개똥벌레며 땅강아지며 다슬기며 잠자리며 쳐다볼 겨를이 없고, 이런 작은 숨결들 도시에서 모조리 쫓겨나요.


  작은 사람이 도시에서 살기 벅차요. 작은 사랑이 도시에서 싹트기 힘들어요. 작은 이야기가 도시에서 피어나기 빠듯해요. 그러니까, 하도 재미없고 따분한 삶터요 삶자락이며 삶빛이다 보니, 이렇게 “그런데, 그런데” 하고 읊으며 재미없는 글을 쓸밖에 없구나 싶어요.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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