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5) 한 치의 1 : 한 치의 흔들림
게다가 더 걱정인 것은 스님의 의지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2005.2.2. 정운현 님 글
“걱정인 것은”은 “걱정이라면”으로 다듬고, “없다는 점(點)이다”는 “없다는 대목이다”로 다듬습니다. “스님의 의지(意志)가”는 “스님 의지가”나 “스님 뜻이”로 손봅니다. “스님이”로 단출하게 손볼 수 있는데, 따로 ‘의지’나 ‘뜻’ 같은 낱말을 안 넣고 “스님이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처럼 적을 때에도 스님이 보여주는 뜻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 한 치 흔들림도 없다
→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
→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같은 말을 흔히 듣습니다. “한 치의 무엇무엇”이라고 하는 말투입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쓰기에 무어라고 꼬집거나 바로잡으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쓴다고 한다면, 첫째, 많이 쓰니 그냥 둘 때가 낫다, 둘째, 많이 쓰는 만큼 말썽거리라 할 만하니 서둘러 고치거나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더라도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쓰려는 마음이라면 됩니다. 사람들이 으레 쓰니까 그냥 쓸 수 있어요. 사람들이 으레 쓰더라도 널리 알려서 바로잡도록 힘쓸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으레 쓰기에 그대로 따른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쓰는 말투는 이러하답니다’ 하고 배우거나 익히거나 살핀 다음 그대로 따라야 아름답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거나 아무것도 안 살피면서 무턱대고 엉터리 말투를 함부로 쓰는 일은 아름답지 않아요.
우리 말글을 바로쓰자고 할 때에는 옳고 그름을 나누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 말글을 바로쓰는 일이란, 우리 말글을 아름답게 쓰는 일입니다. 말과 글을 아름답게 쓰면서 시나브로 생각과 넋을 아름답게 돌봅니다. 생각과 넋을 아름답게 돌보다 보면, 어느새 삶과 사랑 또한 아름답게 보듬을 수 있어요. 곧,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헤아리면서 생각과 넋을 아름답게 돌보고, 말과 글 또한 아름답게 추스르는 셈입니다. 4338.2.4.쇠/4346.6.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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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게다가 더 걱정이라면 스님이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ㄴ. 게다가 스님이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아 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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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571) 한 치의 2 : 한 치의 양보
그야말로 일진일퇴,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서현아 옮김-야와라 (24)》(학산문화사,2000) 113쪽
‘일진일퇴(一進一退)’는 ‘(서로) 물러서지 않고’나 ‘밀고 당기며’라든지 ‘물고 물리며’ 같은 말로 다듬으면 한결 쉽고 부드러워요. 뜻을 알기에도 좋고요.
일진일퇴,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 물고 물리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 밀고 당기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 물러서지 않고, 한 치도 밀리지 않습니다
…
토씨 ‘-의’를 덜고 ‘-도’를 붙입니다. 이러면서 뒷말을 ‘양보하지’처럼 적어 주면 됩니다. 한편, “조금도 물러서지 않습니다”나 “터럭만큼도 밀리지 않습니다”로 적어 볼 수 있습니다. 토씨 ‘-의’만 덜고 “한 치 양보도 없습니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4.11.불/4346.6.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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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밀고 당기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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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83) 한 치의 3 : 한 치의 땅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라는 명령으로 한국군도 고지 쟁탈전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죽어 갔습니다
《이임하-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철수와영희,2013) 70쪽
어떤 일을 시킬 때에 한자말로 ‘명령(命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한자말은 군대나 회사나 조직 같은 데에서 으레 씁니다. 집에서는 일을 시키거나 심부름을 시킨다고 말하지요. 시키니까 ‘시킨다’고 해요.
군대에서는 ‘고지(高地) 쟁탈전(爭奪戰)’ 같은 말도 씁니다. 그러나, ‘고지’란 ‘높은 곳’을 가리키고, ‘쟁탈전’은 ‘싸움’을 뜻해요. 높은 곳에 있는 땅을 서로 빼앗으려고 싸우는 일이 ‘고지 쟁탈전’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을 짤막하게 한국말로 가리키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쉽고 단출한 새 한국말을 빚을 수 있을까요. 맨 먼저 ‘고지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땅따먹기’ 놀이를 합니다. 곧, ‘땅뺏기싸움’이라 할 수도 있어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라는 명령으로
→ 한 치라도 땅을 더 차지하라고 내몰아서
→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라고 시켰기에
→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라고 시켜서
…
생각을 하면서 말을 가다듬습니다. 생각을 기울이면서 말을 빛냅니다. 말차례만 살짝 바꾸어도 ‘한 치의 땅이라도’가 아닌 ‘땅을 한 치라도’가 되어 토씨 ‘-의’는 저절로 떨어집니다. ‘고지 쟁탈전’ 같은 대목도 ‘고지 싸움’이라고 한 군데 손볼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씩 가다듬고 추스르면서 말이 빛납니다. 언제나 차근차근 돌아보고 살펴서 하나하나 다듬고 보듬으면서 글이 거듭납니다. 4346.6.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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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라고 내몬 탓에, 한국군도 고지 싸움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죽어 갔습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