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골목

 


  헌책방이 모여 헌책방골목이 됩니다. 찻집이 모이면 찻집골목 되겠지요. 옷집이 모이면 옷집골목 될 테고, 술집이 늘어서면 술집골목 됩니다. 여관이 많아 여관골목이요, 칼국수집 옹기종기 모여 칼국수골목입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듯 모여 골목동네 이룹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햇살을 서로 조금씩 나누어 받습니다. 골목을 이룬 가게는 조그마한 이야기를 나란히 주고받습니다. 어느 한 가게 때문에 골목이 알려지지 않고, 어느 한 가게라도 처지거나 힘들지 않도록 서로 손을 맞잡습니다. 너와 네가 함께 있어 골목이요, 우리 집과 너희 집이 사이좋게 동무가 되기에 골목동네입니다.


  새책방만 모여 이루어진 골목이 있을까요. 서울에 한때 도매상골목 있었지만, 이제 도매상골목은 옛모습이 거의 안 남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새책방이 어깨동무하며 이루어진 책방골목’은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다른 어느 나라에서나 ‘헌책방이 어깨동무하며 이우러진 책방골목’은 한두 군데쯤 어김없이 있습니다. 수십 수백 군데가 모인대서 헌책방골목 되지는 않아요. 열 군데 모여서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하고, 너덧 곳이 모여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하며, 다문 두 군데 헌책방이 나란히 마주보면서 헌책방골목 이루기도 합니다.


  참 용하지요. 헌책방은 다섯 평짜리 조그마한 가게 두 군데만 나란히 있어도 ‘헌책방골목’ 또는 ‘책방골목’ 소리를 들어요. 이와 달리 새책방은 두 군데 나란히 모이기도 힘들 뿐더러, 커다란 새책방이 두어 곳 모였대서 ‘책방골목’이나 ‘새책방골목’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아요.


  가만히 따지면, 아파트 수백 곳 모인 데를 ‘아파트골목’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파트 수백 곳 모인 데에는 골목이 없으니 골목이 안 되어요. 아마, 커다란 새책방 두어 곳 모인다 하더라도 이 둘레에 골목이 아닌 널따란 찻길만 놓일 테네 ‘골목’이 못 되지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달동네 꽃동네 새동네 같은 골목동네는 나즈막한 지붕 이어진 작은 사람들 살림집 고만고만 맞닿습니다. 조그마한 헌책방들 서로 어깨를 기대어 이루어진 헌책방골목은 작은 헌책방지기 작은 책사랑 하나둘 모여서 아기자기하고 책꽃 피웁니다. 한국에 부산 보수동 꼭 한 군데 ‘헌책방골목’ 있어 책빛이 환하고 책노래 맑게 흐릅니다.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