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밥 (도서관일기 2013.5.2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딸기를 가게에서 사다 먹기만 하는 사람이 되면, 딸기철이 언제인 지 생각하지 못한다. 더구나, 딸기풀이나 딸기꽃은 아예 마음속에 깃들지 못한다.


  쌀을 가게에서 사다 먹기만 하는 사람이 될 때에도 이와 비슷하다. 벼에서 겨를 벗길 때에 쌀이고, 쌀이란 벼라는 풀포기 열매이며, 벼 또한 씨앗으로 심어서 자라고 난 뒤에 열매를 얻어 사람들이 먹는 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차츰 늘어난다. 볍씨를 뿌리고 길러서 모를 내고, 모를 심고 돌보며 피를 뽑다가 가을에 낫질로 베고는 나락을 말려, 볏짚을 건사해서 쓰던 삶을 읽지 못할 때에, 쌀밥을 쌀밥대로 제대로 먹는다고 할 만할까.


  요즈음 사람들은 ‘공정무역’을 으레 말한다. 커피나 초콜릿이나 이런저런 물건들 올바르게 사고팔며 제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한국사람이 날마다 먹는 쌀과 김치는 어떡해야 할까. 쌀과 김치(푸성귀) 또한 공정무역 되도록 할 노릇 아닐까. 게다가, 공정무역을 말하는 이들은 커피농장과 초콜릿농장이 어떻게 굴러가는가를 알려 애쓰고 밝히려 힘쓴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쌀 한 톨 어떻게 얻는지를 쌀밥 먹는 사람들 누구나 몸으로 겪거나 느끼려 해야지 싶다.


  오이, 토마토, 능금, 감, 배추, 양파, 마늘, 포도, 복숭아, …… 들은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는다. 공장에서 철없이 척척 만들어 내지 못한다. 맨 먼저 씨앗이고, 차츰 자라 줄기와 잎이 돋으며, 이윽고 꽃이 핀 뒤, 꽃이 지고 나서 한참 무르익어 열매가 된다. 나무 한 그루도 맨 처음에는 씨앗이었고, 모든 열매는 새로 태어날 푸나무 숨결이 될 씨앗이다.


  도서관 둘레 풀밭에서 들딸기 몇 통 따서 아이들한테 먹이며 생각한다. 아이들한테는 여름날 들딸기가 아주 좋다. 책읽기보다, 다른 어느 놀이보다, 여름철에는 들딸기 따먹는 삶이 가장 신나는 놀이요 책읽기 되며 삶이 된다. 그러고 보면,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은 ‘숲에서 스스로 먹고사는 길’을 언니나 형이나 누나한테서 배우며 동생한테 가르쳤구나 싶다. 아이들 놀이란, 삶을 짓는 길을 온몸에 알뜰히 익히는 몸짓이다. 아이들 삶이란, 언제나 놀이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동안 시나브로 무르익는 사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밥을 먹는다. 몸을 살찌우는 밥을 먹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밥을 짓는다. 마음을 살찌우는 밥인 이야기를 짓는다. 책이란 바로 이야기밥이다. 아니, 책은 이야기밥 담은 그릇이고, 책에 깃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바로 이야기밥이라고 해야겠지. 이리하여 책이 새책이든 헌책이든 대수롭지 않다. 대수로운 대목은 바로 이야기밥인 ‘책 알맹이’나 ‘책 줄거리’이다. 밥그릇이 오래되었대서 대수로울 까닭 없고, 새로 장만한 밥그릇이라서 대단할 까닭 없다. 사람들은 밥그릇 아닌 밥을 먹는다. 사람들은 밥을 밥그릇에 담아서 먹을 뿐이다. 곧, 밥그릇을 예쁘게 꾸미거나 손질해서 쓰면 한결 즐겁지만, 밥그릇에만 마음을 빼앗기면 정작 밥을 제대로 맛나게 누리지 못한다. 밥을 먹는 사람이듯,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다. 책에 깃든 알맹이와 줄거리를 맞아들여 삶을 짓는 사랑과 꿈을 북돋우는 사람이 될 때에, 비로소 책삶 이루는 숨결이라고 느낀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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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6-03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딸기가 참 곱군요.
산딸기가 아니라 들딸기라고 해야 하나요? 태그에 그리 붙이셨네요.

둘이 참, 맛나게 먹네... ^^

숲노래 2013-06-04 07:05   좋아요 0 | URL
딸기만 먹어도 배부르답니다~

2013-06-12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6-12 09:57   좋아요 0 | URL
아, 어제 댓글은 못 봤어요 ^^;;
쓸 글을 다 쓰고서 댓글을 읽는 터라... @.@

아무튼!
오오... 고맙습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