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6.1.
 : 별밤을 달리는

 


- 무논 개구리 노랫소리 가득 퍼지는 밤길을 달린다. 옆지기가 문득 고기를 먹고 싶다 말하기에, 그러면 면소재지에 한번 다녀오겠다 말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밤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여덟 시가 지나가는 시골마을에서는 깜깜한 이맘때는 밤이다. 하루를 서너 시쯤 열고 일고여덟 시면 어느 집이나 하루를 닫으니, 도시와는 사뭇 다른 시간 흐름이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자전거 타자.” 하는 말에 눈빛이 달라지며 바지런히 마당으로 내려선다. 큰아이는 샛자전거를 타고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 시골마을 밤길 자전거를 탄다.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개구리 노랫소리 아주 우렁차다.

 

- 자전거 등불을 한 번 켜서 앞에 무엇이 있나 멀리까지 살피고는 이내 끈다. 깜깜한 밤길을 깜깜한 채 달린다. 듬성듬성 등불 있지만 시골길은 아주 고요하면서 깜깜하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골길이니, 온통 개구리 소리일 뿐, 사람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없다. 이 좋은 소리를, 다른 덧없는 소리는 고요하고, 숲이 들려주는 소리는 우렁찬, 이렇게 예쁜 하루를 누리자고 시골에 와서 살아간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워낙 크니, 내 오래된 자전거 삐걱거리는 소리가 모두 잠긴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부르는 소리도 잘 안 들린다.

 

- 사람들이 밤에 개구리 노랫소리를 한참 듣는다면 삶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느낀다. 자동차도 손전화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아닌, 이런 기계 저런 문명도 아닌, 가장 홀가분하면서 고즈넉하고 너그러운 밤노래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면 생각이 거듭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전기로 밝히는 등불 아닌 달과 별 스스로 밝히는 고운 빛을 누리면서 밤개구리와 밤새가 노래하는 기운을 받아들이면 누구라도 마음이 따사롭게 새로울 수 있으리라 느낀다.

 

- 면소재지 가게에는 세겹살만 있다. 푸줏간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아이들 과자 몇 점 집는다. 집으로 돌아간다. 큰아이는 면소재지 오는 동안 “바람에 손이 차가워졌어.” 하고 말한다. 밤바람은 좀 차갑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곧 곯아떨어진다. 아까와 같이 개구리 노랫소리 한복판으로 접어든다. 면소재지에 있을 적에도 개구리 노랫소리 드문드문 듣지만, 참말 면소재지에서는 밤노래 잘 안 들린다. 아무리 시골이라 하더라도, 면소재지와 읍내는 도시하고 같은 얼거리로구나 싶다. 여느 도시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가게나 밤늦도록 환한 길거리는 없는 면소재지와 읍내이지만, 밤노래를 살뜰히 들을 수 없으면 제대로 시골이라 일컬을 수 없다.

 

- 돌아오는 길에는 맞바람 분다.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 낮에는 남녘에서 북녘으로 부는 여름바람이요, 밤에는 북녘에서 남녘으로 부는 여름바람이지. 낮에는 바다인 남녘에서 뭍인 북녘으로 가고, 밤에는 뭍인 북녘에서 바다인 남녘으로 가지. 어릴 적 자연 수업 때 배운 이야기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 별밤을 달린다. 이제 별이 좀 보인다. 요 며칠 낮에도 구름 잔뜩 끼어 맑고 파란 하늘 구경하지 못했는데, 이제 하늘에 구름이 걷힌다. 자전거를 천천히 세운다. 큰아이한테 하늘을 보라고 말한다. “벼리야, 하늘을 봐. 오늘은 별 많이 보인다. 별빛이 밝지?” “별이 가만히 나를 따라와.” 그러네. 자전거를 달리거나 두 다리로 걸으며 하늘을 보면, 달도 별도 꼭 우리를 따라오는 듯 보이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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