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사진 하나 말 하나
016. 헌책방 지키는 개 - 헌책방 알파서점 2013.5.30.
개 한 마리 헌책방을 지킵니다. 헌책방지기 앉아서 쉬거나 손님을 기다리거나 책을 읽는 걸상에 척 올라앉아서 헌책방을 지킵니다. 때로는 헌책방 문간에 앉아서 헌책방골목을 바라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보드라운 바람을 마시며, 골목 곳곳에 피고 지는 풀과 꽃을 쳐다봅니다.
헌책방지기가 털을 고르거나 쓰다듬으면 좋아라 꼬리를 칩니다. 헌책방지기가 아침에 가게 문 열 적에 함께 나오고, 헌책방지기가 저녁에 가게 문 닫을 적에 함께 들어갑니다. 하루 내내 나란히 움직입니다. 밥을 먹을 적에도, 일을 할 적에도, 손님을 마주할 적에도, 개 한 마리 헌책방 둘레에서 살살 돌아다니면서 골목을 지킵니다.
따순 손길을 받으면서 헌책방을 지킵니다. 따순 손길을 누리면서 헌책방지기와 한삶을 누립니다. 개 한 마리는 책짐을 나르지 못하고, 책값을 셈하지 못하며, 가게 쇠문을 올리거나 내리지 못합니다. 개 한 마리는 책손 앞에서 맑은 눈망울 지으며 설 수 있고, 개 한 마리는 옆집에 들르고 이웃 할매한테 인사할 수 있으며, 골목 아이들과 얼크러질 수 있습니다.
책이 흐릅니다. 삶이 흐릅니다. 이야기가 흐릅니다. 생각이 흐릅니다. 서로서로 살가운 마음 모여 사랑이 흐릅니다. 헌책방을 지키는 개는 조용히 하루를 보냅니다. 4346.6.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