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쓰기
― 가까이에 있는 사진벗

 


  사진기가 있으면 어떠한 모습이든 스스로 바라는 대로 찍는다. 찍을 수 없는 모습은 없다고 느낀다. 찍을 마음이 있기에 찍는 사진이요, 찍을 마음이 없기에 찍지 못하는 사진이라고 느낀다.


  구름을 찍고 싶으면 스스로 구름을 찍으면 된다. 손수 구름을 찍으면서 사진기를 어떻게 다룰 때에 ‘내가 바라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태어나는가를 차근차근 익히면 된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낮이나 밤이나, 모델이나 마을 아재나, 어느 모습이 되든 스스로 가장 좋아하면서 아끼고 누리는 삶을 사진으로 담으면 된다.


  무엇보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나한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모습부터 찍으면 된다. 이를테면, 몸이 아파서 드러누운 채 꼼짝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창문을 찍을 수 있고 방문을 찍을 수 있다. 창문으로 스미는 빛을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에 따라 가만히 살피면서 다 다른 빛살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저 방문 열고 누가 들어오는가를 기다리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햇볕이 방으로 스며드는 무늬를 찬찬히 살피면서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물잔을 찍거나 밥그릇을 찍을 수 있다. 밥을 다 비운 밥그릇을 찍을 수 있고, 밥그릇에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얹은 다음 찍을 수 있다.


  다른 사람 꽁무니를 좇으면서 사진을 배우기도 한다지. 그러나, 다른 사람 꽁무니를 좇을 때에는 그저 꽁무니 좇기에서 그친다. 흉내나 시늉은 배움이라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흉내는 흉내이고 시늉은 시늉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투를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저희 말을 익힌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하고 똑같이 말하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읊는 말마디를 아이들 깜냥껏 요리 엮고 저리 엮으면서 새말을 일군다. 이리하여,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 가운데 깜짝깜짝 놀랄 만한 새말을 으레 듣곤 한다.


  누군가 어떤 모습을 찍을 때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면, ‘어라, 저런 데에서 저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겠지. ‘이야, 이런 자리에서도 이렇게 삶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네.’ 하고 느낄 수도 있다. 곧, 다른 사람 사진을 바라볼 적에는 ‘다른 사람이 사진을 즐기는 삶’을 바라본다. ‘사진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바라본다고 하겠다. 사진을 아끼고 좋아하며 즐기는 숨결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얼마나 아끼고 내 사진을 얼마나 좋아하며 내 사랑을 얼마나 예쁜 이야기로 빚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본다.


  사진을 찍자면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진벗부터 찾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내 곁에서 나하고 사진을 놓고 오순도순 즐거이 이야기꽃 피울 만한 벗님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다섯 살 어린이라 하든, 내 옆지기라 하든 모두 좋다. 내가 좋아하며 일구는 삶을 헤아리면서 찍은 사진을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한테 보여주면서 ‘어때? 어떤 이야기 담긴 사진 같아?’ 하고 묻는다. 서로 꾸미지 않고 덧바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면서 ‘내 사진’을 하나하나 일군다.


  꼭 사진 전문가라든지 사진학과 교수라든지 사진 평론가한테 보여주어야 하지 않다고 본다. 내 곁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여주면서 가장 수수한 느낌을 나눌 때에 내 사진이 발돋움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작가’이든 ‘즐김이’이든, 사진은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 어떤 이야기인가를 보여주는 빛줄기이니까.


  가까이에 있는 사진벗을 사진으로 찍자. 사진벗한테 내 사진을 보여주자. 서로 즐겁게 생각을 주고받자.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듣고,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작품이 아닌 삶을 씨앗 한 톨 심는 마음가짐 되어 사진기를 손에 쥐자. 4346.5.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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