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5.25.
 : 바다내음 마시기

 


- 오월 이십오일 한낮,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고, 대문을 연 다음, 마을길에 내다 놓으니,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까르르 웃으며 좋아한다. 큰아이는 동생더러 “아직 안 돼. 기다려. 아버지가 밖에다 내놓은 다음 타.” 하고 말한다. 햇볕 따사롭게 내리쬐는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일하기에는 후끈후끈 더울 테고, 자전거 타기에는 꼭 알맞춤하게 좋다.

 

- 시골마을에서는 모두 봄일로 바쁘다. 들판마다 할매와 할배가 푸성귀를 뜯거나 마늘을 뽑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풀을 벤다. 다른 시골에서도 고흥처럼 할매와 할배가 들일을 하며 봄날 보내겠지. 어느 시골에서나 젊은이는 없겠지.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수레를 한손으로 붙잡고 바깥을 내다본다. 얼마 앞서까지 수레에 등을 기대고 앉던 작은아이인데, 이제 수레를 한손으로 잡고는 바깥을 두리번두리번 바라보기를 즐긴다.

 

- 면소재지에 들러 아이들 과자 두 점 장만한다. 빵도 한 봉지 장만한다. 오늘은 발포 바닷가로 가 볼 생각이다. 면소재지 벗어나 당곤마을 옆을 지난다. 오르막 하나를 지난 뒤 천천히 새 오르막을 지나며 화덕마을 앞을 지난다. 오늘은 맞바람 맞으며 이 길 지나가는데 제법 잘 나간다. 이제 고흥에서 세 해째 자전거를 달리면서, 고흥 길자락에 다리가 익숙해지며 새 힘살 붙었을까. 아이들은 나날이 몸무게 늘어나는데다가, 큰아이 타는 샛자전거를 붙이기까지 했는데, 지난해에 이 길 달릴 때보다 한결 가볍게 오르막을 넘는다.

 

- 발포 포구와 바닷가로 가는 길 나뉘는 세거리에 이른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오늘 어디로 가는지 알아챈다. “아, 바다로 가는구나. 아이, 좋아라.” 바다내음이 난다. 짠 기운 머금은 바람이 분다. 자전거를 늦추어 천천히 발포 바닷가로 들어선다. 수돗가에 먼저 간다. 물이 나오는지 살핀다. 나온다. 좋다. 작은아이는 잠들었다. 자전거를 후박나무와 소나무 그늘 드리운 곳에 세운다. 작은아이 안전끈을 끌른 뒤 담요를 덮는다. 큰아이하고 바닷가 걸상에 앉아서 바다바라기를 한다. 오직 우리 세 사람 있는 바다는 호젓하면서 시원하고 고즈넉하다.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바다 기운을 마신다. 공책을 꺼낸다. 바다가 우리한테 나누어 주는 이야기를 몇 마디 적는다.


 물결은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바람은 손전화를 끄게 하며
 햇살은 사진기를 내려놓게 한다.


- 자동차 끌고 바닷가로 오는 사람들 있다. 우리끼리 즐기는 바다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동차 한 대 섰다 가고, 두 대 섰다 간다. 석 대와 넉 대째 섰다 간다. 모두 살짝 돌아보고는 간다. 이곳에 자전거 타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까.

 

-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작은아이도 함께 과자를 먹는다. 큰아이가 “나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가고 싶으면 스스로 가면 돼. 신 벗고 가.” 큰아이가 신을 벗는다. 천천히 바다로 들어간다. 모래밭에서 뒹굴며 모래를 만진다. 모래로 탑을 쌓고 구멍을 판다. 이윽고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모래밭놀이 하고프다는 얼굴이다. 그래, 너도 신 벗고 들어가면 되지.

 

- 한 시간 즈음 논 다음 아이들 손발 씻긴다.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자동차를 몰고 큰식구 바닷가에 놀러온다. 그리고, 자전거 짐받이에 아이 태운 아주머니 한 분 들어온다. 뒤따라 혼자 자전거 달리는 아이 하나 들어온다. 아, 이곳에 자동차 몰고 찾아오는 사람만 있지 않구나. 자전거로 바닷가 찾아오는 분이 있네. 아름답다. 우리 식구도 아름답고, 저 아주머니 식구도 아름답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안 분다. 발포 바닷가 올 적에는 맞바람이더니, 돌아가는 길에는 바람이 없구나. 바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나쁘지 않다. 다만, 쳇 쳇 하는 소리를 실쭉샐쭉 뱉는다. 이제 오롯이 태평양바람 뭍으로 올라가는 여름이 코앞이로구나.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