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그릇

 


  어제는 ‘헌책방 사진’ 마흔 점 남짓 거저로 어느 매체에 보내 주었다. 오늘은 ‘헌책방 사진’ 거저로 쓰고 싶다는 사람한테,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어제 내 사진을 거저로 받은 매체는 씩씩하게 아름다운 길을 걸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엮는 작은 누리신문이다. 오늘 내가 딱 잘라서 끊으며 내 사진 거저로 쓰려고 하면 보낼 수 없다고 한 사람은 ‘이름있고 돈있으며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낼 ‘이름있는 미술평론가’이다.


  나로서는 사람그릇을 헤아릴 수밖에 없다. 사진이나 글을 거저로 보내는 일은 참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나한테 다가오는 몸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뭇 다를밖에 없다. 사진이나 글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하는데, 나한테 찾아온 그네들 살림살이가 어떠한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고서, 내가 어찌 내 글삯과 사진삯을 바랄 수 있겠는가.


  더 헤아리면, 글삯과 사진삯 제대로 치르려고 하는 사람이나 모임일수록 외려 돈을 잘 벌고 사랑도 널리 받는다. 글삯과 사진삯 제대로 치르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나 모임일수록 언제나 돈에 쪼들리면서 사랑도 잘 못 받는구나 싶다.


  나는 생각한다. 글삯이든 사진삯이든 단돈 1만 원이라도 치르려고 생각하면서 힘쓰는 사람이나 모임은 참말 글삯이든 사진삯이든 1만 원을 치르면서 책을 내거나 신문을 내거나 잡지를 낸다. 글삯이든 사진삯이든 적어도 10만 원씩 치르면서 책을 내거나 신문을 내거나 잡지를 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나 모임은, 참말 작가들한테 다문 10만 원씩 내어줄 만큼 돈을 벌면서 책도 신문도 잡지도 내놓는다.


  돈이 많은 큰회사나 문화재단이나 관공서이기에 글삯과 사진삯을 넉넉히 챙겨 주지는 않는다. 돈이 많으면서도 생각이 얕아 돈 한 푼 안 챙겨 주려는 기관과 학교도 꽤 많다. 그러니까, 언제나 그릇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릇이 큰 사람은 그릇이 큰 글과 사진을 얻어, 그릇이 큰 책과 신문과 잡지를 빚는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그릇이 작은 글과 사진을 조물딱거리면서, 그릇이 작은 책과 신문과 잡지로 돈장사 하는 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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