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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ㅣ 나의 학급문고 2
채인선 지음, 김동성 그림 / 재미마주 / 1998년 6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65
찻길에서는 못 타는 자전거
―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
채인선 글,김동성 그림
재미마주 펴냄,1998.6.15./7000원
자전거를 타고 달리려면, 내 다리를 바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자전거 발판을 구르다가 멈추면 어느 만큼 스르르 바퀴가 돌기는 하지만, 이내 느려지고, 조금 뒤에 자전거가 섭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내내 다리를 움직이고 몸을 써야 해요.
한 시간을 걸어 5킬로미터를 간다면, 자전거로 한 시간 달릴 때에 20킬로미터쯤 갈 수 있습니다. 네 시간을 걸어 20킬로미터를 간다면, 자전거로 네 시간 달릴 때에 80킬로미터쯤 갈 수 있어요. 걸음이 빨라 한 시간에 7킬로미터쯤 갈 수 있으면, 자전거 발판도 더 힘껏 밟아 한 시간에 30킬로미터쯤 갈 만하고, 네 시간 씩씩하게 걸어 28킬로미터쯤 가는 사람이라면, 네 시간 다부지게 자전거로 달려 120킬로미터쯤 갈 만합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 어떠한가요. 자동차하고 견주면 너무 느린가요? 그러면,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자동차를 달리는 빠르기는 얼마쯤 될까요. 얼마쯤 될 듯한지 한번 생각해 봐요. 건널목 신호에 걸리고, 밀리는 자동차에 막히는 시간을 헤아려 봐요.
통계로 나온 숫자를 살피면, 서울 시내 택시 평균속도가 30킬로미터를 살짝 넘는다고 해요. 이나마 밤에 달리는 택시를 헤아리기에 30킬로미터쯤 나온다고 해요. 여느 자가용은 서울 시내에서 평균 15킬로미터가 안 나온다고 해요. 곧,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 사람조차도 서울 시내에서는 자가용보다 훨씬 빨리 달린다는 뜻이고, 자전거를 잘 달리는 사람이라면 서울 시내에서는 택시하고 엇비슷하거나 택시보다 빠를 수 있다는 뜻이에요.
.. 놀이터에 가려고 나오는데 삼촌이 뒤따라 나오며 물었어요. “선미, 자전거 탈 줄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럼 내가 자전거 태워 줄까? 나랑 같이 나가 볼래?” .. (7쪽)
자동차는 나날이 늘어납니다. 한 번 늘어난 자동차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새 자동차 꾸준히 만들고,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새로 나오는 자동차를 꾸준하게 장만합니다. 도시는 찻길이 자꾸자꾸 더 막히고, 자동차는 시내에서 더 느리게 달릴밖에 없습니다. 이리하여, 자동차 물결이 숨통이 트도록 하려고 찻길을 새로 놓습니다. 찻길을 새로 놓으려고 가난한 골목집을 밀어냅니다. 아파트를 밀어 찻길을 넓히지 않아요. 골목동네 골목집을 밀어 찻길을 늘리지요. 시골에서는 논과 밭과 숲과 멧골을 아무렇게나 척척 잘라 새 찻길을 늘려요.
그렇지만, 찻길 늘리는 빠르기보다 자동차 늘어나는 빠르기가 훨씬 높아요. 찻길을 늘리고 또 늘려도 자동차 물결을 버티지 못합니다. 찻길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 하더라도 서울 시내뿐 아니라, 부산과 대구와 인천과 대전과 광주 시내에서조차 자동차는 제대로 달리지 못해요. 자동차 계기판에 200이나 220까지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도 이렇게 달릴 일이 없어요.
곰곰이 따질 노릇이에요. 도시 한복판뿐 아니라 도시 언저리에서도 자동차는 30킬로미터로 꾸준히 달리기 힘들다면 자동차를 왜 타야 할까요. 비싼 값을 치르고, 비싼 보험삯과 기름값 치르면서 자동차 달려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자동차 아닌 전차가 다닐 길을 놓을 때에 훨씬 낫지 않을까요. 아니, 누구나 자전거로 달리면 서로서로 즐겁지 않을까요.
자동차는 장애인이 타도록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이 타는 자전거도 있어요. 다리가 없어도 손으로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 있고, 다리를 쓸 수 있으면 누워서 달리는 자전거 있어요. 누운 채 손으로 바퀴를 굴리는 자전거도 있지요. 전기를 먹는 자전거도 있습니다.
.. 삼촌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어요. “예전에는 여기가 다 논밭이었어. 개울도 있었고, 물이 참 맑고 깨끗했지.” “개울이 있었다고?” “그럼. 저기 멀리 큰 산 보이지? 그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었어.” .. (11쪽)
사람들 누구나 꼭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사람들 누구나 자가용 굴리려고 하는 오늘날 되다 보니, 자가용 구를 찻길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고, 찻길이 도시와 시골을 온통 둘러싸다 보니,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한국에서는 숲이 제대로 깃들지 못해요. 도시에도 숲이 없고, 시골에도 숲이 없어요. 도시사람도 숲내음 마시기 힘들고, 시골사람도 숲내음 누리기 힘들어요.
채인선 님 글과 김동성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재미마주,199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서울 어느 ‘변두리’라 할는지 ‘도시 한복판 가운데 하나’라 할는지,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시냇물 흐르는 논밭 있었다는 곳 이야기를 ‘자전거 여행’을 곁들여 들려주는 목소리로 읽으며 찬찬히 헤아립니다.
왜 서울은 논밭을 밀어 도시로 바꾸어야 했을까요. 왜 서울은 논밭 그대로 두는 도시로 있지 못할까요. 왜 서울사람은 자동차 넘치는 도시를 바랄까요. 왜 서울사람은 자동차 아닌 사람들이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지나갈 넉넉하고 조용하며 사랑스러운 마을로 나아가지 못할까요.
.. “가재, 처음 보니?” “책에서는 많이 봤어.” .. (24쪽)
책에서만 만날 가재가 아닙니다. 책으로 배울 들꽃이나 나무가 아닙니다. 책으로 생각하는 전통문화나 전통예술이 아니에요. 한가위나 설 같은 명절과 얽힌 놀이를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지식책으로 읽으면 덧없어요. 명절놀이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누려야지요. 전래놀이가 되든 골목놀이가 되든, 아이들 누구나 마음껏 뛰놀면서 물려주고 물려받을 놀이예요. 아니, 놀이는 물려주고 물려받는다기보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길 때에 놀이예요.
고무줄놀이를 굳이 물려줄 까닭 없어요. 고무줄놀이 재미나면 한 시간이나 십 분만에 곧바로 배워서 함께 즐깁니다. 구슬놀이나 흙놀이나 땅금놀이나 온갖 놀이 신나면, 십 분은커녕 일 분만에 놀이를 익혀 다 같이 즐겨요.
함께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이에요. 서로 돕고 서로 아끼면서 크는 아이들이에요. 까르르 뛰놀면서 골목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와하하 뒹굴면서 마을을 마음으로 껴안아요. 두 다리 있으면 개구지게 뛰고 달리면서 이 땅을 넓고 깊게 헤아립니다. 두 다리로 달리고, 때로는 자전거로 달리면서, 내 마을과 동무들 살아가는 이웃한 마을 나란히 살핍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마을 좋아하고, 동무들 살아가는 저 마을 좋아해요.
.. “삼촌, 개울이 있던 자리가 바로 여기야?” “그럴 거야.” “바로 이 도로 밑에?” “…….” “햇살도 없고 가재도 안 살고 버드나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맞아. 아무것도 없어.” .. (38∼39쪽)
찻길에서는 탈 수 없는 자전거입니다. 찻길에서는 놀 수 없는 아이들이에요. 찻길에서는 자동차 아니면 달리기 어렵습니다. 찻길에서는 아이나 어른이나 느긋하게 못 놀고 한갓지게 못 쉬어요.
찻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삶을 빼앗깁니다. 찻길을 늘리면 늘릴수록 어른들도 삶을 잃어요. 빈터를 빼앗기고 놀이터를 빼앗기는 아이들은 학원으로 쫓겨나거나 인터넷과 손전화에 빠져듭니다. 마을쉼터 없고 정자나무 사라진 어른들은 술집에 찻집에 노래방에 옷집에 젖어들지만, 정작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누리는 삶은 사라져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자전거 짐받이에 앉히고 다닐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스스로 힘차게 자전거 발판을 구를 수 있어야 해요.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은 교사들 자가용 대는 땅이 되면 안 돼요. 학교 교사부터 자가용 아닌 자전거로 오가야 옳아요. 아이들도 학교에 자전거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해요.
회사원도 공무원도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타야 맞아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군수도 ‘관용 자가용’ 아닌 ‘관용 자전거’를 타면서 이웃을 마주하고 서민(시민, 군민)과 만나야 해요. 자가용을 타면 서민이라 할 국민이든 백성이든 마주할 길 없어요. 회사일을 하든 행정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려면, 자가용에서 내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지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쐬고 햇살을 마시며 살가운 이웃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섞을 수 있어야 해요. 찻길에는 정치도 문화도 교육도 행정도 민주도 평화도 자유도 평등도 없어요. 골목과 마을과 숲과 시골과 들과 멧골에 비로소 모든 삶과 꿈과 사랑이 있어요. 4346.5.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