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675) 믹스견(Mix犬)

 

순심이는 믹스견이에요. 흔히 똥개라고 하지요
《이효리-가까이》(북하우스,2012) 190쪽

 

  ‘믹스견’이라는 낱말을 처음 마주하면서 뭔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똥개’라고 하는 낱말을 잇달아 들으면서 아하 하고 깨닫습니다. 그렇군요. 국어사전에는 안 실릴 낱말이요 영어사전에도 안 실릴 낱말이라 인터넷으로 살펴봅니다. 인터넷에서는 ‘믹스견(Mix犬)’을 “잡종견, 똥개를 순화하여 부르는 말. 영어의 ‘Mix’와 한자의 개 ‘견(犬)’의 합성어”라고 풀이합니다.

 

 순심이는 믹스견이에요
→ 순심이는 골목개예요
→ 순심이는 마을개예요
→ 순심이는 동네개예요
 …

 

  아마 ‘순종’과 ‘잡종’이라는 낱말 때문에 ‘믹스견’ 같은 낱말을 새삼스레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라면 다 같은 개인데, 암컷과 수컷이 같은 갈래 아닌 다른 갈래끼리 붙어 낳은 개라서 조금 더 부드럽고 따스하게 가리키려고 이런 낱말을 지었구나 싶어요.


  그런데, ‘피 섞인 개’를 ‘똥개’라고 가리키는 일은 그리 알맞지 않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똥개란 똥을 먹는 개일 뿐, 피가 섞인 개를 가리킬 수 없어요. 게다가 지난날 똥개가 먹던 똥은 나쁜 똥이 아니에요. 시골마을에서 풀을 먹던 시골사람이 눈 풀똥을 먹는 개이니, 하나도 나쁠 개가 아니지요. 흙을 살리고 풀과 나무를 북돋우는 똥은 아주 값진 거름이에요. 똥오줌으로 거름을 내어 흙을 살찌워 씨앗을 심고 거두니,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눈 똥을 다시 먹는 셈입니다. 똥개만 똥을 먹지 않아요.


  곧, ‘믹스견’이라 한다면 ‘똥개’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여길 수 없어요. 한자말 ‘잡종(雜種)’을 부드럽게 가리키자 하는 낱말로 여겨야 할 뿐입니다.


  한국말에는 피 섞인 짐승을 가리키는 낱말이 따로 한 가지 있어요. 바로 ‘튀기’입니다. ‘튀기’는 ‘특이’라는 옛말이 꼴을 달리한 낱말이요, 이 낱말은 “수말과 암소, 수소와 암말 사이에 태어난 짐승”을 가리킨다고 해요. 그래서, 버새나 노새 같은 짐승이 바로 ‘튀기’입니다. 무언가를 깎아내리는 낱말이 아니고, 그저 ‘갈래 다른 짐승이 만나 태어난 짐승’을 가리키는 낱말일 뿐이에요.


  더 따진다면, 짐승을 가리킬 때에 쓰는 낱말이니, 이 낱말을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 쓰면 얄궂을 수 있겠지요. 다만, 누군가를 비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려는 뜻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을 가리켜 ‘꽃’이라고도 하고 ‘나무’라고도 합니다. 사내를 가리켜 ‘수컷’이라고도 하고 가시내를 가리켜 ‘암컷’이라고도 해요. ‘새끼’는 짐승이 낳은 어린 목숨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그런데 ‘새끼’라는 낱말을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처럼 쓰기도 해요. 얄궂게 거친 말을 하면서도 쓰지만, 스스로 따사롭고 좋은 마음이라 한다면, 푸나무 가리키는 낱말이든 짐승 가리키는 낱말이든 스스럼없이 즐겁게 쓸 만해요.


  안타깝다면, ‘튀기’라는 낱말, 곧 짐승 가리키는 이 낱말을 한겨레가 사람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쓸 적에 얄궂은 마음이 되기 일쑤라, 자칫 이웃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일이 생기고 말아요.

 

― 골목개, 마을개, 시골개, 동네개, 길개(길강아지)

 

  영어와 한자말 섞은 ‘믹스견’ 같은 낱말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쯤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더 좋겠어요. 더 부드럽고, 더 알맞으며, 더 쉽고, 더 따사롭게 가리킬 만한 이름 하나 즐겁게 빚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한결 나으리라 느껴요.


  길에서 살아가기에 ‘길고양이’이듯, 개한테도 ‘길개’라 할 수 있습니다. ‘길개’라는 낱말 느낌이 썩 내키지 않다면 ‘길강아지’라 할 수 있어요. 골목고양이나 시골고양이나 마을고양이처럼, ‘골목개’나 ‘시골개’나 ‘마을개’ 같은 이름을 써도 잘 어울려요. 굳이 ‘피가 섞였느냐 안 섞였느냐’를 따지려 한다면, 말 그대로 ‘섞이다’라는 낱말을 쓰면 돼요.


  스스로 꾸밈없는 마음 되어 꾸밈없는 말을 나누면 좋겠어요. 스스로 따사로운 마음 되어 따사로운 말을 주고받으면 좋겠어요. 4346.4.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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