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희 잡화점
그림책 《배꼽손》(한권의책,2013)은 나은희 님 글과 강우근 님 그림이 어우러진다. 글을 쓴 분과 그림을 그린 분은 한집에 살며 머스마 둘을 돌본다. 글을 쓴 나은희 님은 방학동에 있는 도깨비시장에서 ‘창가게(창문 한쪽을 쓰는가게)’를 꾸리기도 한단다. 손으로 빚는 살림살이 판다는 ‘창가게’에서 쓰는 간판을 본다. 창가게 이름은 ‘나은희 잡화점’이고, 간판은 어른 손바닥보다 조그맣다. 창가게라면 참 조그마한 귀퉁이에 마련하는 가게일 테고, 조그마한 귀퉁이 한쪽에 꾸미는 가게에 조그마한 간판을 나무를 깎고 빛깔을 입혀 붙인다 하니까, 이 창가게, 그러니까 쪽가게를 알아보려면 두 다리로 천천히 길을 거닐어야 하고, 두 다리로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커다란 가게에는 자가용 대는 자리 드넓게 여러 층으로까지 있다. 옛 저잣거리 언저리에는 자가용 대기조차 힘들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은 아주 많은 물건을 잔뜩 사들이고도 다리나 팔이 아플 일 없으리라. 그러나, 커다란 가게는 오직 물건만 바라볼 수 있다. 옛 저잣거리라든지 쪽가게에서는 짐을 사람 스스로 들어야 한다. 가방이나 손에 짐을 꾸려 스스로 힘을 써야 한다. 두 다리로 거닐며 장마당 마실을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다리품을 판다. 다리품을 팔면서 가게를 보고 사람을 만나며 날씨를 느낀다. 봄에는 봄내음 맡으며 장마당 마실을 하고, 겨울에는 겨울바람 쐬며 장마당 마실을 한다. 이와 달리, 커다란 가게에는 봄도 겨울도 없고, 여름도 가을도 없다. 커다란 가게에는 오직 물건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자가용 없으면 못 살아가는 숨결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두 다리에 힘 주고 이 땅 씩씩하게 밟고 보살피는 마음을 스스로 잃었을까. 4346.4.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가게 간판' 손에 든 분은 그림쟁이 강우근 님.
강우근 님 가슴에는 '갈퀴덩굴' 잎사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