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4.12.
 : 남당마을 바닷가

 


-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나간다. 바닷가를 지나 멧자락 하나를 넘어가려 했지만, 바닷가 지날 무렵 시간이 퍽 흐르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오래 탄 나머지 힘들어 한다. 바닷가에서 모래그림 그리며 놀고, 바닷가를 낀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놀이터에서 논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 세 시간 남짓 보낸 마실길 갈무리하자니 몇 줄로 적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세 시간 남짓 아이들 태운 자전거를 낑낑대며 끌었다. 도화면 소재지 지나 동백마을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2.1킬로미터 길은 맞바람 맞으면서 달리더라도 여느 때에는 15분이나 17분 즈음 걸리는데, 오늘은 자그마치 30분 넘게 걸린다. 세 시간 즈음 맞바람에 시달리며 자전거를 몰다 보니, 마지막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차라리 그냥 끌고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맞바람 치는 길에 아이들이 너무 오래 있으면 더 안 좋으리라 느껴, 끝까지 씩씩하게 발판을 밟았다.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는 바람 많이 불어 춥다는 노래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 처음 마실길 나설 적에는, 동호덕마을에서 서호덕마을로 들어서는 외길에서 상수도공사 한다며 길을 다 파헤쳐 놓아 황산마을 앞길로 빙 돌아서 가야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빙 돌아서 갔기에, 유채꽃 춤추는 들길 옆으로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진 찍을 수 있어 좋았다. 좋구나, 오늘 무언가 좋은걸 하고 생각했지.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탄 채 길가에 보이는 숫자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건 뭐야?” 하고 끝없이 물었다. 아버지는 흘끔흘끔 쳐다보며 “서른! 쉰! 천이백쉰일곱! 이천백열다섯!” 하고 알려주었다. 작은아이는 면소재지 지나 서오치마을 닿을 즈음 잠든다. 지등마을에서 자전거를 세운 뒤 하얀 담요로 지붕을 씌운다. 이동안 큰아이가 자전거를 잘 붙든다. 바람에 쓰러지지 말라며 기운차게 붙잡아 준다. 그나저나, 가는 길이 내내 맞바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등바람 되려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맞바람이라면 참 고되겠다. 가는 길이 맞바람이면 차라리 나으니, 부디 돌아오는 길은 등바람 되기를 빌며 발판을 밟는다.

 

- 이목동마을 지나 대통마을 옆 지날 무렵, 길섶에 심은 콩포기마다 하얗게 꽃 피어나는 모습 본다. 볕이 참 잘 드는 자리인가 보다. 아주 일찍 콩꽃 피어나네. 그리고, 이곳 대통마을부터 바다가 보인다. 유채꽃 흐드러진 봄길에서 바라보는 바다. 예쁘네. 이 유채꽃은 바람에 씨앗 날려 스스로 자라는 유채꽃이다. 군청에서 경관사업 한다며 뿌리도록 하는 유채씨는 유채풀 돋을 적에 잎사귀 되게 자그맣다. 꽃만 노랗게 빨리 피어나도록 하는 씨앗이지 싶다. 이와 달리 유채풀 스스로 씨앗 퍼뜨려 자라는 들유채는 잎사귀 푸짐하게 내놓는다. 늦겨울부터 이른봄 사이에 유채풀 흐드러져 푸른 숨결 맛나게 먹을 수 있다. 한참 들유채잎 뜯어먹다 보면 어느새 꽃대 올라와 경관사업 유채꽃보다 먼저 꽃송이 터뜨린다.

 

- 들길을 달리면서 마늘밭 마늘냄새를 맡는다. 유채밭 유채냄새를 맡는다. 시금치밭 곁에서는 시금치냄새 맡고, 갈아엎은 흙당에서는 흙냄새 맡는다. 바닷마을에 이르니, 바야흐로 바다내음 퍼진다. 짭짜름한 맛 풍기는 바다내음이다.

 

- 여의천마을 지나고 강동마을 지난다. 이제 왼편으로는 드넓은 바다이다. 한국사람은 이 바다를 ‘남해’라고 일컫지만, 남해는 태평양 가장자리이다. 거금섬 뒤로 가없이 보이는 태평양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 바닷바람 드세게 분다. 앞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남당마을에서 자전거 세운다.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두 아이 모두 땅 밟고 뛰게 해야겠다 생각한다. 마을 어귀 넓은 빈터에서 아이들하고 논다. 그러고 나서 바닷가로 내려간다. 돌무지를 밟고 모래밭을 밟는다. 큰아이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려다가 “이익!” 하고 웃는다. “손가락 모래는 털면 되지. 그리고 돌멩이 쥐어서 그리면 손가락에 모래 안 묻혀도 돼.” 아버지가 돌멩이 하나 쥐어 그림을 그려 보인다. “오잉!” 하더니 큰아이는 저한테 맞춤한 돌멩이 찾아 그림을 그린다. 치마 펑퍼짐하게 입은 제 모습 그린다. “아버지 봐요! 아버지 보라구요!” 다 보는걸. 다 봤어. 다음으로는 나비를 그린다. 나비를 그린 뒤에도 “나비다! 나비 그림이에요.” 하고 말한다. 이윽고 꽃을 그린다. 모래밭을 넉넉히 채우는 커다란 꽃 그린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든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든, 너는 참 큼지막하게 시원스레 그리는구나. 작은아이가 누나 곁에 달라붙으며 저도 그림 그리는 시늉 보여준다.

 

- 오늘 별학산 너머 풍양중학교까지 가 볼까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맞바람 맞으며 멧길 넘자면 집으로 돌아오기 힘들겠다고 느낀다. 더 달리지 말자, 여기까지 잘 왔구나 여기고 돌아가자. 자전거머리 돌리려는데, 풍남초등학교 앞에서 큰아이가 묻는다. “저기 저거 뭐야?” “뭐?” “저기. 앞으로 가 봐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놀이기구를 보았다. “나 저거 어제 탄 적 있는데. 저거 타고 싶어.” ‘어제’가 아니라 ‘예전’이겠지. 그래, 놀이터에서 놀자.

 

- 두 아이는 이것저것 만지고 타고 뛰고 뒹군다. 무엇보다 미끄럼틀이 가장 재미난 듯싶다.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가고 되풀이한다. 작은아이는 미끄럼틀 꼭대기에 서서 먼산바라기만 한다. 두 아이는 서로 저희 깜냥껏 놀 테지.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저희 놀이를 스스로 잘 찾겠지.

 

- 삼십 분 남짓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맑은 바닷물 바라본다. 강동마을 어귀에 있는 군부대 소초를 본다. 이제 텅 빈 소초가 되었구나. 이 군부대에 있던 젊은이는 무엇을 보거나 누렸을까. 전라남도 끝자락에다가 고흥에서도 또 끝자락인 이곳까지 군부대를 마련해 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가화리 이목동마을에 가화정미소가 있다. 이제는 버려진 건물이 된 정미소 같다. 정미소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자전거 달리려는데 택배 짐차가 경적 울리며 나를 부른다. 우리 집에 올 택배 있으니 가져가란다.

 

- 도화면 소재지까지 들어선다. 다리에 힘 풀리는 느낌 짙으나, 여기까지 잘 왔다. 우체국에 들러 편지 한 통 부친다. 다리를 좀 오래 쉬면서 푼다. 면소재지부터 집까지 맞바람 퍽 드셀 텐데 잘 갈 수 있겠지?

 

- 서호덕, 동호덕, 원산, 신기 지나 동백마을까지 달리는데, 맞바람 참 모질어 자꾸자꾸 자전거를 세우며 쉰다. 이러다가 안 되겠구나 싶어 노래 한 가락 뽑는다. 노래를 부르며 ‘힘들다’는 생각을 잊자. 천천히 노래를 부르고, 천천히 발판을 구른다. 드디어 집 앞. 대문을 활짝 열고 자전거를 들인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밥을 안친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고무신을 빨고 발을 씻는다. 내 자전거와 큰아이 자전거를 두꺼운 천으로 씌운다. 국을 끓인다. 아이들 밥 다 먹이고 나서 아이들 씻기고, 이런 다음 나도 씻고 옷 갈아입고 빨래를 해야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 뼈마디와 털 모두 삐걱거린다고 느낀다. 밥 다 먹고 몸 잘 씻은 아이들 방바닥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면서 논다. 너희들 이래서 되겠니? 우리 다 일찍 자자. 작은아이 먼저 팔베개로 눕힌다. 큰아이가 그림책 들고 와서 “아버지가 그림책 안 읽어 줬잖아?” 하면서 읽어 달란다. 셋이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한 권 천천히 읽는다. “한 권은 이듬날 일어나서 읽자. 이제 우리 불 끄고 자자.”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워 자장노래 사십 분 즈음 부른다. 아이들 모두 잠든다. 나도 따라 곯아떨어진다. 조용한 밤이 흐른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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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3-04-14 13:20   좋아요 0 | URL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버님.

숲노래 2013-04-15 01:53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해도 제가 참 애 많이 썼습니다... -_-;;;;
에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