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와 작은 책걸상 (도서관일기 2013.4.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 가는 길목은 민들레밭이 된다. 곱구나. 좋구나. 봄날 들판은 이렇게 눈부시고 싱그럽구나. 이제 막 민들레밭 되니 민들레 보들보들 여린 잎 뜯어서 먹기에는 살짝 이르다. 잎사귀 더 벌어지면 그때부터 신나게 민들레잎 먹자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쓸 책걸상이 모자라는구나 싶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한참 망설였는데, 작은 책걸상을 뜻밖에 묵은 헛간 한쪽에서 찾는다. 스무 해 가까이 먼지를 먹으며 잠자던 책걸상이다. 이런 헛간에 이런 책걸상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들과 함께 책걸상 묵은 먼지를 닦는다. 묵은 먼지 닦고는 한참 해바라기 시킨다. 여러 날 더 햇볕을 쪼이고서 안쪽에 들여야겠다. 조그마한 책걸상 틈틈이 닦고 말려 칸마다 알맞게 놓으면, 슬슬 돌아보다가 가만히 앉아 오래도록 책 하나 누릴 수 있겠지. 아이들도 골마루를 한껏 뛰어다니며 놀다가 이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겠지. 다리를 쉬며 앉는 동안, 창밖에서 들리는 들새 노랫소리 들을 테고, 바람이 쏴아 불며 일으키는 나뭇잎 노랫소리 함께 들을 테지.
우리 식구 시골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참말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숲바람 쐬어야 한다고 느낀다. 도서관이라 하는 곳은 숲속 한켠에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창문 살짝 열어 숲바람 스미고, 도서관 건물 둘레로 들새와 멧새 찾아들어 고운 노랫소리 들려줄 때에, 비로소 책 하나 더 깊고 넓고 따스하고 포근하게 우리 가슴속으로 젖어들겠구나 싶다.
《아니스타시아》라는 책이 나오도록 한 러시아 타이가숲 아나스타시아라는 사람이 말했다. 당신 이야기를 읽으려면 맑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다소곳하게 흙바닥이나 풀밭에 앉아서 읽으라고.
시끌벅적한 자동차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서 읽는 책이랑, 숲속에서 읽는 책은 사뭇 다르다. 똑같은 책 똑같은 줄거리라 하더라도, 사람들 마음자리로 파고드는 느낌과 결과 무늬가 참 다르다.
책은 지식이 아닌 삶이다. 책은 지식을 이야기하지 않고 삶을 이야기한다. 책은 지식으로 쓸 수 없고, 오직 삶으로만 쓸 수 있다. 책을 이루는 글을 짓는 사람부터 삶으로 글을 엮어서 내놓지, 지식과 정보를 섞거나 버무려 책을 짓지 못한다. 곧, 책을 쓰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 모두, 삶과 삶으로 만난다. 생각하는 삶과 사랑하는 삶이 아름답게 만나는 데가 책터라고 느낀다. 책터는 새책방이 될 수 있고, 헌책방이 될 수 있으며, 도서관이 될 수 있다. 여느 살림집 마루가 책터 될 수 있으며, 푸른 숲속이 책터 될 수 있다.
도서관마실 누리는 사람들이 사월 첫머리에 민들레꽃을 즐길 수 있으면 꽃책 잔뜩 읽는 셈이기도 하다. 도서관마실 누리는 사람들이 곧 다가올 오월 첫머리에 이곳에 찾아오면, 곳곳에서 빨갛게 익는 들딸기 실컷 즐길 수 있다. 들딸기맛은 어느 책에서도 적바림하지 않는다. 들딸기맛은 손으로 톡 따서 눈으로 이야 예쁘구나 하고 바라보면서 입에 살짝 넣어 혀로 슬슬 간질이며 야금야금 먹을 때에 비로소 느낀다. 온몸과 온마음으로 누리는 들딸기맛이고 들딸기책이다. 오늘은 사월 첫머리라, 민들레꽃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누린다. 민들레꽃 바라보며 민들레책 읽는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거들며 책걸상 묵은 먼지 벗기면서 새로운 삶책을 읽는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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