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쓰기
― 어떤 사진을 보여주는가

 


  나는 필름사진을 찍을 적에 ‘한 가지 모습에 한 장 찍기’를 합니다. 필름사진 처음 찍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필름사진을 찍습니다. 똑같은 자리에 서서 수없이 단추를 누르지 않아요.


  예전에는 필름값이 그다지 안 비싸다 했더라도, 필름은 쓰면 쓸수록 돈이 나가니, 섣불리 또 찍고 다시 찍지 못했다 할 수 있지만, 꼭 필름값 때문에 ‘한 가지 모습에 한 장 찍기’를 하지는 않았어요. 한 가지 모습은 꼭 한 장으로 보여주면 될 뿐, 굳이 두 장 석 장 열 장 스무 장 찍어대어서 이 가운데 하나 골라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처음 사진을 찍을 때부터 ‘가장 옹글며 아름답고 빛나는 한 장’이 되도록 마음을 가다듬고 눈썰미를 추스를 노릇이라고 여겼어요.


  필름사진 찍다가 ‘아차, 흔들렸구나’ 하고 느끼면 다시 찍기는 하지만, 다시 찍되, 앞서 찍은 틀(구도)로 다시 찍지 않습니다. 반 걸음이든 반반 걸음이든 반반반 걸음이든 살짝 옆으로 움직입니다. 또는 사진기를 조금 옆으로 움직입니다. 가로로 찍다 흔들렸으면 세로로 찍든, 세로로 찍다가 흔들렸으면 가로로 찍든 합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틀로 사진을 찍는 일은 나로서는 하나도 안 내켜요.


  디지털사진을 함께 찍는 요즈음, 나는 디지털사진에서도 이런 매무새를 고스란히 잇습니다. 디지털사진으로도 잇달아 찍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잇달아 찍는 사진은 내 사진답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여러 장 잇달아 찍고 보면, 이 가운데 가장 나은 사진 나올 수 있지만, 그만큼 사진기 부속품이 닳아요. 부속품이 닳기도 하지만, 찰칵찰칵찰칵 소리 너무 울리는 모습도 달갑지 않아요.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맛과 즐거움이라 한다면,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면 무엇이든 곱다시 담아 나눌 수 있는 데에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굳이 같은 자리에서 잇달아 찍어 ‘여러 장 가운데 가장 나은 한 장 뽑기’를 하지 않아요.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빛과 결과 무늬를 헤아리며 다 다른 사진을 여럿 얻을 때에 한결 즐거워요.


  깊은 밤 두 아이 토닥토닥 재우고 나서 기지개를 켭니다. 이제 아버지도 아버지 일을 좀 만질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문득 두 아이 많이 어릴 적 모습이 그립습니다. 작은아이 갓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 집 방바닥에 눕혀 재우던 모습을 예전 사진파일 뒤적여 찾아봅니다. 이날 큰아이는 “동생은 왜 이리 작아요? 동생은 왜 이리 잠만 자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동생 누인 잠자리 곁에서 말끄러미 동생을 바라보다가 “보라야, 잘 자. 엄마젖 많이 먹어.” 하고 얘기해 주었어요. 곁에서 이 아이들 모습 바라보며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큰아이가 동생 바라보는 모습, 문득 아버지 쳐다본 모습, 동생 토닥이는 모습, 동생 포대기 살며시 들춰 얼굴 들여다보는 모습, 다시 포대기 여미고 이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모습, 이러다가 빙그레 웃는 모습, 아기 곁에 누운 어머니하고 함께 동생 바라보는 모습 들을 차곡차곡 찍었어요. 이때 나는 거의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잇달아 찍지 않았어요. 두 아이 모습 새로운 이야기로 바뀔 때에 한 장씩 찍었습니다. 흔들리면? 흔들리면 할 수 없지요. 나중에 또 오늘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테니, 그때 가서 또 찍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애써 ‘오늘 모든 사진 다 찍겠다’고 생각할 까닭은 없다고 느껴요. 오늘은 오늘 하루만큼 즐겁게 삶 누리며 사진 함께 곁에 두면 되리라 느껴요. 별밤 따사롭게 흐릅니다. 4346.4.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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