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 안녕 ㅣ 아기동물 사진 그림책 1
유키 모이라 글, 후쿠다 유키히로 사진, 이선아 옮김 / 웅진주니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9
아이들과 숲을 생각하기
― 엄마, 안녕
후쿠다 유키히로 사진,유키 모이라 글,이선아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2001.12.10./7500원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숲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숲이 없으면, 사람으로서 목숨은 건사할 수 있어도 사람답게 살림을 꾸리지 못합니다. 탄광마을이 시커멓고, 크고작은 도시마다 매캐한 바람 가득한 까닭은 숲이 없기 때문입니다. 숲이 없는 터에는 다툼과 싸움이 판칩니다. 숲이 없는 곳에는 돈과 권력이 떠돕니다. 숲이 없는 자리에는 아름다운 이야기 깃들지 못합니다.
서양 여러 나라는 숲 없는 도시를 짓다가 스스로 숨막히는 줄 깨닫고는, 도시 한복판에 널따랗게 ‘숲 비슷한 공원’을 따로 마련합니다. 도시 한복판이라 하면 땅값 몹시 비싸다 할 텐데, 땅값 비싸다 할 데에 건물이나 가게 아닌 ‘나무와 풀이 푸르게 자라는 공원’을 마련하지요.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시가 도시로서 굴러가지 못하는 줄 뼛속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국 도시에는 공원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는 흙땅 밟기조차 어렵습니다. 흙땅을 밟지 못하면 공원이랄 수조차 없지만, 그나마 풀이나 나무 자라는 손바닥만 한 공원조차 제대로 없는 한국 도시입니다. 서울 어디에, 부산 어디에, 대구나 인천 어디에, 대전이나 광주 어디에 ‘숲내음 그윽한 쉼터’가 도시 한복판에 있을까요. 새로 커지는 울산이나 거제나 용인이나 일산이나 분당 같은 도시 어느 한켠에 ‘숲바람 따사로운 쉼터’가 있는가요.
나무그늘 누릴 숲터가 있어야 삶터라 할 만합니다. 들꽃 만날 숲자리 있어야 보금자리가 될 만합니다. 들새 둥지를 트도록 숲을 돌보고 아끼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 살아가는 동네에서도 서로 어깨동무를 할 만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도시 한복판 공원’은커녕 ‘도시 변두리 공원’조차 바라기 어려워요. ‘도시를 벗어난 시골’에서도 정갈한 숲과 멧골과 들판을 바라기 힘들어요. 도시 바깥쪽에 ‘도시에 들이지 않는 위험·위해시설’을 잔뜩 둡니다. 도시 언저리 시골은 쓰레기밭으로 바뀝니다. 높고낮은 멧자락마다 우람한 송전탑 섭니다. 아름다운 들판을 가로질러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지나갑니다. 깨끗해야 할 바닷가에 공장과 발전소를 자꾸 지으면서, 바다와 갯벌이 끝없이 망가집니다. 더구나, 뭍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를 걸러내는 갯벌을 자꾸 메워 개발을 한다 외치는 바람에, 이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맑은 물과 바람과 볕하고 나날이 멀어집니다.
왜 이 나라 어른들은 스스로 숲을 생각하지 못할까요. 왜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하고 함께 숲을 헤아리지 않을까요. 왜 이 나라 어른들은 스스로 숲을 누리려 하지 못할까요. 왜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이 숲을 누리게끔 숲을 돌보고 지키며 물려줄 생각을 안 품을까요.
후쿠다 유키히로 님 사진하고 유키 모이라 님 글이 어우러진 사진책 《엄마, 안녕》(웅진주니어,2001)을 들여다봅니다. ‘하프물범’이라 하는 ‘북극 바다짐승’ 삶자락을 살그마니 보여줍니다. 하프물범이 새끼를 낳아 어떻게 돌보고, 새끼 하프물범은 어미 하프물범한테서 어떤 사랑을 어떻게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는가를 알뜰히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사진책입니다.
사진을 찍은 후쿠다 유키히로 님은 “얼음 위는 영하 20도로 매우 춥지만, 아기물범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때나마 추위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혹독하게 추운 곳에도 하프물범이라는 정겨운 동물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날마다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인지, 하프물범들이 새끼를 기르는 장소인 바다 위의 얼음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얼음장이 없는 바다에서는 안전하게 새끼를 기를 수 없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몹시 추운 곳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하프물범을 바라보면서, 사진쟁이 한 사람도 씩씩하게 사진을 찍었다고 해요. 북극 바다짐승을 만나며 아름다움을 누렸기에, 이 아름다움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 지구별 어린 벗님들과 나누려고 한 뜻을 잘 알겠습니다.
바다짐승은 바다가 깨끗해야 삶을 즐거이 누립니다. 들짐승은 들이 깨끗해야 삶을 아름다이 누립니다. 멧짐승은 멧자락이 깨끗해야 삶을 사랑스레 누립니다.
사람은 삶터가 어떠할 때에 삶을 누릴까요. 우리 삶은 얼마나 즐거운가요. 우리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우리 삶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이웃한 다른 나라는 살짝 잊고, 바로 이 나라 삶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스스로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하루를 빛내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일자리 찾아 돈을 벌어 아이들 먹여살리는 어른들은 스스로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삶을 헤아리며 누리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어른들은 한국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삶터 누리면서 어떤 이야기꽃 길어올리는 즐거운 삶 누리도록 마음을 기울이는지 궁금합니다.
먼 앞날, 곧 아이들 앞날을 헤아려 고속도로 잔뜩 깔고 새 고속도로 늘리면 즐거운 삶 될까요? 먼 뒷날, 곧 아이들 뒷날을 생각해 숲을 지키고 돌보면서, 도시 한복판이든 시골 어디이든, 푸르게 빛나는 맑은 숲터 가꾸면서 사랑과 꿈을 물려줄 마음이 있는지요? 아이들과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찾으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야기하며, 무엇을 보살피고, 무엇을 사랑할 때에, 삶이 삶다울 수 있는지 하루 빨리 깨닫기를 빕니다. 4346.4.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