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민들레밭 책읽기

 


  사월하고도 이레 지나니 들판에 민들레가 밭을 이룬다. 삼월에도 민들레 몇 송이 군데군데 피었지만, 밭을 이루도록 피어나는 때는 이즈음이다. 그러니까, 민들레는 봄꽃 가운데 좀 더딘 꽃이라 할 만하다. 아직 안 피어난 들꽃 많은데, 민들레 바라보며 봄을 헤아리려 한다면 늦다는 소리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봄날 봄꽃을 개나리나 진달래나 민들레, 으레 이 세 가지로 느끼곤 했다. 도시에서 할미꽃을 볼 일이 없고, 봄까지꽃이나 별꽃을 어릴 적에는 거의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 둘레 어른 가운데 아기 코딱지처럼 작은 봄까지꽃이나 별꽃을 이야기한 분은 없었다. 광대나물을 일컬어 코딱지나물이라 일컫는 이름이 참 그럴싸하다고 느낀다. 참말 크기나 모양이나 광대나물꽃은 코딱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흔히 말하지 않나. 코딱지만큼 작다고. 꽃이름에 코딱지가 무어냐 하고 따질 까닭이 없다. 좋고 나쁨에 따라 붙인 이름이 아니니까. 정, 이런 이름 못마땅하면 ‘아기나물’이나 ‘애기나물’이라 할 수 있겠지. 아기처럼 작다는 뜻으로.


  밭을 이루려 하는 노란민들레꽃 바라보는 아이들이 걸음을 멈춘다. 꽃을 말끄러미 들여다본다. 봄꽃 가운데 유채꽃도 노란빛 제법 볼 만한데, 아이들이 꽃대 꺾어 놀기에는 민들레가 참 알맞다. 봄까지꽃이나 별꽃이나 냉이꽃은 앙증맞고, 민들레꽃은 보기에도 들기에도 아이들 손에 꼭 맞춤하구나 싶다. 바야흐로 민들레밭 이루어지면 민들레잎 뜯어서 실컷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적, 내 어머니였는지 시골집 외할머니였는지, 민들레와 다른 여러 풀 섞은 나물을 반찬으로 차려서 준 일이 살짝 떠오른다. 어린 나는 ‘꽃을 어떻게 먹나’ 하고 여겼지만, 꽃이 안 피는 풀이나 나무란 없다. 벌과 나비는 꽃가루와 꿀을 먹는다. 다람쥐는 꽃망울 뜯어서 먹는다. 소도 염소도 토끼도 모두 꽃을 홀라당 냠냠 씹어서 먹는다. 그러니까, 사람도 꽃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예부터 잎뿐 아니라 꽃까지 다 먹으면서 살았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풀잎도 꽃잎도 안 먹으면서 살아가는 나날은 역사가 아주 짧다고 느낀다. 우리들은 기껏 백 해도 안 되고 쉰 해조차 채 안 되는 사이에 풀과 꽃 한껏 누리면서 즐기던 삶과 살림을 몽땅 잃거나 빼앗겼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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