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목소리

 


  여섯 살 큰아이가 스스로 그림책을 읽는다. 다만, 그림책에 한글로 적힌 글을 읽지는 않는다.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을 바라보며 읽는다.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그림에 맞추어 쓰는 글, 또는 글에 맞추어 그린 그림, 이 두 가지를 살피지 않고, 오직 그림만 헤아리면서 그림책을 새로 읽는다.


  아이가 그림책 읽는 목소리 들으면 좋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함이 스르르 녹는다.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하는 숨결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아이 깜냥껏 줄거리를 새로 엮어서 읽는 이야기 들으면 재미있다. 아이 나름대로 이야기를 엮을 때에는 그림책에 적힌 글을 아랑곳하지 않으니 즐겁다. 아이들 그림책이라 하지만,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다 싶은 한국말로 슬기롭게 글을 쓴 책이 아주 드물다. 아이들한테 그림책에 적힌 글을 읽어 줄라치면, 몽땅 새까맣게 지우고 새로 글을 적어 넣어야 할 판이다. 아이가 한글을 익힐 때가 되니 되도록 그림책 글을 그대로 읽어 주려 하면서도, 영 못미더워 자꾸자꾸 그림책 글을 죽죽 긋고 고쳐서 적어 넣는다.


  아버지가 아이 목소리를 좋아하듯, 아이도 아버지 목소리를 좋아할까. 아이가 아버지한테 그림책 읽어 달라 할 때에는, 한글을 익힌다는 생각이 아니라,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생각하고픈 마음이기 때문일까.


  잠자리에서 자장노래 부를 적에도, 어떤 노래를 꼭 불러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서로서로 목소리를 듣고 나누며 들려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느낀다. 목소리를 나누면서 살내음 나누고, 이야기를 조곤조곤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삶이겠다고 느낀다. 4346.4.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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